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수지맥
부뜰이와 천왕이 걸어온 문수지맥
지맥길 26.4접속2.9/이탈)km/16시간36분
산행일=2020년9월12일
산행지=문수지맥 1구간(봉화군)
산행경로=도래기재=>옥돌봉=>문수지맥 분기점=>983.7봉=>주실령=>969.6봉=>928.4봉=>예배령=>1047.3봉=>문수산(文殊山:1207.4m)=>1157.8봉=>1003.8봉=>887.1봉=>가부재=>989.4봉=>876.9봉=>795.5봉=>7078봉=>흙목이재=>669.5봉=>갈방산(葛芳山:711.5m)=>550.7봉=>다덕현=>423.4봉=>509.6봉=>옛고개=>460.4봉=>482.4봉=>410봉=>407봉=>미륵고개=>미륵재(918번 도로)
거리 및 소요시간=26.4(접2.9/탈)km/16시간36분
올 여름은 비 애기를 안할 수 가 없을 정도로 시도 때도 없이 자주 내린다.
9월도 중순에 가까운 시기라 이제는 비가 없을 것이라 확신을 하였고 실제로 일주일 전부터 대체로 맑음으로 예보가 된다.
잔뜩 기대를하고 산행준비를 완벽하게 해 놓았는데 하루전날 갑자기 구름 많음으로 뒤집어진다.
그래도 비가 안온다는 것 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당일날 저녁이 되니 여기저기에 비가 올거라고 한다.
이 무슨 날벼락같은 경우가 있나.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서 기상청에 직접 문의해보니 내가 가고자하는 봉화지역에는 흐리기만 하고 비는 안올거라 한다.
일단 출발을 한다. 그런데 출발후 10분이 안되서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꽤 많은양의 비가내린다. 경기도을 벗어나고 강원도인 원주을지나고 충청도 땅인 제천에 들어서니 비가 온 흔적도 없고 땅이 뽀송뽀송 하다. 그런데 경상도인 영주을 지나면서 다시 빗방울이 굵어진다. 에고.
가을 산행으로 문수지맥을 시작으로 각화지맥. 자개지맥. 용암지맥. 자구지맥. 국사지맥. 운달지맥까지 주위에 옹망졸망 모여있는 몇개의 지맥을 큰 눈이 오기전에 끝내고 올라올 계획으로 천왕봉이 차를 같이 가지고 내려간다. 3~4개월 정도 현지에두고 들 날머리 교통편으로 이용할 것이다.
금욜저녁 7시 반쯤에 집을 나서는데 퇴근시간도 지났는데 왠 차들이 그렇게 많은지 보통 15분이면 중동ic에 올라서는데 오늘은 40분이나 걸려서 겨우 고속도로에 올라선다.
고속도로도 차량들로 꽉 들어차서 속도를 못내고 인천을 벗어나는데 한시간이 넘게 걸린다.
추석이 다가오니 저마다 고향에 벌초하러 가는 사람들이란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경기도 광주까지 가다서달 반복하다가 제2 영동고속도에 들어가면서 서서히 제 속도를내기 시작한다.
문수지맥은 5구간으로 진행할 예정이고 1구간 날머리로 잡은 미륵고개 918번 도로 순직경찰추모비 주차장에 11시반이 넘어서 도착한다.
천왕봉이 차를 여기에 두고 오늘 구간에 지나게될 약 20km지점인 붓든고개에 점심으로 먹을 밥과 물 한병 막걸리 한통을 풀숲에 숨겨두고 새벽에 먹을 밥은 4km지점인 주실령에 두고 도래기재로 갈 계획이였는데 주실령에 도착하니 장대비가 주륵주륵 내린다. 준비한 것이 취사도구라 한참을 고민을 하다가 그냥 도래기재로 이동한다.
그런데 왜 굳이 도래기재로 갔는지 모를일이다. 차라리 여기 주실령에서 분기점을 왕복을하면 오히러 접속구간이 800m정도가 짧은데. 왜 그 생각을 못했나 모를 일이다.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 별 생각없이 우리도 그렇게 한거같다.
후답자님들께서는 문수지맥을 하실때 주실령에서 분기점까지 왕복하는 것을 검토해 보시기 바란다.
옥돌봉까지 왕복을 하더라도 800m이상은 짧기 때문이다.
도래기재에 도착은 했는데 장대비가 주륵주륵 내리니 도저히 발이 떨어지질 않는다. 도대체 몇시까지 비가 올려는지 강수량은 또 얼마나 되는지 또 다시 검색을 해보니 이게뭐냐 12시까지 비가 온다고 한다.
일단 쉬고 보자고 눈을 감는다. 한참을 자다가 눈을 뜨니 새벽 4시가 넘엇다. 일단 준비해간 된장국을 데워서 아침밥을 먹고 우중산행을 할것이냐 말것이냐 고민을 하는데. 6시쯤 되니 비가 그치는거 같다.
예보에는 꽤 많은양의 비가 올거라고 했는데.
우중복장을 갓추고 출발한다. 오늘 산행거리는 30km정도 되고 산패작업도 있고해서 15시간 이상으로 예상을 했는데. 계획했던 시간보다 4시간이나 늦게 시작했으니 야간산행을 피할수 가 없게 되였다.
시작할 때 야간산행이나 끝날 때 야간산행이나 뭐 다를건 없지만 그래도 끝날때 야간산행은 좀 거시키 하지만 어쩔 수 없게 되였다.
문수지맥(文殊枝脈)은 백두대간 옥돌봉(1244m) 서남쪽 280m지점에서 분기하여 서남진하며 낙동강 본류와 내성천을 가르며 문수산(1207.6m). 갈방산(712m). 만리산(791.6m). 용두산(665m). 복두산(509m). 요성산(490m). 박달산(580m). 봉수산(569.6m). 천등산(575.4m). 조운산(635m). 학가산(874m). 보문산(641.7m). 대봉산(210m). 검무산(331.6m). 나부산(330m)을 일구고 낙동강 지류인 내성천이 낙동강 본류에 합수되는 삼강나루터 앞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114.5km의 산줄기 이다.
지나는 주요 봉우리와 거리
옥돌봉~1.9km~주실령~3.6km~예배령~1.8km~문수산~3.5km~가부재~6km~갈방산~3.9km~엣고개~3.6km~순직경찰비~4.7km~응봉산(0.3km왕복)~3.8km~만리산~3km~월오현~3.5km~용두산~3.7km~굴고개~0.7km~복두산~3.2km~방아재~2.3km~박달산~1.7km~봉수산~1.1km~옛고개~7.3km~큰두무재~5.1km~조운산~5.4km~학가산~5.1km~보문산~7.8km~대봉산~5.6km~검무산~19.9km~나부산~6.3km~내성천/낙동강 합수점~114.5km
출발에 앞서 도래기재 생태통로 앞에서 인증한다
도래기재(導驛峙)는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에서 우구치리(牛口峙里)를 거쳐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을 잇는 고개로 88번 지방도가 지난다. 재 동남쪽 아래의 도래기마을에서 재 이름을 따왔고. 도래기마을에는 조선시대 역(驛)이 있었고 역촌마을 이라고 해서 도역리(導驛里)라 불렀는데, 이것이 변해 현재 도래기재로 바뀐 것이다. 다른 옛 이름으로 도력현(道力峴)이라고 하기도 한다.
서벽리(西碧里)에서 백두대간을 가르는 도래기재를 넘으면 골짜기의 모양이 소의 입을 닮았다고 해서 우구치(牛口峙)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금정리)에는 금.은 광산인 금정광업소가 있었는데, 자연금이 나왔던 곳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한 곳이다.
이 고개 아래에는 1925년에 일본인들이 뚫은 터널인 금정수도 가 있다. 본래 금정광업에서 캐낸 광물을 수송하기 위해 건설된 터널이었으나. 1993년 이 곳을 운영하던 태백시에 위치한 함태탄광이 폐광하면서 금정광업소도 같이 문을 닫게 되자 터널도 폐쇄되었다.
금정 이라는 이름은 일본인들이 금광을 개발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당시 금광에서는 물이 많이 나와 금을 캐는 것이 마치 우물 속에서 금을 기르는 것과 같다고 해서 금정(金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도래기재를 사이에 두고 서벽에는 낙동강 발원지인 운곡천(雲谷川)이 흐르고, 도래기재 너머 우구치에서는 남한강 물인 내리천(內里川)이 흐른다
이정목에는 구룡산이 5.4km이고
진행방향으로 옥돌봉이 2.68km라고 안내한다
조금 오르다보니 비는 완전히 먿엇고
550년 철쭉 나무는 예전에 몇번 본것이라 그냥 패스한다
도래기재에서 1시간 10분이 걸려서 옥돌봉에 올라선다
옥돌봉(玉石峰1242m)은 원래 지명이 옥석산이 였다고 하며 그 유래를 보면 옥석산(玉石山. 1244.0m)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우구치리에 위치한 산으로 태백산에서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능선에 있다.
옥석산(玉石山)은 조선지형도에서 처음 볼 수 있다. 산의 정상부에 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의 '빛이 예천까지 비친다'고 해서 예천봉 또는 예천바위라고도 한다. 이곳은 6.25사변시 공산게릴라와의 치열한 격전지로도 유명하다. 운곡천이 발원하는 동쪽은 하곡을 이루어 낙동강 상류가 되고 북쪽에서 발원하는 내리천(內里川) 물은 남한강의 상류를 이룬다. 남쪽의 주실령(776m)과 서쪽의 박달령(1,017m)은 각각 영주시와 충청북도 단양군으로 통하는 길목이며. 동북쪽의 도래기재[道驛嶺]에 있는 금정 터널은 춘양면과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을 연결하는 주요교통로로 이용된다.
옥돌봉 인증은 천왕봉이만
옥돌봉에서 6분 내려서면 삼거리가 나오고 여기가 문수지맥 분기점 이다
우측으로 백두대간 선달산으로 이여지고
좌측으로 문수지맥이 분기한다
예전에 없던 새로운 이정목엔
우측으로 박달령이 2.7km이고 직진으로 주실령이 1.85km라고 한다
예전엔 이런 지맥분기점 이정표가 있었다.
한 겨울에도 이러고 다니던 때가 엇그제 같은데....
숲 사이로 조망이 열리고
주실령은 우측으로 내려서고 직진으로 조망테크가 있어서 올라가 본다
바위 위에 조망테크가 만들어져 있다
마침 비도 그쳤고 백두대간 방향으로 선달산이 선명하게 조망된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선달산(仙達山:1,236m)은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과 경북 봉화군 물야면, 영주시 부석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봉이 김선달을 연상케 하는 선달산의 유래는 여러 가지로 다양하다.
신선이 노닐던 산이란 뜻의 선달산(仙達山)이 먼저 올라야 할 산의 선달산(先達山)으로 바뀌었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남쪽 산기슭 부석사의 浮石을 일컫던 우리말 [선돌]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혹자는 이 산 북동쪽 지능선상의 마대산 동쪽 산기슭 하동면 와석리 노루목 일대에 위치한 조선시대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언 봉이 김선달)의 신위를 모신 당집과 묘소에서 그 이름을 유추하기도 한다.
선달(先達)이란 ‘과거에 급제하고도 아직 벼슬길로 나아가지 않는 신분’이라는 뜻과 ‘먼저 올라야 할 산’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선답자 최창남 선생은 '먼저 깨달은 산'이라는 뜻으로 보고 '선(先)'자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히 시간적 의미에서의 '먼저'가 아니라 '선험(先驗)적인 지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비해 선달(仙達)이란 선달(仙道)를 추구하는 무리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쭉쭉 남으로 뻗어 나가는 백두대간
주실령으로 올라오는 구불구불한 915번 지방도로 그 넘어로 봉화
운해속에 잠겨버린 봉화읍
진행방향으로 문수산이 우람하게 버티고 있는 모습이 지맥의 맹주답게 위풍 당당한 모습이다
좌측에 각화지맥 우측에 문수지맥 그 가운데로 봉화 춘양
춘양은 천하 명당지라 하여 정감록(鄭鑑錄)의 십승지지(十勝之地)는 조선시대에 사회의 난리를 피하여 몸을 보전할 수 있고 거주 환경이 좋은 10여 곳의 장소를 말하는데, 조선후기의 정치․사회적 혼란과 민간인들의 경제적 피폐라는 역사적 배경에서 생겨났다. 십승지의 입지조건은 자연환경이 좋고, 외침이나 정치적인 침해가 없으며, 자족적인 경제생활이 충족되는 곳이었다.
십승지의 위치에 관해 정감록의 「감결(鑑訣)」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몸을 보전할 땅이 열 있으니, 풍기 금계촌, 안동 화곡, 개령 용궁, 가야, 단춘, 공주 정산 마곡 진천, 목천, 봉화, 운봉 두류산, 태백으로 길이 살 수 있는 땅이다.” 이어서 열 곳 승지의 구체적인 지리적 위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첫째는 풍기 차암 금계촌(金鷄村)으로 소백산 두 물골 사이에 있다. 둘째는 화산 소령 고기(召嶺古基)로 청양현[현 춘양면]에 있는데, 봉화 동쪽 마을로 넘어 들어갔다. 셋째는 보은 속리산 증항(蒸項) 근처로, 난리를 만나 몸을 숨기면 만에 하나도 다치지 않을 것이다. 넷째는 운봉 행촌이다. 다섯째는 예천 금당실로 이 땅에는 난의 해가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에 임금의 수레가 닥치면 그렇지 않다. 여섯째는 공주 계룡산으로 유구 마곡의 두 물골의 둘레가 2백리나 되므로 난을 피할 수 있다. 일곱째는 영월 정동쪽 상류로 난을 피해 종적을 감출만 하다. 여덟째는 무주 무봉산 동쪽 동방 상동으로 피난 못할 곳이 없다. 아홉째는 부안 호암 아래가 가장 기이하다. 열째는 합천 가야산 만수봉으로 그 둘레가 2백리나 되어 영원히 몸을 보전할 수 있다. 정선현 상원산 계룡봉 역시 난을 피할 만하다.”
십승지지는 『정감록』의 문헌에 따라 위치와 장소가 조금씩 달리 나타나며 추가되기도 하였다.「남격암 산수 십승 보길지지」에는 감결에서 말한 열 곳 외에도 여러 장소가 더해졌다. 그 지역은 모두 태백산과 소백산의 남쪽으로서, 풍기와 영주, 서쪽으로 단양과 영춘, 동쪽으로 봉화와 안동이 보신처라고 하였고, 내포의 비인과 남포, 금오산, 덕유산, 두류산, 조계산, 가야산, 조령, 변산, 월출산, 내장산, 계룡산, 수산, 보미산, 오대산, 상원산, 팔령산, 유량산, 온산 등도 해당 장소로 들었다. 한편 『정감록』의 「서계이선생가장결」에는 “황간 영동 사이에는 가히 만 가호가 살아나고 청주 남쪽과 문의 북쪽 역시 모습을 숨길 수 있다.”고 다시 몇 군데가 추가되었다.『정감록』을 살펴보면 한 가지 의아한 것이 있는데, 십승지지에 북한에 관해 언급된 것은 없다는 점이다. “임진(臨津) 이북은 다시 오랑캐의 땅이 될 터이니 몸을 보전하는 것을 논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이곳 외에 경북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의 우복동도 난리를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여겨졌다.
지나온 쪽으로 오른쪽이 옥돌봉 좌측이 문수지맥 분기봉
각화지맥 마루금
저 멀리 보이는 산줄기는 위치상으로 볼때 자개지맥
주실령에 내려서니 그동안 멈추었던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한다
주실령은 외씨버선 길과도 겹치며 주실령과 박달령의 유래가 적힌 안내판이 있다
'외씨버선길'은 우리나라 대표 청정지역인 청송, 영양, 봉화, 영월 4개군이 함께 만든 4색(色) 매력 둘레길로, 이 4色길이 합쳐지면 조지훈 시인의 승무에 나오는 외씨버선과 모양이 비슷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유래가 적힌 안내판
주위를 살피는 중에 천왕봉이는 벌써 저기 고갯마루에 올라가 있다
쉬여가기 좋겠끔 아담한 정자도 있고 오전약수탕 3km 표지판이 보인다.
오전약수탕이 있는 마을은 예전에 쑥밭이란 뜻으로 애전(艾田)으로 불리던 곳인데 이 쑥밭이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두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이 지역이 물이 합수되는 지역이라 하천이 범람하여 항상 늪지대였기에 그런 뜻으로 수전(水田)이라 하였는데, 다른말로 쑤뱅이라 불리던 것이 쑥밭으로 변경되었다는 설이 있고, 또 하나는 이곳 약수물이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하여 문둥병 환자들이 약수를 먹고 몸을 씻고 이 지역에 있는 쑥으로 피부에 뜸을 뜨고 달여먹고 하여 병을 고쳤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어 쑥밭이라 불리웠다 한다.
전설에 의하면 오전 약수터는 물야면 오전리 후평장과 춘양 서벽장을 드나들며 장사를 하던 봇짐장수(褓負商) 곽개천이라는 사람이 서벽장을 보고 주실령을 넘어 후평장으로 가던 어느날 쑥밭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에 산신령이 나와 이르기를 "네 옆에 만병을 통치할 수 있는 약수가 있다"고 하였다. 잠에서 깨어 옆을 보니 과연 약물이 솟고 있었고, 조선 제9대 성종(1469 ~ 1494)때 발견된 이 약수는 이듬해 가장 물맛이 좋은 약수를 뽑는 대회에서 전국 최고의 약수로 뽑혔다고 한다.
이 약수는 탄산성분이 많아 톡쏘는 맛이 일품이며 주요성분은 유리탄산, 망간, 마그네슘이온, 염소, 중탄산, 칼슘이온, 철분으로 위장병과 피부병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한편, 오전약수탕 주변 등산로는 백두대간 구간으로 최근에는 등산객들이 많이 찾고 있고 맥반석 찜질방이 있어 약수샤워도 즐길 수 있다.
주실령은 해발 780m의 고개로 옥돌봉과 문수산 사이에 위치한 고개이다.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와 춘양면 서벽리를 이어주는 915번 지방도로가 지난다. 일부 지도에는 주보령으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지만 현지 도로교통 표지판에도 나와 있는대로 주실령이다. (한자 표기상 실(實)을 보(寶)로 오기한 듯 하며) 주실령 서쪽으로 자리한 물야면 오전리에는 탄산수로 이름 높은 오전약수(吾田藥水)가 있고, 동쪽 춘양면 서벽리에도 두내약수가 있다. 주실령은 해발 780m나 되는 높은 고개이지만 봉화군 자체의 해발높이가 높은 관계로 높이에 비하여 도로는 완만하게 지나간다
주실령에서 22분여 조금 빢쎄게 올라서니 갈림길 이고
우측으로 삼각점봉(983.7m)이 있어 여기에 배냥 내려두고 잠시 다녀온다
983.7봉은 헬기장이고 한쪽 귀퉁이에 삼각점이 있다
그런데 산패를 설치할만한 나무가 없네
나무가 굵어질 것을 대비해서 고리형으로 넉넉하게 설치한다
삼각점은 솔가지를 꺽어서 깨끗하게 청소를 해보니 춘양 301
983.7봉에서 완만하게 내려섯다가 올라서면 969.6봉
오래전에 선생님께서 설치한 산패는 현대지도와 차이가 많이 나서 교체한다
회수한 것은 선생님이 가져 가시면 새것으로 둔갑하여 새로운 산패로 태여난다
2년 전에 앞서간 나산적님 리본이 보이고
요즘 산행은 하시는지? 소식 들은지가 오래 되였네요
969.6봉에서 조금 가파르게 내려서면 겨우 흔적만 남아 있고 이정표가 없다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예배령에 내려선다. 지나온 주실령이 3km이고. 진행방향으로 문수산이 2.6km라고 안내한다.
예배령(禮拜嶺, 919m)은 경북 봉화군 물야면 개단리와 춘양면 서벽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물야면의 오록장과 봉화읍의 봉화장을 보기 위해 춘양, 강원도의 영월.상동 등지의 사람들이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이 고개는 물야면과 춘양면을 이어주는 매우 짧은 지름길이기는 하지만 산이 높고 경사가 매우 가파른 고개이다. 그래서인지 이 재를 넘기 위해서는 하룻밤을 묵고 넘어야 했다고 한다. 『조선지형도』에는 예비령(禮飛嶺)으로,『조선지지자료』에는 예비령(禮備嶺)으로 기재되어 ‘비’자의 한문이 상이하다. 『봉화군지』에는 예부령(禮夫嶺)으로 표기되어 있다.(한국지명유래집 경상편 지명, 2011. 12.국토지리정보원)
예배령은 애기를 업고 가던 아버지가 아이가 죽자 이곳에 묻고 혼자 갔다고 하는 전설이 있기도 하고, 조선시대 이퇴계 선생이 이 고개를 넘어다니시면서 문수산을 향하여 절을 하였다 하여 예배령이라 하였다는 설도 전해온다.
임진왜란 이후 십승지(十勝地)라는 말이 유행했다. 십승지는 오랜 전란에 시달린 조선 민초(民草)들이 찾던 이상향(理想鄕)을 말하는데, 전쟁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질병의 침입에도 끄떡없으며 자연재해에서도 무탈한 3재가 없는 복지(福地)가 바로 십승지다. 십승지라는 말이 맨 처음 등장한 것은 《정감록(鄭鑑錄)》인데, 《정감록》에 등장한 여러 십승지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이가 격암 남사고 선생이다. 십승지를 상술하면,
첫째, 경북 영주 풍기의 소백산 아래 금계촌이다.
둘째, 경북 봉화 화산 소령의 소라국 옛터로 태백산 아래 춘양면에 있다.
셋째, 경북 예천 금당동 북쪽 금당실마을이다.
넷째, 경남 합천 가야산 아래 만수동 주위 이백리다.
다섯째, 충북 보은 속리산 중항 근처다.
여섯째, 충남 공주시 유구•마곡 두 물길 사이 백리다.
일곱째, 전남 남원 운봉 두류산(지리산) 아래 동점촌 백리안이다.
여덟째, 전북 무주 무풍 북쪽 덕유산 근처다.
아홉째, 전북 부안 호암 아래 변산의 동쪽이다.
열째, 강원도 영월 정동쪽 상류다.
예배령에서 좌측으로 통나무 계단으로 내려서면 좌측에서 임도가 올라온다
임도 좌측모습
우측을 보면 마루금을 뭉텅 잘라내고 임도가 우측으로 넘어간다
절개지 위에 올라서서 내려다 본 모습
시간이 지나면 이곳을 예배령으로 부르게 될거같다
예배령에서 20여분을 빢쎄게 올라서면 1047.3봉
1047.3봉에서 10분이 안되서 축서사 갈림길에 내려서고
축서사(鷲棲寺)...는 신라 제 30대 문무왕 13년(서기673년)에 의상조사가 창건한 절로서 창건 연기설화에 의하면 문수산 아래 지림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절의 스님이 어느날 밤 지금의 개단 초등학교 앞산을 바라보니 휘황찬란한 빛이 발산되고 있어 광체가 나는 곳으로 달러갔더니 한 동자가 아주 잘 조성된 불상앞에서 절을 하고 있었다. 얼마후 그 동자는 청량산 문수보살이라며 구름을 타고 사라져 버리고 불상만 남았다.
훗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의상대사가 불상을 모실 곳을 찾아 다니다가 현 대웅전 터에 법당을 짓고 불상을 모시니 축서사의 창건이다 이때 산 이름도 문수보살이 출현하였다해서 문수산이라 한듯하다.
3년 뒤에 의상대사께서는 축서사에서 40여리 떨어진 봉황산 중턱에 대찰을 세웠으니 동국화엄제일도량인 부석사인데 흔히 축서사를 부석사의 큰집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있다.
유물로 보물 제995호인 봉화축서사석불좌상부광배(奉化鷲棲寺石佛坐像附光背)가 유명하다.
높이 108cm의 비로자나불좌상인 이 석불은 창건 당시 의상이 봉안한 것으로 통일신라 말기의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경내에 삼층석탑과 석등도 있는데, 각각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57호, 제158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중 삼층석탑에서 867년(경문왕 7)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했다는 석탑조성명기(石塔造成銘記)가 발견됨에 따라, 이 석탑이 867년에 조성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축서사 갈림길에서 30여분 치고 오르니 오늘구간에 최고봉이요 문수지맥의 맹주인 문수산에 올라선다.
문수산(文殊山, 1205m))은 경북 봉화군 물야면 개단리, 춘양면 서벽리, 봉성면 우곡리에 걸쳐있다. 백두대간 옥돌봉에서 남동쪽으로 안동 학가산까지 뻗어가는 문수지맥의 산으로 봉화의 진산(鎭山)이다. 신라시대에 강원도 수다사(水多寺)에서 도를 닦던 자장율사가 태백산을 찾아 헤매던 문수보살이 이 산에 화현(化現: 불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고 구제하려고 여러 모습으로 변하여 세상에 나타남)했다하여 문수산이라 했다고 전한다. 또 독수리가 웅크리고 앉아있는 생김새라 하여, 불법(佛法)에서 ‘날카로운 지혜’는 독수리의 부리와 같다는 이치에서 대승보살 중에 지혜가 날카롭고 뛰어난 문수보살의 이름을 따 문수산이라는 지명을 사용했다는 설도 있다.
산중에는 673년(신라 문무왕 13년) 의상(義湘)이 창건한 축서사(鷲棲寺)가 현존하며, 중대사(中隊寺), 서벽사(棲碧寺), 공벽암(控碧庵) 등 많은 절터가 있다.
예로부터 약수가 나는 명산이라고 부르는데 이 곳 문수산에는 오전약수를 비롯하여 다덕약수, 두내약수 등 3개의 천연탄산약수터가 있다.
문수산의 삼각점은 귀하디 귀한 1등 삼각점
문수산에 올라서니 주륵주륵 내리던 비도 소강상태로 하늘 색깔이 갑자기 달라보인다
아래에는 헬기장이 있고 봉우리에는 무인 산불감시 카메라 시설이 있다
문수산에서 내려서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구덩이가 있어서 이게 뭔가 살펴보니 주위가 말끔하게 정리가 될걸보니 등산로을 정비. 또는 개척하는 중인거 같다
잘 정비된길을 걸으니 금새 1157.8봉에 올라선다
이곳은 쉼터로 조성을 할려는지 터를 넓게 정비해 놓았다
어디까지 인지는 몰라도 말끔하게 정비된 길은 계속된다
칼날바위 거리는 10미터쯤 되는데 좌우가 절벽이다
우측이 조금 나아 보이기는 하나 맨몸으로 내려설 수는 없어 보인다
옆으로 매달려서 조심조심 통과한다
내려서서 돌아본 모습
말뚝을 박을 구덩이는 계속해서 나온다
두번째 위험구간 여기는 그래도 바위가 미끄럽지 않아서 크게 어렵지않게 통과한다
비가 그치니 급속도로 구름이 걷이기 시작한다
좌측 밑으로 돌아서 길이 만들어지는 걸 보니 큰 바위가 있나보다
직진으로 길이 있는데 우측으로 새로운 길이 보인다.
직감으로 30m직벽 로프구간 우회길 이란걸 알수 있었다.
안전하게 돌아서 진행한다.
길을 개척하면서 잘라낸 나무에는 유독 세르파님 띠지가 많이 보인다
일일이 풀어서 제자리에 걸어준다
내년 봄 쯤에 진행하시는 분들은 꽃길을 걷겠다
자재들이 여기에 잔뜩 쌓여있고
임도 사거리에 내려서니 여기가 지형도에 가부재이고 엄청나게 많은 계단용과 기둥용이 사방으로 쌓여있다
가부재는 봉화군 봉성면 우곡리와 춘양면 도심리 잇는 재이다. 가부재라 불리게된 유래를 보면 옛날 어느 장수가 갑옷을 이곳에 벗어 두엇다가 가져간 곳이라하여 가붓골이라 부르며 이 고개를 갑의치(甲衣峙)라고 불렸는데, 일제 때 가부치(加富峙)로 개칭 하였다고도 하고, 130여년 전에 강씨의 묘가 있었는데. 이 묘는 갑옷을 입었던 장군의 묘라 하여 「갑옷재」라 하였는데 그후 발음이 변하여 가부재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우측으로 봉화군 봉성면 우곡리 방향
좌측으로 봉화군 춘양면 도심리 방향
공사하시는 분들 간식시간 인듯하고 다 먹어서 줄게 없다고 하면서 옥수수 한개가 남았다고 옥수수를 한자루 주어서 허기를 면해본다
아직도 밥이 있는 붓든재까지는 두시간을 가야 하는데 얼마나 고마운지 감사합니다
지맥길은 우측으로 올라 붙는다
커다란 소나무 예전에 이 소나무에 구렁이가 살았다고 한다
가파르긴 해도 잘 정비된 비단같은 길을 걷는다
어제 오늘 만들어진 등산로
우리가 처음으로 밟아보는 것일거다
가부재에서 30여분 힘들게 올라서면 삼각점봉인 989.4봉
산패설치 하라고 아주 깔끔하게 정리를 해 놓은듯
삼각점은 춘양 303
인증을 하는중에 저 숲에 뭐가 보인다고 해서 들어가보니
오래전에 설치한거라 고도가 않맞고 요것은 재활용도 힘들어 보인다
그리고 무인 산불감시 카메라가 자리하고 있다
잘 정비된 길은 여기까지
지맥길은 원래 이런게 정상이지만 갑자기 이래돼 버리니 적응이 안되네
조금 나아지는가 싶더니
별로 나아 지지도 않고
795.5봉에 닿고 막걸리 한잔씩 마시며 쉬는 시간을 갖는다
뚜렸한 재의 흔적이 보여서 확인을 해보니 솔당재
솔당재는 봉화군 봉성면 우곡리와 법전면 법전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솔당재의 지명유래는 찾을 길이 없으며 이곳부터 좌측은 도래기재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여지던 춘양면이 법전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우측으로 봉화군 봉성면 우곡리 방향
사람의 발길이 끈긴지가 수십년은 된거같다
좌측으로 봉화군 춘양면 학산리 방향
솔당재에서 40여분 지독한 잡목길을 오르면 669.5봉
669.5봉에서 23분 내려서니 어잿밤에 점심으로 먹을 밥과 물 막걸리 한통을 숨겨둔 붓든 고개에 내려선다.
붓든 고개에는 송이 췌치꾼들 움막이 있다. 혹시라도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살금살금 다가 가서 보니 사람은 없다.
신속하게 물품을 회수하여 숲으로 올라서고 늦은 점심을 먹는다
붓든고개(575m)는 고개 동쪽의 붓든 마을이 있어서 붓든고개라 하였고 붓든은 붓둔, 북둔(北屯), 부둔(浮屯)에서 왔다. 마을의 양쪽에 베틀 같은 산이 있고 가운데 북처럼 생긴 산이 있어서 유래된 마을 이름이며, 마을에 둔덕이 많아 교통이 불편한 오지부락 이다
좌측으로 우리가 어잿밤에 올라왔던 봉화군 법전면 법전리 붓든마을 방향
좌측으로 봉화군 봉성면 우곡리 우르실마을 방향
늦은 점심을먹고 길은 뚜렸하지만 좌우에서 우거진 잡목을 헤치고 무명봉하나 올랏다 내려서니 안부에 또 다른 움막이 나타난다
인공 굴인지 자연 굴인지 모를 동굴이 여러번 보인다
붓든 고개에서 세번째봉에 올라서니 갈방산이다
갈방산(葛芳山:711.5m)은 봉화군 법전면 법전리와 봉성면 우곡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지명의 유래는 알 수 없다.
‘칡 갈(葛), 꽃다울 방(芳)으로 한자를 풀이하면 칡꽃이 많은 산이란 뜻이다.
갈방산에서 꾸준하게 한참을 내려섯다가 한차레 치고 오르면 550.7봉
어디서 길을 놓쳤는지 지독한 잡목숲이 이여지고 가시잡목 숲을 헤치고 내려서니 철계단이 나온다
내려서서 보니 36번 국도가 지나는 다덕현 우측으로 내려서야 하는데 잘못 내려선 것이다
다덕현(多德峴)은 봉화군 봉성면 우곡리와 법전면 법전리 사이에 있는 고개로 육교가 있으며 육교쪽은 봉화와 춘양을 잇는 구 36번 국도가 지나가고 아랫쪽은 시원스레 뚫린 신 36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다
지명의 유래는 우곡리에 있는 다덕 마을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다덕은 다대기로도 불리며 봉화의 3대 약수탕(오전, 두내, 다덕)인 다덕 약수탕이 있는데 봉화의 3대 청정 탄산약수 중에 하나이다.
옛날 스무나무아래 약수가 있어 이를 마시고 많은 사람이 덕을 보았다 하여 다덕(多德)약수라 불리워지는 이곳은, 탄산과 철분 등이 함유되어 있어 톡 쏘는 맛이 그만이다. 예로부터 피부병과 위장병에 많은 사람들이 효험을 보았다 하고, 지금도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
일제시대에는 다덕광산이 있었던 곳이며 금, 은, 동, 철, 아연 등 7가지 광물이 많이 생산되었고 광산이 번성할 시기에는 광산에 종사하는 종업원이 3,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도로을 건널 수가 없으니 우측으로 육교 쪽으로 올라간다
다덕(多德峙)고개는 여러사람이 덕을 보았다고 해서 지여진 이름이다
고개 좌측으로 갈방(葛芳)이란 마을이 있는데 갈뱅이라고도 하며. 산줄기에 칡꽃이 많이 핀다는 갈방산 중턱 해발600m지점에 있는 마을이며. 법전면 풍정리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다. 1940년대에 다덕광산이 번창할 때 외지서 이주해온 주민들이 마을을 형성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고개 우측 아래에는 다덕약수가 있다. 봉화군 봉성면 우곡리에 있는 약수탕으로. 봉화의 3대 청정 탄산약수 중의 하나이다. 옛날 스무나무 아래 약수가 있어 이를 마시고 많은 사람이 덕을 보았다 하여 다덕(多德)약수라 불리워지는 이곳은, 탄산과 철분 등이 함유되어 있어 톡 쏘는 맛이 그만이다. 예로부터 피부병과 위장병에 많은 사람들이 효험을 보았다 하고, 지금도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다덕육교는 구(舊) 36번 국도이고 육교 아래로 통과하는 도로가 새로생긴 신(新)36번 국도이다
다덕육교 위에서 영주/봉화방향
36번 구 도로가 좌측으로 돌아가는 위치에서 우측에 임도로 올라간다
10분이 안되서 임도는 마루금을 넘어가고 지맥길은 능선으로 올라붙는다
임도를 버리고 무명봉 두어개 넘고 올라서니 삼각점이 있는 509.6봉
509.6봉의 삼각점은 분명 글씨가 있는데 알아볼 수 가 없다
다덕현을 지나면서 쉽게 생각했던 곳이 오히러 온갖 잡목에 칡넝쿨이 뒤엉켜서 진행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선답자들은 어디로 어떻게 진행을 했는지 길이 안보여도 이렇게 안보일 수가 없다
가까스로 내려서니 지형도에는 옛고개. 옛고개는 옛골이라 하여 봉화군 봉성면 봉성1리에 있는 고개로 앳골, 애골, 아곡, 역전이라 불리는 마을로 옛날에 이 골에는 집이 없었는데, 행인들이 법전면 갈방으로 넘어 가는데 재가 험하고 도둑이 많아서 애를 먹었다하여 ‘애골(앳골)’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영암선이 개통된 후 봉성역이 이곳에 설치되어 요즘은 역전이라 부르고 있다. 영암선은 영주에서 철암까지 이어진 철도인데 후에 철암선과 통합되어 영동선이 되었다
옛고개에서 우측으로 조금 이동하여 도로을 건너면 임도 비슷한 길이 보인다
몇분 지나지 않아 우거진 잡목에 칡넝쿨이 뒤엉켜 있는 길을 힙겹게 뚫고 가다보니 쓰러진 거목이 길을 막고 좌우 어느쪽으로도 뚫고 나갈 수가 없다
어찌어찌해서 넘어서니
480.8봉이란 산패가 덜렁거리며 매달려 있다.
그냥 갈수가 없어서 보수을 한다
깔끔하게 보수를하고 깨끗하게 닥아내고 인증한다
풀숲을 헤치고 찿아낸 삼각점 글씨가 있기는 하는데 알아볼 수는 없다
계속되는 잡목숲을 헤치고 내려서니 우측으로 석조 여래입상이 있다는 미륵고개
상상을 초월하는 잡목숲을 헤치느라 기운이 다 빠져서 석조여래입상 확인은 포기한다
다덕현에서 여기까지 5km를 진행하는데 4시간이나 거렸다
좌측으로 조금 이동하여 마루금으로 붙어 보는데 도저히 뚫고 나갈 수가 없다
몇번을 시도 하다가 후퇴하여 좌측으로 임도로 진행하다가 밭으로 과수원을 통과해서 918번 지방도로에 닿고 우측으로 5분쯤 이동하니 마루금에 닿고 순직경찰 추모비 주차장에 주차해둔 천왕봉이 차로 도래기재로 이동해서 내차 회수해서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 쪽으로 약 2km쯤 내려가면 대형버스 대 여섯대는 주차할 수 있는 넓은 공터가 있다.
여기에서 오늘밤을 보내고 내일 아침에 인천으로 출발 하기로 한다
압력솥에는 밥을하고
후라이판에는 불고기를 쏘맥 대여섯잔으로 피로을 풀고 깊은 잠자리에 든다
정신없이 자다보니 아침이 되였고 서둘러 자리를 걷는다
이틀후가 천왕봉이 생일이라고 오늘 아들내외가 온다구 했기 때문이다
출발해서 연락을하니 이미 어제 저녁에 왔다고 한다
그런데 어제 그토록 심술을 부리던 날씨가 오늘은 왜 이렇게 좋은겨?
소요경비
이동거리=539km(왕복)
유류비=39.170원(연비15km/디젤1.090원)
톨비=갈때 x2 21.400원/올때 9.200원
등=30.000원
합계=99.770원
'100km이상 기맥.지맥 > 문수지맥(완주)'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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