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간1정간13정맥
부뜰이와 천왕봉이 걸어온 대간과 정맥 길(검정색)
우리가 걸어온 호남정맥 길 377.8km.(접속거리 제외)
산행일=2015년3월22일
산행지=호남정맥 14구간(영암군/장흥군/보성군)
산행경로=골치재=>골치산(14)=>일림산(664.2)=>413봉=>한치=>삼수마을=>220봉=>삼수고개=>활성산(415.2)=>357봉=.302봉=>녹차밭=>봇재=>녹차밭=>259봉=>318봉=>411.2봉(통신탑)=>봉화산(476)=>416.5봉=>그럭재=>338.7봉=>대룡산갈림길=>346봉=>280봉=>276봉=>오도재(645지방도)
거리 및 소요시간=정맥길28.9km(접속+알바2.3km)/10시간47분
호남길을 걸으면서 화창한 날씨가 거의 없었던거 같다.
오늘 보성지방 날씨는 대체로 맑을거란 예보에 잔뜩 기대를 했는데.
해안가 특유에 해무가 몰려 올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오늘 걷는 길이 호남정맥에선 최남단으로 득량만 해안가를 지나는데.
뜻하지 안은 해무로 바다는 구경도 못했고 풍경사진 한장 못찍구
인증 사진만 남긴다.
용추교를 지나며 본격 산행이 시작된다.
용추교에서 1,5km. 지점인 골치재에 도착한다.
골치재란.순 우리말로 머릿재 라고도 한다.
이곳은 보성군 웅치면의 기름진 쌀과 장흥군 안량면 해안에서 잡은 수산물이 서로 만나서 오고 가던 고개라고 한다.또한 일제시대에는 웅치에서 생산된 쌀을 대동아 전쟁터로 보내기 위하여
수문포로 가려고, 이곳을 넘었다고도 한다.
일림산은 전남 보성군 웅치면 용반리.대산리 회천면
봉강리와. 장흥군 안양면 학송리의 경계에 위치한 호남정맥 중 가장 남녁에서
기운차게 우뚝 솟아 백두기운을 다시 북으로 돌리는 산으로 보성군에서는 일림산
장흥군에서는 삼비산이라 부른다. 삼비산(三妃山)은 옥황상제의 세 황비가 모여
물을 마시고 놀았다는 전설에 따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하늘에서 세 황비가 내려왔다고
해서 천비산(天妃山)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다고 해서 샘비산 또는 안개가 늘 자욱하게 낀다고 해서 현무산(玄霧山)등 으로도 불렸다고 한다.
이 산은 현재는 지도와 관광 안내 책자 등에 일림산으로 나와 있으나 보성군과
장흥군의 주장은 서로 다르다.
보성군에서는 일림산, 장흥군에서는 삼비산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삼비산이 맞는
이름이라는 것이 인근 주민들과 전문 산악인들의 견해다.
월래는 정상에 삼비산이란 표지석이 있었으나 보성군에서 산을 개발 하면서 보성군과
장흥군 사이에 다툼이 있어. 2006년7월18일.국토지리정보원은 일림산으로 이름을
확정 하게되여 보성군에서 삼비산의 정상석을 치우고 새로 일림산으로 표지석을 세웠으나
지금 까지도 양쪽 군민과 두 지자체 간의 다툼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구간에 이정표을 살펴보면 일림산이란 글자는 단 한자도 찿아 볼수 없고
삼비산이란 글씨는 수도 없이 많았다.
지금도 장흥군에서는 일림산을 인정하지 않고. 삼비산이라 홍보하고 있다. 2000년부터 개발된 철쭉은 100 ha 이상으로 전국최대의 철쭉군락지를 자랑하며,
제암산과 사자산으로 연결되는 철쭉군락지의 길이는 무려 12.4 ㎞에 달한다.
철쭉의 특징은 어른 키만큼 크고, 매서운 해풍을 맞고 자라 철쭉꽃이 붉고 선명하다.
북으로 사자산(미봉), 제암산으로 이어지는데 이 능선들 모두 철쭉군락지로
산행은 제암산 반대인 한치에서 출발하여 일림산/삼비산을 올라 사자산,
제암산에 이르는 코스가 철쭉을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코스이고, 철쭉의 만개시기는
5월 5-10일 전후이나 해마다 약간씩 차이는 생길 수 있다
한치재 부터 삼수마을 까지는 포장도로을 따른다.
섬진강의 원천지인 비래천(飛來川)과 상진천(上眞川)
하지천(下眞川)을 합쳐 삼수(三水)라고 한다.
895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이곳은 호남정맥이 꺽이는 이
지점에 정맥을 울타리삼아 앉아있는 마을 이름이
삼수(三水)마을 이다.
갈멜농원원은 사슴 목장이라 한다.
조금 이른듯 하지만 삼수마을 입구에서 아침을 먹는다.
삼수마을의 유래는.
전라남도 보성군 웅치면 봉산리 3구 삼수마을은
백제시대에는 보성군 계천현, 신라시대에는 계수현·장택현이었으며,
고려 인종 23년 서기 1124년에는 장흥부로 편입되었다가 웅점소, 웅치방,
웅치면으로 행정구역이 변천하여 1914년 3월 1일 보성군으로
다시 편입되었다고 한다.
地勢(지세)는 백두대간이 호남정맥이 되어
獅子算(사자산)에서 一脈(일맥)이 오면서 남으로日林山(일림산), 동으로
鶴城山(학성산)을 이루고, 북쪽 糖山(당산)에 섬진강 발원지 飛來泉(비래천)을
만들었으며, 서쪽 兄第峰(형제봉)의 여러 봉우리는 帝巖山(제암산)을 향해
공손히 인사하는 것처럼 보이니 君臣(군신)이 供揖(공읍)하는
형상과 같다고 한다.
마을 형국은 디딜방아 형국으로 뒷산은 방아를 찧어 하얀
쌀을 쌓아 놓은 산과 같다고 하여糖山(당산)이라 하며,
청룡등을 糠嶝(강등), 백호등을 방앗등이라 하고, 앞산에 筆峰(필봉)과
露積峰(노적봉)이 있으니 대대로 문장과 부자가 나올 터라 하며,
마을 이름은 비래샘(飛來泉),한샘(寒泉),통샘(通泉)세개의 샘이
있어 삼수라 한다.
맨처음 황보씨(皇甫氏).조씨(曺氏).백씨(白氏)가 촌락을 이루다가
진원박씨(珍原朴氏)는 서기 1634년부터 살아왔으며
현재는 진원박씨(珍原朴氏).장흥위씨(長興魏氏).영광김씨(靈光金氏).
전주이씨(全州李氏).전주최씨(全州崔氏).가 거주하고 있다.
식사가 먼저 끝난 몇명이 먼저 자리을 뜬다.
한치에서 도로을 따라 삼수마을을 지나고.
왕새고개에서 우측으로 접어든다.
왕새고개는 새 중에 가장 큰 봉황이 오래 머물다 날아갔다.는
전설이 있는 고개이다
활성산(活城山,465 m ))은 과거에 '활성이라는 성이
있어서 활성산 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으로 학성산(鶴成山)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고산자(古山子)선생이 쓴 대동여지도에는
몽춘산으로 표기되여 있다
활성산 정상은 정맥길에서 좌측으로 100 m쯤 벗어나
있으나, 고도차가 없으므로 부담없이 정상 확인후 다시
돌아와서 화산 방향으로 진행한다.
정상에는 특이하게도 편백나무를 잘라서 만든
2개의 봉분 모양으로된 조형물과
함께 활성산 지킴이라는 묘지석 같은 안내목이 있다.
보성(寶成)군에 차(茶)의 재배 역사는 서기 369년
(근초고왕)에 복흘군(보성군)이 마한에서백제에 통합되면서
차를 이용 했었다는 기록들이 보성군사(寶成郡史) 등에
전해진 것으로 보아 보성군의 차(茶)의 역사는 1600여년 전으로 보인다.
보성이 차(茶)의 재배에 최적지로 알려짐에 따라 1930년 후반부터 농.특
사업의 일환으로 차(茶)가 확대재배 되어 지금은 전국의
차 재배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 차(茶)가 처음 들어온 시기는 신라 선덕여왕 시절이고,
널리 퍼지기 시작한 시기는 신라 흥덕왕 3년(828년).
당나라 사신으로 갓던 김 대렴이 차(茶)의 씨를 가지고 와서 왕명으로
지리산에 심은 후 부터라고 한다.
이때부터 지리산을 중심으로 영남의 하동과 호남의 광양, 보성 등이 차
재배지가 되면서 차가 성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차 문화는 그 당시 불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주로 선승(禪僧)들에 의해다도(茶道)가 발달되었는데.
고려시대에는 왕실이나 귀족들 사이에 차 마시는습관이 널리 퍼졌다.
조선시대에는 억불숭유 정책으로 인해 생활이 검소해 짐에 다도가 쇠퇴하여
선승들에 의해 명맥만 유지되었다.
조선 말기에 해남 대흥사에 주석하고 계셨던 한국의 다성(茶聖)으로
불리웠던 초의선사(草衣禪師).1786~1866) 그리고 다산 정 약용과
추사 김 정희 같은 분들이한국 차 문화에 일조를 한 분들이다.
차의 이름도 다양해 찻잎이 참새 혓바닥 같이 생겼다고 하여 작설차.
대밭에 이슬을 먹고 자랐다고 해서 죽로차 라고도 한다.
일본에서는 끓이면 푸른 색이 돈다고 해서 ‘록차’라고 부르는 차는.
이곳 보성지방에 대량생산이 되는데 ‘설록차’를
이 지역명을 따서 보성녹차라고 부른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 차 생산지에는 일본 자본이 상당히 많이 투자되어 있다고 한다
오늘길이 호정맥에서 가장좋은 양반 길이라 했다.
그래도 가끔 한번씩은 잡목지대와 쓰러진 고목은 심심찮게 눈에 뛴다.
봇재의유래 : 이곳이 봇재라고 부르는 연유는 정확하게는 알수 없지만,
이 아래 영천저수라는 상당히 큰 저수지가 있는데 저수지에 큰 보가 있어 봇재 라고 부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봇재 모습.
통신탑봉에 삼각점.
봉화산(烽火山)에는 넓은 공터와 운동시설,
식탁 의자와 많은 편의시설과'봉화정'이라는 팔각정자와 정상석,
봉화대복원기념비와 봉화대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보성군의 각종 행사시 성화를 채화기도 하고,
가뭄시 기우제를 올리기도 하는 신성스러운 산이다.
여기서 카메라에 문제가 생겨 다양한 사진을 못 찍엇다.
그럭재는 목포와 부산을 잇는 2번 국도가 통과하는 곳으로,
보성군 득량면과 보성읍을 잇는 고개로 현지 이정표에는 기러기재라 표기되어 있다.
대룡산은 정맥길에서 약400여미터 벗어나 있어서 대부분의 님들은 그냥 지나고
몇분만이 다녀온다.
오도치(五道峙)의 유래
보성군 겸백면과 득량면의 경계로 845번 2차선 지방도이며, 이곳 사람들에게는 '오도재'
보다는 '겸백고개'로 더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오도재'는 등산로 우측으로 '오도'마을이 있어서 붙혀진 이름인것 같은데 다른 일설로는
방장산에서 흘러 내리는 산세가 '다섯마리 돼지가 내려오는 것 같다' 하여 '오돗재' 라고,
불리다가 한자로 음차되어 현재의 '오도재'가 되었다고 한다
사진을 가져 가실땐 원본을 가져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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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mance(Chopin) - Lanfranco Per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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