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km이상 기맥.지맥/문수지맥(완주)

문수지맥 3구간(옛고개=>학가산=>오치고개)

부뜰이(윤종국) 2020. 10. 20. 01:48

 

문수지맥

부뜰이와 천왕이 걸어온 문수지맥

지맥길 86.5(접속2.9/이탈)km/47시간35분

 

산행일=2020년10월18일

산행지=문수지맥 3구간(안동시/영주시/예천군)

산행경로=옛고개(5번 국도/915번 도로)=>413.2봉=>405.1봉=>선황재=>401.9봉=>507.1봉=>큰두무재=>417.5봉=>561.6봉=>백현고개=>조운산(鳥雲山:634.5m)왕복=>운곡고개=>485.1봉=>무시골재=>난가대=>상모봉=>국사봉=>학가산(鶴駕山:869.8m)=>예천 학가산(어풍대:869.6m)왕복=>당재=>623.5봉=>원통재=>575.1봉=>갈마령=>보문산(普門山:642.6m)=>중대바위=>318.3봉=>오치고개(7번 도로)

거리 및 소요시간=29.7km/15시간54분

 

순차적으로 진행했더라면 벌써 지난주에 끝넷을 문수지맥을 아직도 두구간이나 남기고 있다.

이번주말에도 갑자기 일이 생기는 바람에 장거리인 문수지맥을 가야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을 하다가 날씨도 하루가 다르게 추워지니 더는 늦출수가 없어서 장거리인 문수지맥을 잇기 위해서 토욜저녁에 인천을 출발하여 약 20km지점인 무시골재에 들러서 아침겸 점심으로 먹을 밥과 막걸리한통과 물한통을 풀숲에 숨겨두고 옛고개에 있는 천왕봉이차를 빼서 오늘 날머리인 오치고개에 도착하고 늘 하던데로 간단하게 요기를하고 내차를 이곳에 두고 천왕봉이차로 다시 옛고개로 출발한다.

다음에도 2주후에나 다시오게 될 것이므로 한적한 공터에다 주차를하고 산행을시작 한다.

 

 

 

옛고개(古峴)는 안동시 녹전면 녹내리와 영주시 평은면 오운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구 5번 국도와 915번 지방도로가 만나는 지점으로 서쪽으로는 안동과 대구방향으로 가는 길이고 동쪽/북쪽으로는 봉화. 태백 방향으로 남쪽으로는 영주와 예천으로 가는 길이다.

예전에는 교통량이 많았던 곳이지만 지금은 오운터널이 뚫리면서 교통량이 현저히 줄어 들엇다.

옛고개라 불리게된 유래를 보면 과거 영주.안동.봉화 방면으로 갈라지는 고개라 하여 옛 고(古)자에 고개 현(峴)자를 써서 옛고개(고현:古峴)라 불러왔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예고개로 변음되어 불리고 있다.

옛고개는 평은면 소재지까지 15리.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까지 15리. 안동시 녹전면 원천리까지 15리로 이 고개를 넘어 다니던 소금장수와 등짐장사꾼들이 쉬어가는 길목이었다고 전해진다.

 

버스정류장옆에 임도로 들어가니 밭이 나오고 밭 가장자리로 진행해 본다

 

5분이 안돼서 밭 끝트머리에 닿고보니 마르금으로는 진행을할 수 없을정도로 잡목이 빼곡하고

우측아래로는 사과 과수원인데. 높고 내려선다다고 하더라도 쉬운일이 아닌거 같다.

 

미련없이 돌아서서 5번국도를 따라서 오운리 쪽으로 200m정도 내려가면 과수원으로 들어가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있다.

 

5분정도 올라가면 농가 두어채를 지나고 비포장길로 바뀌고

임도는 마루금을 넘어가고 우측으로 올라서니 자연스럽게 마루금에 접속한다

 

예전에 임도였던거 같은데

얼마나 묵엇는지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겨우보이는 정도이고

 

gps에서 확인을하면 정확히 마루금이다

 

길라자비와 세르파님의 표지기를 방갑게 만나고

 

첯봉인 413.2봉에 올라서는데

별다른 표시는 없고

좌측아래 과수원에는 녹음기를 돌리는지 노래소리가 끝임없이 들려온다

아마도 동물들의 접근을 막기위한 수단인거 같다

 

감사합니다

힘이 팍팍 솟습니다

 

정상에 산불감시초소와 묘지가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월봉산에 올라선다

 

월봉산(月峰山:532.7m)은 영주시 평은면 오운리와 강동리.지곡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와 묘지가 한기있고 별다른 표시는 없다.

인증을하고 직진으로 무심코 가다보니 마루금에서 벗어났다는 경고음에 확인을해보니 우측으로 멀어진다

빽해서 우측으로 내려선다

진행방향으로 보면 좌측이다

 

월봉산에서 10여분 내려서니 성안고개이고 우측으로 올라선다

 성안 고개는라는 지명은 영주시 평은면 강동리 성안마을에서 따온 지명이다

성안마을은 옛날 이곳에 성이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으로 성안마을에서 지곡리로 내려가는 임도이다

 

 

지난주 각화지맥에서는 하루종일 잡목길이 이여지더니

오늘은 임도도 많고 잡목도 거의 없다시피 하고 길이 좋아도 너무좋다

 

이곳에 유명한 산이 있는것도 아닌데 어째서 이렇게 정비가 되어있을까

한참만에 묘지가 나오면서 좋은길은 끝이나고

무슨 사정이 있는지 마루금에는 길이 없고 좌측으로 우회해서 돌아가게 되여있다

 

전번 앞자리가 011 인걸보니 엄청오래전에 걸린 선생님의 시그널이 보이고

 

새로운 임도에 내려서고 이내 우측으로 꺽어 내려가고

 

몇분안돼서 좀전에 임도를다시 만나고

임도를횡단 해서 숲으로 들어가고

 

삼각점봉인 404.5봉에 닿는다

 

 

삼각점은 안동 421 이고

 

시멘트포장길에 내려서니 선황재이다

선황재는 평은면 강동리와 오운리를 잇는 고개로 우측 아래에는 강동리 금계마을이 있다.

 

선황재에서 우측모습

 

선황재에서 좌측모습

 

선황재에서 임도수준의 편한길을 걸으며 몇기의 묘지를 지나고 401.9봉에 올라선다

 

 

봉서사 갈림길을 지나면서 길은 더욱 좋아지고 금새 금계산에 올라선다

 

금계산은 영주시 평은면과 안동시 북후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유서깊은 고찰 봉서사를 품고 있다.

명산에 비해 지명유래에 대한 자료는 없으나 평은면 강동리 금계마을과 관계가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정상은 헬기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금계산이란 정상석 비용은 이곳이 고향인 강일호 경상북도 청년유도회장이 부담했고 표지석 글은 서예에 능한 전 안동시청 공무원 김오현씨가 썻다고 한다.

금계마을은 옛날에 금광산이 있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하는데 마을 안쪽 가장 높은 곳에 불가사의한 느티나무가 있어 보는 사람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느티나무는 틈도 없는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바위와 한 몸이 되어 살아가기 때문이다.

바위에는 금계옥대 공이산좌(金鷄玉 公李山座)무자소춘(戊子小春)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서쪽에 닭만한 금덩어리가 묻혔다는 전설이 있으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이곳에서 금점(金占)을 많이 했다고 한다.

 

 

 

바람한번 불면 떨어지게 생겼네

땅바닥에 떨어져 흉하게 되기전에 회수 한다

 

금계산에서 한시간을 진행하여 큰 두무재에 내려선다.

큰 두무재(大杜舞峙)는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옹천리에 위치하는 고개로 923번 지방도로가 지나가며 올천리에서 두산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예전에 안동과 봉화. 영주를 왕래할 때 주로 다녔던 고개로 조선시대 때 이 고개를 넘기 직전에 옹천역(甕泉驛)이 있었는데 옹천역은 세종실록지리지에도 기록되어 있는 오래된 조선시대의 역원(驛院)이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두모현(豆毛峴)은 부의 북쪽 35리에 있다."라는 기사가 나온다. 두모현은 『안동도회좌통지도』(안동)를 비롯하여 여러 옛 지도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또 『조선지지자료』에는 옹천동의 두무현(斗舞峴)이 한글 명칭 '드뭇제'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두모현, 두무현, 드뭇제 모두 지금의 명칭 큰두무재와 관련이 깊은 지명이다. 다만 큰두무재에서 접두사 '큰-'을 붙인 것은 연이은 두 개의 고개 중 더 길고 높은 고개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

 

큰 두무재를 지나면서 30여분 올라서면 등급을알 수 없는 삼각점이 있는 417.4봉에 올라선다

 

삼각점은 판독을할 수 없고

 

 흔적만 있어서 주위를 수색해 보았지만 찿을 수 없었다

 

송전탑이 있는 무명봉에 올라서니 서서히 날이 밝아온다

 

 

아래로는 운해가 깔려있고 일출이 곧 시작되겠는데

좀체 조망이 열리질 않는다

 

송전탑을 지나면서 마루금상에 임도로 진행되고 두어번 가벼운 오름으로 561.6봉에 올라선다

 

 

561.6봉을 지나고 3분이 안돼서 지맥길은 우측 잡목숲으로 내려선다

 

계곡으로 내려가는 듯한 마루금이 능선으로 살아나고

과수원이 나오면서 안동시 북후면 월전리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사과가 열리기는 많이 열렷는데

별로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곧이여 2차선 도로가 지나는 백현고개에 내려산다

백현고개는 안동시 서후면 재품리에 있는 고개로 아래쪽에 백현마을에서 유래되었고

백현마을은 북쪽에 흰 운모석이 나는 광산이 있는데 운모를 실어 나르다가 흘러서 고개가 흰색으로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백현고개에서 월전리 방향

 

백현고개에서 한 봉우리 올라서니 조운산이 숲 사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조운산 갈림길에 닿고 나무에다 배냥을 걸어두고

마루금에서 우측으로 300m정도 벗어나 있는 조운산을 다녀 오기로 한다

 

조운산 오름길은 어찌나 가파른지 코가 땅에 닿을듯한 급경사길을 올라서니

정상에는 묘지가 한기 있고 산패는 바닥에 떨어져 있다

 

 

땅에 떨어져 있는 산패을 원래있던 제자리에 걸어준다

조운산(鳥雲山: 634.5m)은 경상북도 안동시 북후면 월전리와 도촌리. 신전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 아래에서 보면 송곳같이 뾰족하게 솟아있는 산이지만 정상에 올라보면 펑퍼짐한 산이다.

북쪽으로는 월전리 갈미봉으로, 남쪽으로는 재품리 천등산으로 이어진다.
『여지도서』(예안)에 조골산(照骨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골산은 본부 북쪽 40리에 있고 기우단이 있으며 동쪽의 예안 영지산(靈芝山, 지금의 도산면 분천리 영지산)에서 산줄기가 이어졌고 남쪽의 본부 학가산에서 산줄기가 멈춘다."라는 기사가 있다. 『안동도회좌통지도』(안동)에 조골산 주위로 학가산, 천등산, 봉정사, 두모현(頭毛峴, 지금의 두무재)이 묘사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도 '북후면 월전동 조골산' 기록이 나온다. 다만 『조선지형도』에는 지금의 이름인 조운산(鳥雲山)으로 표시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조운산에서 가파르게 내려서면 운곡고개에 내려선다

운곡고개(雲谷峴)는 안동시 북후면 신전리 운곡마을에서 도천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운곡마을은 운골. 군골. 궁골이라고도 부르며 지대가 높아서 구름이 닿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문화유적으로 운학묘가 있다.

 

임도를 가로질러 맞은편 산으로 올라간다

 

운곡고개에서 월전리 방향으로 살짝 넘어가보니 학가산이 멋드러지게 조망된다

 

송이철이라고 등로 곳곳에 경고문 현수막이 수도 없이 걸려있고

비닐막사도 여려군데 있었고 여기는 열감지기에 카메라까지 설치되여 있다

다행이 내가먼저 일찌감치 발견하고 좌측으로 돌아가서 찍어본다

 

운곡고개에서 24분을 진행하여 493.9봉에 닿고  산패를 설치하는데

송이꾼들손에 무사할려나 모르겠다

 

 

493.9봉에서 38분 진행하여 485.1봉에 올라서고

 

 

오늘 기차산꾼 선배님 표지기를 처음으로 본다

 

485.1봉에서 내려서면 학가산으로 올라가는 도로에 내려서니 여기위치가 지도상에 무시골재 또는 새터재라고도 한다

무시골재는 안동시 북후면 신전리와 서우면 재품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학가산으로 오르는 자동차 길이다.

우측으로는 신전리 새터와 마구실(마곡)로 내려가는 아스팔트 도로가 보인다.

 

무시골재에서 어잿밤에 숨겨둔 물품을 회수해서 아침겸 점심을 먹는다

 

무시골재에서 편안하게 식사를하고 학가산을 오른다

 

첯번째 주차장에 닿고 정상까지 2.6km라고 한다.

주차장은 말이좋아 주차장이지 길가에 승용차 두대정도 댈수있는 공간밖에 안된다.

 

좌측으로 주차장을 지나면서 바로 좌측으로 올라붙는다

 

많은 사람들이 도로로 진행을 했는지 마루금에는 전혀 길이 보이질 않는다

 

그래도 마루금이 맞으니 꾸역꾸역 올라간다

 

바위가 나오면 이리저리 돌아서 가고

 

커다란 바위가 나오면 좌측으로 우회해서 올라간다

 

통천문 비슷한 것도 지나고

 

도로에서 산으로 들면서부터 진을빼고 올라서니 튼튼한 철망으로 막혀있다

바로 앞 50m도 안되는 거리에 난가대가 있는데

우측으로 철망을 따라서 돌아간다

 

철망안으로 랜즈을 디밀고 학가산문화환경연구소을 담아본다

 

우측으로 철망을 따라서 돌아가는데 어떤곳은 철망에 매달리다시피 해서 통과하는 곳도 있다

 

그렇게 10분정도 내려가니 개구멍이 있어서 안으로 들어간다

돌담과 잡목숲을 5분정도 올라가면 난가대로 올라가는 임도에 올라선다

 

임도에 올라서서 좌측으로 조금 올라가면

 

학가산문화환경연구소와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난가대에 오라선다.

난가대(爛柯臺)는 송암 권호문(松巖 權好文:1532~1587) 선생이 지은 이름으로 난가(爛柯)라는 뜻은 바둑이나 음악 등에 심취해서 시간가는 줄 모르는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 이 대에 오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즐거움이 있음을 의미한다.

송암은 퇴계 이황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일대를 풍미했던 서애.학봉.백담 등과 교분이 두터웠고 학행과 덕망이 높았던 문인이며 선비였다.

평생 벼슬길을 거부하고 자연을 벗하며 살았다 하여 스승 퇴계는 그를 소쇄산림지풍(瀟灑山林之風) 이 있다. 는 인물평을 남겼다.

송암은 청성산 아래의 무민재에서 학가산을 드나들며 학가산의 3봉(三峯)과 3대(三臺)의 이름을 지었고 일생동안 학가산 사랑에 힘 쓴 인물이다.

난가대는 안동시와 영주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송암 선생이 이름 붙인 학가산의 3봉(三峯)은 바위의 모습이 날카로운 창의 모습을 지녔다 하여 이름붙인 삼모봉(三矛峯). 지상의 아름다운 곳으로 신선들이 거닐며 놀았다는 유선봉(遊仙峯). 정성을 모아 안녕을 이루게 한다는 적성봉(適星峯)은 현재 학가산의 최고봉인 국사봉(國祠峯, 882m)으로 성화를 채화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삼대(三臺)는 삼모봉 동쪽 능선에 있는 학이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살았다는 학서대(鶴棲臺).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즐거움이 있다는 난가대(爛柯臺). 그리고 예천학가산(869.6m) 북릉에 있는 거센 바람을 거닐고 다닌다는 어풍대(御風臺)를 말한다.

 

난가대에 올라 이쪽저쪽 두루 살펴보고 내려선다

 

난가대에 대한 안내판이 있지만 낡고 망가져서 읽기가 불편하다

 

난가대에서 동쪽조망

방향으로 보면 문수지맥 봉수산에서 분기한 용암지맥 산줄기가 지나는 위치인데

사진에서는 구분을할 수 없다

 

 

난가대에서 내려와 산불감시초소에서 지나온 방향

가운데로 힘들게 올랏던 조운산 그 우측으로 문수지맥에서 약 1km이상 떨어져있는 천등산

 

난가대에서 마루금은 앞에 보이는 사각정자 뒤로 올라가야 하지만kbs 송신소 철조망을 넘을 수 없으므로

 

왔던길로 되돌아 내려간다

 

삼거리가 나오고 좌측으로 올라간다

 

삼거리에서 좌측이 우리가 내려온 난가대 방향

 

좌측은 kbs학가산 송신소 방향

우측은 mbc학가산 송신소 방향

 

학가산 kbs송신소 방향으로 올라간다

 

 

삼거리에서 10여분 올라가면 좌측으로 kbs 송신소 입구을 지난다

 

mbc안동문화방송 방향으로 진행한다

 

약수터가 나오고 어느 무속인이 치성을 드리는 흔적이 보이고 약숫물은 음용수로는 부적합해 보인다

 

직진으로 올라가야 학서대가 있는 곳이지만 군부대가 앉아있는 곳이라 우측 산길로 올라선다

 

이정목이 나오고 당재 방향으로 진행한다

 

 

국사봉 오름길은 최근에 설치한 듯한 목조계단으로 쉽게 올라간다

 

꽤긴 계단길을 올라서면 좌측으로 유선봉이 보인다.

유선봉(遊仙峯: 866m)은 국사봉과 삼모봉 사이에 있는 바위와 소나무가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봉우리로, 유선봉에 올라보면 사방으로 보이는 조망의 절경이 가히 일품인 곳이다.
유선(遊仙)이란 신선들이 흥겹게 놀고 있다는 뜻으로 송암 권호문선생이 지은 이름이다.

유선봉은 그냥 통과한다

 

유선봉의 유래가적힌 안내문

 

국사봉의 안내판을 대충 읽어보구 국사봉을 올라가 본다

 

학가산 국사봉(國祠峯.882m)은 안동시 서후면과 북후면 . 예천군 보문면에 걸쳐 있으며 학가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주봉 역활을 하며 산 모양이 '날아가는 학과 같다'하여 학가산(鶴駕山)이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이 국사봉은 '학의 머리' 혹은 '학 위에 탄 신선'의 모습이라고 알려져 있다. 국사봉은 학가산의 7개 봉우리 중 해발 882m의 최고봉이다. 서학가산성의 중앙에 위치하여 장군의 지휘소로 쓰였고 정상의 우묵한 바위는 난공불락의 자연 보채(堡砦) 역할을 하였으며 나라(임금)에 제사를 올렸던 곳이기도 하다.
영가지 산천 조에는 학가산 국사봉의 아름다운 조망을 기록으로 남겼으며, 사실 국사봉에 올라보면 사방이 낮은 언덕처럼 보이는 조망이 뛰어난 곳이다.
국사봉은 능인굴과 함께 신라시대 능인대사가 수행하던 불교성지로 알려져 있고, 학가산 사랑이 지극하였던 송암 권호문선생은 이 봉을 적성봉(適星峰)이라 고쳐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국사봉은 2005년 경북도민 체전의 성화 채화지였다.

 

 

학가산 국사봉에서 인증을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mbc송신기

 

좌측에 mbc. 우측에 kbs

 

학가산에서 좌측인 동쪽 조망

 

북쪽도 조망하고

 

 

진행방향도 살펴보고

 

당재방향으로

 

국사봉 아래에 능인굴이 있어서 내려가 본다

 

능인굴의 안내판

 

과연 이런데서 사람이 살수 있었을까

 

바가지가 있어서 안쪽을 들여다 보지만 마실수 있는 물은 못된다

 

상사바위 방향으로 예천 학가산이라 불리는 봉을 다녀오기로 한다

 

무슨 안테나 시설을 지나서

 

300여 미터 지점에 학가산이란 정상석이 있는데.

앞전에서본 학가산의 내용과 똑 같다.

한자도 그렇고 높이도 같고 국사봉이란 것도 같다.

그런데 현대 지형도에서는 여기를 869.6m로 표기되여 있고

앞전에 지나온 국사봉은 869.8m로 표기되여 0.2m가 높다

 

학가산(鶴駕山: 882m)은 보는 위치에 따라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학이 앉았다 날아가는 형상 같다고 하여 학가산(鶴駕山)이라 하였는데. 영주에서는 정상이 평평하게 보여 선비봉, 안동에서는 울퉁불퉁하게 보여 문둥이봉, 예천에서는 그 모습이 수려한 인물과 같다고 하여 인물봉으로 불린다.
산 아래 재품리 주민들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마을에서 재주가 많고 인품이 뛰어난 인재가 많이 배출되는 것을 시기하여, 재품리(才品里)였던 마을 이름을 ‘놈 자(者)’를 써서 자품리(者品里)로 격을 낮추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볼 때 아름다운 학가산의 이름도 원래는 학가산(鶴駕山)이 아니라 학가산(鶴佳山)이 아니었을까 추정하기도 한다.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서 당재 방향으로 내려간다

 

능인굴에서 30여분을 내려서니 사과 과수원이 나오고 건너편으로 올라야될 623.5봉이 마주보인다

 

과수원을 내려서니 바로 당재. 당재(堂峴)는 안동시 서후면 재품리 천주마을과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 느리티리 마을 경게에 있는 고개로 두 마을로 이여지는 시멘트 도로가 있는데 예전에 서낭당이 있어서 당재라 부르는 것으로 짐작할 뿐.정확한 기록은 찿을 수 없었다.

느리티리 마을의 지명 유래는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이 하늘 거미가 줄을 친 형국이라 산 모양이 '느릇하다(느릿하다)'하여 '느릇'이라 하였고, 좌측의 천주마을 지명은 학가산으로 오르는 깎아지른 절벽이 하늘을 받치는 기둥과 같다하여 천주라 하였다고 한다

 

당재에는 두개의 이정목이 서있다

 

또 다른 이정목

 

당재에서 우측으로 느르티리 방향

 

좌측으로 천주마을 방향

 

직진으로 방향을잡고

 

좌측으로 페가쪽으로 들어가다가 좌측으로 올라 붙는다

 

당재에서 25분여 올라서니 623.5봉에 닿는다

 

623.5봉에서 인증을 남기고

 

30여분 진행하여 수백년은 됨음직한 느티나무가 있는 원통재에 내려선다

원통재는 안동시 풍산읍 죽전리 관음골 마을에서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 산성마을로 이여지는 고개로

정상에는 수백년은 된듯한 느티나무 한그루가 고개를 지키고 있다.

 

정면에서 보면 속을 다 비워내고서도 살아있는게 신기할 정도이다

 

도로가 우측으로 휘여지는 위치에서 좌측에 그물망이 보이는 곳으로 올라선다

 

뒤를 돌아보니 사과밭 건너로 학가산이 보이고 우측으로 623.5봉이 보인다

여기서 보니 보문면 산성리 마을도 보이는데 마을이 꽤 커보인다

 

봉우리에 올라서니 묘지가 한기 있고 바위가 몇개 보인다

오늘 구간에는 유난히도 봉우리에서 묘지를많이 본다

묘지는 소나무가 많은 근처에는 쓸게 못되는거 같다.

솔잎이 많은 곳에는 잔뒤는 물론 어떠한 식물도 자라질 못하기 때문이다.

 

 

원통재에서 30여분을 엄청시리 빢쎄게 올라서니 헬기장이고

2(21)등 삼각점이 있는 보문산에 올라서는데 산패는 땅바닥에 떨어져 있다

들어보니 스텐판으로 묵직하다

조운산에서도 그랫는데. 오늘 두번씩이나 떨어져 있는것을 제자리에 다시 달아준다

 

삼각점은 어디에 있는지 두바퀴나 돌면서 겨우 찿아낸다.

 

보문산(普門山:642.6m)은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와 예천군 보문면 산성리와 수계리의 경게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폐헬기장이고 산불감시 초소와 2(21)등 삼각점이 있다.

보문산 이라 불리게 된 유래는 찿을길이 없고 예천군 보문면 수계리에 있는 보문사에서 유래 되지 않았을가 짐작을 해본다.

 

보문산의 삼각점은 2(21)등 삼각점 이고

 

보문산 내림길은 예전에 산불이 났던 지역이라 심심찮게 조망이 열리고 안동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진행방향으로는 다음 구간에 오르게될 507.5봉이 건너다 보인다.

 

보문산에서 내림길은 산불이 났던 지역이라 잡목도 심하다

쓰러진 통나무도 많고 뻣뻣한 잡목을 뚫고 올라서니 좌측으로 중대바위가 코앞이다

중대바위(中隊岩)는 안동시 풍산읍 서미리에 있는 암릉으로 지맥길에서 30m정도 좌측으로 있고 군대를 통솔하는 용맹한 장군이 투구를 쓴 모습과 흡사하여 붙혀진 이름이고 암릉아래에 중대사라는 절이 있어서 중대바위라 불린다는 설이 있으며 중대바우. 장군바위. 탕건(宕巾)바우라고도 부른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신성스럽게 받들어지는 골메기와 같은 신성물이다.

실제 이 바위로 인하여 마을에 재앙이 없고 평안하다고 믿고 있다.

이 마을에는 예로부터 높은 관직에 진출한 사람이 많이 배출되었으며 오늘날에도 판사. 군수까지 나왔고 전쟁에 나간 동리 사람들이 전사자 한명 없었다는 것은 중대바위의 영험 때문이라 믿고 있다.

 

중대바위에 올라서니 가장먼저 지나온 쪽으로 학가산이 보이길래 쭈~욱 당겨서 담아본다

 

그리고 방금전에 내려온 보문산도 담아보고

 

진행방향으로 다음구간에 오르게될 507.5봉

저 봉우리도 오름길이 산불지역이라 잡목이 대단하다고 하던데....

 

중대바위 바로 밑에는 다락논과 서미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다음구간에 오를 507.5봉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선자님들 옆에 나도 표지기한장 남겨본다

 

중대바위에서 묘지몇기 지나고 448.5봉에 올라서고

 

 

 

묘지가 나오면서 시원스런 조망이 자주 열린다

 

멀리 안동시내

 

그런데 선답자들께서 그렇게 힘들게 내려섯다는 보문산에서 오치고개 구간

중대바위를 지나고 묘지가 몇기 보이면서 길이 이렇게 정비가 되여 있었다

아마도 묘지를 벌초하러 와서 묘지 찿아 가느라고 길을 내여놓은거 같다.

덕분에 편안하게 쉽게 내려설 수 있었다

 

바로 코 앞에 다가온 507.5봉

 

좌측으로 안동시 풍산읍 신양리에 오치마을과 신양저수지와 중앙고속도로가 내려다 보인다

 

오치고개로 내려가는 임도에 내려서서 지형도를 살펴보니 아직 318.3봉이 있어서

우측 임도로 들어가보니 묘지가 나오고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보이지도 않는다.

가까스로 318.3봉에는 올라섯는데 마르금으로는 도저히 내려설 수가 없는 빼곡한 잡목 숲이다

 

임도에서 우측으로 예천군 보문면 오암리 오치마을 방향

 

좌측으로 안동시 풍산읍 오치동 오치마을 방향

 

318.3봉에서 마루금으로는 도저히 내려설 수가 없어서 다시 되돌아 나와서 좌측으로 임도따라 내려간다

 

오치고개는 안동시 풍산읍 신양리 오치동과 에천군 모문면 오암리 오치마을의 경계에 잇는 고개로 정상에는 이동통신탑과 면계(面界)를 표시하는 안내판과 가건물이 있다.

조금 특이한 점은 다른 시 군의 면에 있는 마을이름이 똑같이 오치마을이다.

지명 유래를보면 마을 형국이 마치 까마귀가 먹이를 쪼아먹는 형국을 닮았다고 해서 까마귀 오(烏) 언덕 치(峙)자를 써서 오치라 하였는데 오티는 오치에서 음이 변한 것으로 이 오티고개의 동쪽은 안동땅이고 서쪽은 예천 오티인데 예전에는 고개마루에 서낭당이 있어 당고개라고도 하였다.

 

 

다음 들머리는 506.9봉 방향으로

어잿밤에 내려와서 잠 한숨 안자고 산행을 했으니 어디가서 쉬어야 한다

 

오치고개에서 산행을 마치고 바로 예천ic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원주시 신림면 신림ic로 빠지면 5km지점인

영월지맥이 지나는 신림터널입구에 도착한다.

터널입구 계곡에서 알탕을하고 5분정도 올라가면 영월지맥 싸리치에 올라선다.

여기가 비박을 하기에는 아주 명당이다.

지금까지 여러번 이용하였고 앞으로도 계속 이용하게 될 것이다

 

집에서 준비해간 삼결살과 쏘맥으로 피로를 풀고 새벽2시에 알람을 마추고 8시쯤에 잠자리에 든다.

알람이 울리기전에 잠에서 깨고 시간은보니 2시가 다 되였다

그만 자리를 털고 커피한잔씩 끌여서 마시고 출발하니 5시가 안되서 집에 도착한다

 

.소요경비

이동거리=561km(왕복)

유류비=40.770원(연비15km/디젤1.090원)

톨비=갈때 11.000원/올때 4.900원

등=30.000원

합계=86.67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