남한9정맥(졸업)/금남정맥(완주)

금남정맥 6구간(복룡고개=>부소산=>구드래나루터)

부뜰이(윤종국) 2016. 6. 13. 23:46


1대간1정간13정맥

부뜰이와 천왕봉이 걸어온 정맥길(검정색)


우리가 걸어온 금남정맥 길.131.2km.접속거리 제외.(알.접7.4km).

누적시간 69시간10분.


(지도는 클릭해서 보기)


산행일=2016녕6월12일

산행지=금남정맥 6구간(공주.부여)

산행경로=복룡고개=>180봉=>망덕봉=>184봉=>208봉=>진고개=>161.4봉=>173봉=>215봉=>감나무골고개(임도)=>262봉=>181봉=>가자티고개=>됨봉=>187봉=>155봉=>신앙고개=>190봉=>165봉=>182봉=>184.9봉=>청마산(233)=>청마산성=>183봉=>조석산=>154.8봉=>오산고개=>석목고개(sk주유소)=>금성산(121)=>부여여고=>부소산=>사자루=>낙화암=>구드래나루터.

거리 및 소요시간=25.2km/10시간41분.




오늘의 들머리는 복룡고개.

복룡고개는 공주.논산간 고속도로가 지나는 곳이다.

고속도로 밑에서 산행준비를 하고 오늘 산행을 시작하는데.

아직 새벽 3시가 안된시간다.






어느덧 오늘로 금남정맥도 마지막 산행이다.

날씨가 얼마나 후덥지근한지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땀이 비오듯 쏯아진다.

다행이 고도차는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완만하다.

이름을 가진 산만도 세개나 되지만 최고봉이 233m이니 산이라기보단 그냥 구릉지대라구 해도 될것이다.

복룡고개에서 진고개까지가  5km인데 1시간34분만에 주파한다.

진고개에서 땀을 식히며 간식시간을 갖는다. 


진고개는 645번 도로가 지나는 2차선 도로이다.


고갯마루에는 광명리란 마을 표지석이 있다.








진고개까지만도 몇개의 봉우리를 지나지만 여기가 딱히 무슨봉이라는 표시도 없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걸려있으면 gps와 지도을 대조해보면 여기가 몇봉 또는 무슨봉이구나 라고 알 수 있을 뿐이다.


오늘도 몇차래 밤농장을 지난다.


안경구덩이산.

참. 특이한 이름을 가진 산이름이다.








가자티고개.






가자티 고개에는 현위치와 금남정맥 안내도가 있다.







가자티고개에서 조금 올라서면 됨봉인데.

여기서 아침식사를 하자구해서 지도를 보니 됨봉을 이미 지나온 지점이다.


엄청나게 푸짐하다.












식사를 마치고 출발전에 인증.


뭣을 할려구 멀쩡한 산을 이렇게 파제끼는지 모르겠다.








묵은 밭도 지난다




성터같은게 있어서 지도를 보니 청마산성이 표시되여 있는데.

위치상 조금더 가야될꺼 같고.어쨌든 여기도 성터임엔 틀림없다.














llpg충전소(석목고개)가 4.3km남았다는 이정목을 지난다.






무인 삼불감시기을 지난다.








(안내문은 클릭해서 읽어보기)


여기가 지도상에 표시된 청마산성터 이다.






지도를보며 현위치를 확인한다.

현위치 청마고개(오산고개).


이정표는 자주 보이는데.

거리표시가 안되 있어서 쫌 거시키 하단 생각이든다.


보리수열매 몇개따서 맛을보니 새콤달콤하다.


이렇게 거리표시가 되여 있으면 목목지까지 몇시쯤에는 도착할 수 있겠구나 알 수가 있어서 아주 좋다.








(안내문은 클릭해서 읽어보기)








sk충전소가 있는 도로에 떨어지면 여기가 석목고개 이다.


도로를 건너간다.










길은 참 부드럽고 좋다.








여기가 금성산이지 싶다.


안내문은 클릭해서 읽어보기.




















봉수대






봉수대에서 옛 백제 부여 조망.

부여는 어떤 곳인가.

부여라면 백제를 떠 올릴 수 밖에 없다.
 백제 건국 신화를 보자.
백제 시조는 온조왕이며 그 아버지는 추모 또는 주몽이라 한다.

주몽이 북부여에서 난을 피해 도망하여 졸본 부여에 왔다.

졸본 부여왕이 아들 없이 딸만 셋이라 주몽을 보고 그 사람됨이 비상함을 알고 둘째 딸로 짝을 이루게 하였다.

오래지 않아 부여 왕이 죽자 주몽이 그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주몽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큰 아들을 비류, 둘째 아들을 온조라 하였다.

주몽은 본래 북부여에도 아들이 있었는데, 그가 고구려로 찾아오자 그를 태자로 삼았다.

비류와 온조는 태자가 자기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두려워하여 오간, 마려 등, 열 명의 신하를 거느리고 남쪽으로 떠났다.

백성들 중에 따르는 자가 많았다.

이리하여 한산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서 살만한 곳을 살피다가 비류가 바닷가에서 살자고 하니 열 신하가 간하여 말하기를 "생각건대 이 곳 강물 남쪽 땅은 북으로 한수를 띠었고 동으로 높은 산악에 의거하고 있으며 남으로 비옥한 들판이 바라다 보이고 서로 큰 바다가 막혔습니다.

이러한 천연 요새로 된 좋은 땅이야말로 얻기 어려운 것이니 여기에 도읍을 정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하였으나 비류가 듣지 않고 따라온 백성들을 나누어 가지고 미추홀(인천)로 가서 살게 되었다. .

온조는 하남 위례성(현 경기도 광주)에 도읍하고 열 신하의 보필함을 받아 나라 이름을 십제(什濟)라 하였다.

이 때는 전한 성제의 홍가 3년이었다.

그 후 비류의 신하가 모두 위례에 합류하고 즐거이 온조를 따르게 되자 이름을 백제(百濟)라 고쳤다.

왕의 핏줄이 고구려와 같이 부여에서 나온 것이라 하여 부여(夫餘)씨를 성씨로 삼았다.


바로 아래쪽엔 백제 박물관이 보이고 발길 닫는 곳마다 유적지이다.








가로등은 최근 하루이틀 사이에 설치한가 같다.










석벽홍춘경시비




반공순국애국지사추모비




활터.




동학(東鶴)샘.

수량도 많고 시원하게 세수도하고.








부여여고 정문으로 들어가서 우측 가장자리로 돌아서. 쭈~욱 올라가면 뒷쪽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부여여고 뒷쪽으로 올라가면 도로에 올라서고 안내목이 있다.


정맥 마루금은 도로을 건너서 숲길로 올라가야 하지만 삼람이 다닌 흔적이 없어서 도로을 따라 가다가 좌측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오면 좌측으로 올라간다.








부여여자고등학교에서 20여분 진행하면 부소산 반월루에 닫는다.

 










부소산의 가장 높은 곳(해발 106m)에 위치한 사자루는 동쪽 영일루와 더불어 일월 음양을 뜻하며 달이 밝은 밤 누각에 오르면 아름다운 경치가 눈앞에 펼져지고 시흥이 절로 일어난다.

사자루 건립 당시 터를 파다가 광배 뒷면에 명문이 새겨진(정지원명) 금동석가여래입상(보물 제196호)이 발견되었다. 사자루 현판 글씨는 의친왕 이강의 친필이고,뒤쪽에 붙은 白馬長江은 서예가 해강 김규진의 작품이다






(안내문은 클릭해서 읽기)














 백제 시대의 전설 낙화암 (백화정) *
부소산 북쪽 백마강을 내려다 보듯 우뚝 서 있는 바위 절벽이 낙화암이다.

낙화암은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게 유린될 때,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백마강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이 전설로 낙화암이라는 꽃답고 애절한 이름을 얻었지만, [삼국유사]에는 타사암(墮死岩.사람이 떨어져 죽은 바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 성왕이 국가 중흥의 원대한 꿈을 펼치려 사비로 도읍을 옮긴 후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는 비운을 맞기도 하였으나, 위덕왕ㆍ무왕ㆍ의자왕에 이르는 동안 최강의 국력을 자랑하게 되었다. 이에 신라는 단독으로 백제에 대항하기가 어려워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대결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백제는 국운을 다했던지 의자왕도 정사를 소홀히 하고, 나라가 흔들리게 되었다. 결국 의자왕 20년(660) 사비성은 신라ㆍ당나라 연합군에게 함락되고, 성내에 살던 궁녀와 도성에 남은 여인들은 부소산성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침략군이 부소산성까지 몰려들자, 백제 여인들은 적군에게 잡혀가 치욕스러운 삶을 사느니보다 차라리 푸른 강물에 몸을 던져 무너지는 국운과 함께 목숨을 깨끗이 버리는 길을 택했다.
 
이처럼 여자의 정조를 생명보다 더 소중히 하고, 백제 마지막 순간까지 지키려 했던 백제 여인들의 충절과 넋이 어린 곳이 바로 낙화암이다. 바위 절벽에 새겨진 ‘낙화암(落花岩)’이라는 글씨는 조선시대 학자인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글씨이다


안내문은 클릭해서 읽어보기.


낙화암에는 많은 관광객으로 인증사진을 찍을 수 가 없다.


맥 산행하는사람들은 최종목적지가 구드래나루터인데.

부소산에서 구드래나루터로 내려가는 길 안내표시는 어디에도 없다.

관광객들은 낙화암에서 나루터까지 배을타고 이동한다고 한다.

가까스로 히미한 길을 찿아 내려오긴 했지만.

상술도 이런 상술이 없단 생각이 든다.

뱃삿은 약10분정도 이동하는데 4천원이라 한다.




















마지막으로 백마강 강물에 발을 담그는 것으로.

전라북도 진안군 모래재에서 여기 충남 부여 구드래나루까지 131.2km.의 금남정맥을 마무리 한다.

이렇게해서 1대간 9정맥중.

1대간 8정맥을 완주 하였다.

















































1구간(모래재=>운장산=>작은싸리재)21.9km/13시간53분.(접.알4.9km)

2구간=(작은싸리재=>백암산=>오항동재)20.1km/10시간32분.

3구간=(오항동재=>대둔산=>덕목재)19.9km/11시간13분.

4구간=(덕목재=>천마산=>큰서문다리재)21.1km/9시간19분.(접.알1.3km)

5구간=(큰서문다리재=>계룡산=>복룡고개)24.2km/13시간32분.(접.알1.3km)

6구간=(복룡고개=>부소산=>구드래나루터)25.2km/10시간41분

총131.2km/68시간38분(접.알7.4km)


흐르는 노래:

추억의 서부 영화음악 - 01 역마차(Stagecoa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