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km이상 기맥.지맥/문수지맥(완주)

문수지맥 2구간(미륵재(918번 도로=>만리산=>옛고개)

부뜰이(윤종국) 2020. 9. 28. 18:49

문수지맥

부뜰이와 천왕이 걸어온 문수지맥

지맥길 56.8(접속2.9/이탈)km/31시간41분

 

산행일=2020년9월26일

산행지=문수지맥 2구간(봉화군/영주시/안동시)

산행경로=미륵고개=>389.1봉=>410.1봉=>긴재=>응봉산(膺峰山:616.6m)=>만리산(萬里山:791.6m)=>늘못=>월오현=>541봉=>636.4봉=>용두산(龍頭山:664.6m)=>625.6봉=>593.8봉=>용수재=>505.1봉=>굴티재=>502.4봉=>복두산(福頭山:503m)=>403.4봉=>489.6봉=>요성산(堯聖山:492.6m)갈림길=>방아재(935지방 도로)=>523.1봉=>박달산(博達山:579.5m)=>봉수산(烽燧山:570.m)=>예고개(915번 지방도로)

거리 및 소요시간=30.4km/15시간5분

 

가을 산행지로 문수지맥을 선택하면서 주위에 지맥 대여섯개를 진행하기로 하고 진행을 하는데. 오고가는 거리가 왕복 500km가 넘는 거리를 자차로 진행하다보니 항상 수면부족이 문제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토요일에 산행을하고 현지에서 비박을하고 일요일 새벽에 올라오는 것으로 진행을한다.

2주전에 문수지맥 1구간을 진행하고 지난주에는 벌초 다녀오는 길에 천등지맥 한구간을하고 2주만에 문수지맥 2구간을 잇고자 한다. 도래기재에 천왕봉이 차가 있어서 도래기재로 출발을 하는데 오늘따라 왜 그렇게 졸음이 오는지 내려가면서 두번이나 쉬고 도래기재에 도착을하니 벌써 12시가 넘엇다.

나만 그런게 아니고 천왕봉이도 이상하게 졸음이 온다구하여 우선좀 쉬기로 하고 눈을 감는다.

얼마을 잣는지 눈이 떠지고 시간을 확인하니 겨우 1시간을 잣는데 몸이 개운하다.

2구간 날머리인 예고개를 검색을하니 54km이고 1시간 8분이 걸려서 예고개에 도착하니 3시가 넘엇다.

닭발요리 식당앞에 내차를 주차하고 천왕봉이차로 918번 지방도로가 넘어가는 미륵고개에 도착하니 4시이고 된장국에 밥을 말아먹고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 걸어야 할 거리는 지난 1구간 보다 긴 30km가 넘을 것이지만 이번 구간은 잡목도 덜하고 마루금상에 임도가 많아서 지난구간 보다는 오히러 시간이 덜 걸릴 것으로 예상은 하는데. 그거야 어떤 변수가 일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라. 마음속으로 무사완주를 기원하며 산문에 든다.

 

 

 

지용호 호국공원에 주차를하고

 

고 지용호 경찰서장 순직지 유래 안내판과 동상을 살펴본다.

 

기념비에 새겨진 내용을 보면 전 봉화경찰서장 지용호(池龍浩) 총경(1913 ~ 1949) 입상과 건국초기의 사회혼란을 틈타 전국각지에서 무장공비들이 관공서를 습격하고 살인과 약탈, 파괴와 방화 등 만행을 자행하여 국민의 생존을 위협하자 이 지역에서도 경찰은 물론 주민과 애국청년들이 불타는 호국정신으로 치안유지에 앞장서고 있었다.
1949년 6월 17일 고 지용호 봉화경찰서장은 재산면사무소와 경찰지서가 무장공비들에게 점거되었다는 급보를 받고 경찰관 20명과 군청직원, 대한청년단원 30명의 토벌대를 인솔 현지로 출동하던 중 이곳 미륵재에서 공비 200여명으로부터 기습적인 포위 공격을 받아 7명이 전사를 하는 등 전멸당할 위기에 처하였다.
이때 지용호서장은 “내가 봉화경찰서장이다”라고 당당히 외치면서 모든 책임과 희생을 자청하고, 부하들은 돌려보낼 것을 주장하며 완강히 저항하여 동지들의 생명을 구하고 공비들의 흉탄에 희생되어 36세의 젊음을 조국에 바쳤다.
지휘관의 투철한 사명감으로 부하들을 사지에서 구출한 살신성인의 기개와 조국에 대한 충용정신을 일깨워 주신 님을 추모하고 그 뜻을 기리는 우리 군민의 정성을 여기에 새긴다. 라고 쓰여 있다.

 

고 지영호 동상과 기념비에서 인증을 남기고

 

 

주차장에서 좌측으로 조금 이동하여 고갯마루에서 우측 숲으로 올라간다

 

요리돌고 죠리돌아 무명봉 두어개 넘으면 시멘트 임도가 나온다

봉화군 봉성면 봉양리 가골에서 명호면 양곡리로 넘어가는 도로이다.

 

임도를 가로 질러 숲으로 들어가면 묵은 임도가 나오고 임도를 따른다

 

요소요소에 세르파님의 안내를 받는다

 

재의 흔적이 보이는데

사람의 발길이 끈긴지가 수십년은 된듯 잡목이 무성하게 자라있다

 

무슨 공사를 할려는지 장비가 올라와 있고

 

어수선한 잡풀을 헤치고 내려서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온다

 

포장임도를 5분여 내려가면

 

지도상 대백재에 내려선다

대백재는 좌측으로 봉화군 명호면 고감리(高甘里)에 있는 고개로 우측으로는 봉화군 상운면 봉양리로 이여지며 대백이란 지명은 우측 아래에 있는 대백마을에서 따온 이름이고 장고개라고도 부른다.

 

대백재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잡으면

 

바로 좌측으로 임도가 있고 임도로 올라간다

 

임도 안내도가 있고

 

포장임도로 쭈욱 올라간다

 

대백재에서 20분정도 진행하니 갈림길이 나오고 지맥길은 좌측으로 올라간다

여기 위치가 지형도에는 긴재로 표기되여 있다.

긴재는 봉화군 명호면 고감리와 상운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우측으로는 문촌리(文村里)로 내려가는 임도가 있다.

문촌리는 학문을 숭상하여 많은 선비가 배출되었으며 글 읽는 소리가 끊어지지 않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버섯철을 만나 입산을 금지한다는 경고판이 수백개는 설치가되여 있다.

 

임도를 1시간 20분이나 걸엇는데 임도는 계속된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임도가 마루금상에 있었고 여기 긴재에서 부터는 마루금은 좌측에 두고 임도길을 따른다.

 

계속 임도로 진행해도 되지만 좌측으로 400여 미터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는 응봉산을 다녀오기 위해서 좌측 숲으로 올라선다

 

7분여 올라서니 무명봉 정상에 올라서고 지맥은 우측으로 이여지지만 길도 없거니와 응봉산을 가고자 올라왔으니 좌측으로 내려선다.

 

다시 7분여 내려서니 우측으로 크게 돌아온 임도를 다시 만나고 좌측으로 50미터정도에서 우측으로 올라서면 응봉산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른시간에 저 차는 뭐하러 올라왔을까?

 

입산금지 현수막 뒤로 올라서서 배냥 내려두고 다녀온다

 

응봉산의 산패는 잘 있네요

 

응봉산에서는 조망은 없고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계속 직진으로 가면 풍락산으로 이여진다

 

응봉산에서 되돌아 내려서서 마루금으로 되돌아가는 중에 잠시 알바를하며 바위에 올라서니 조망이 터지고 저기는 어딘가 지도에서 확인하니 풍락산으로 확인이된다.

풍락산(豊樂山:762.1m)은 봉화군 명호면 고감리에 있는 산으로 엣날부터 선얏(仙藥)이 난다고 전해온다.

조선 제 16대 임금인 인조 때 명호면 관창리 비진동(飛津洞)에 임석돌(林石乭)이라는 이상한 장수가 살았다고 한다.

그는 소년시절 신라 때 쌓았다는 풍락산 속 산성(山城)에서 전쟁놀이를 즐겼는데. 어느 날 용마(龍馬) 한마리가 마을에 나타났는데. 마을 사람들 누구의 말에도 움직일 줄 모르고 서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임석도 장군이 급히 용마(龍馬)에게 달려가서 달래자 훈련된 말처럼 임 장군을 따랐다. 임 장군은 그후 매일 말을 말을 탄채 가래로 비진동에서 풍락산성까지 길을 닦앗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그 뒷쪽으로는 각화지맥 끝 합수점이 머리속에 그려진다

 

그리고 조금 전에 올랏던 응봉산

 

다시 마루금상 임도에 내려서고 우측 산으로 올라붙는다.

좌측 임도로 계속가면 응봉산으로 올라가는데 엄청나게 돌아서 가기 때문에 임도로 응봉산을 다녀 올 생각은 하질 말아야 한다

 

참나무에 붙어있는 이 버섯은 무슨 버섯일까?

모르는 것은 손을대면 안된다

 

몇년전에 앞서가신 홀대모 운영자이신 최상배님 흔적을 오늘 처음으로 만난다

 

지형도에 없는 재의 흔적을 만나고

 

우측모습

 

좌측모습 흔적을보면 옛날에는 사람들이 많이 다녔을거 같다

 

 

오래지 않아 또다른 고개의 흔적을 본다

우측으로 득점골 방향

 

좌측으로 가시골 방향

 

임도에 내려서는데 여기가 신라재인가?

신라재는 봉화군 명호면 관창리 독점골에서 상운면 신라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인데.

산꾼들은 이곳을 신라재라 부른다. 실재의 신라재는 이곳에서 한참을 내려가서 신라리에서 상운면으로 넘어가는 곳에 실제의 신라재가 있다.

임도 아래쪽에 있는 신라리 마을은 신라시대 어느 왕인지는 알 수 없으나 태자와 함께 피난을 와서 임시 서울로 정하여 살고 있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안동시 도산면과 봉화군 명호면과 인접해 있으며 거느미. 웃거느미. 아랫거느미. 모찌골. 산재. 새터의 마을로 형성되여 있다.1983년 2월 15일 행정구역 개편 때 명호면에서 상운면으로 편입 되였다고 한다.

 

임도를 가로질러 산으로 올라간다

 

무슨 일이기에 등로가 정비가 되여 있을까?

 

잘 정비된길을 10여분 올라서니 하늘을 찌를듯한 용도를 알 수 없는 안테나가 서있다.

이것을 세우느라 길을 정비한거 같다

 

안테나를 지나면서 지맥길이 으래 그렇듯이 어수선한 길을 내려서니 움푹파인 안부에 내려서서 확인을 해보니 성황당고개로 확인이 된다.

성황당 고개는 봉화군 상운면 신라리 웃거느미 마을에서 명호면 갈골로 넘어가는 고개이고 안내판인 듯한 철판이 세워져 있는데 녹이 잔뜩 슬어서 글씨라곤 알아 볼 수 가 없다.

 

성황당고개에서 우측으로 신라리 웃거느미 마을방향

 

성황당 고개에서 좌측으로 명호면 갈골 방향이고 돌탑이 무너진듯한 흔적이 있다

 

성화당 고개를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만리산 오름이 시작되는데.

오늘 구간의 최고봉이고 가장 힘들게 올랏던 산이다.

 

길도 제데로 없거니와 가파르기가 코가 땅에 닿는듯한 오름길이 끝없이 이여진다

 

성황당 고개에서 거의 한시간만에 만리산에 올라선다.

산패가 죽은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데 흔들어보니 곧 부러지게 생겼다.

조금 윗쪽으로 재설치한다.

 

만리산(萬里山: 791.6m)봉화군 명호면 관창리에 자리잡고 있는 산으로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청량산(淸凉山: 870m)과 문명산(文明山: 894m)을 마주하고 있다. 만리산은 화전민 이주 지역으로 개간했으나 지금은 고랭지 채소단지로 더 유명하다. 만리산 중턱에는 이무기가 살았다고 전하는 자연 연못인 늘못이 있고 만리산 아래에는 관창폭포와 갈골계곡의 맑고 깨끗한 물과 청석바위와 자연석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정상 가까이에 향적사가 있는데, 요란하지 않게 부처님을 전하는 사찰이라는 뜻으로 법당을 창건하기 위해 기둥을 세우고 상량을 하려는데 부처님이 나타나 ‘천년을 보아야하는데 그 기둥으로 지탱하겠느냐’는 말씀으로 공사를 중단했던 사찰로 유명하다. 현재는 대웅전 건립이 완공되었으며, 청량산을 마주하고 있는 향적사는 보는 이마다 주변의 수려한 경관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고 한다.

 

 

만리산(萬里山: 791.6m)에는 요즘엔 보기드문 둥근 동판으로 된 국립건설연구소 대삼각점이 있다.

 

 

만리산에서 내려서면 좌측에서 임도가 올라온다

우측으로 조금 올라가면 늘못이 위치한다

 

좌측 향적사 방향에서 올라오는 임도

 

만리산 늘못의 대한 안내문

 

늘못 주변에는 작은 주차장이 있고 사각정자 두체가 있다

 

늘못 안내판의 내용을 옴겨보면. 말리산 아래 늘못(常池)은 경북 봉화군 명호면 관창리 산 60-3번지 일대 주변에 신생대 화산체가 폭발한 후 화산의 중심부가 함몰 2차적으로 큰 와지가 된 뒤 물이 고인 분화구일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곳이다. 이 못은 고라니, 토끼, 산새 등 수 많은 산짐승과 수생식물의 생명수였고 큰 암벽과 흰 구름이 맞 닿을 듯한 절경, 낙동강변 수달래의 요염한 자태와 기암괴석과 절벽 등 산세가 수려하고 풍광이 아름다운 곳으로 인근 청량산의 무수한 문화유적과 자연자원, 문화적 생태적 가치가 상당히 높은 곳이라 할 수 있다. 라고 쓰여 있다.

 

 

늘못을 지나고 잠시 임도로 올라가면

 

임도는 좌측으로 내려가고 지맥길은 직진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사유지라고 철문으로 막아 놓았다.

앞에 우측에 보이는 전주대 뒤로 올라간다.

 

무시무시한 덪이 놓여 있고

 

그물망을 따라서 사면으로 진행하는데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15분동안 지독한 잡목과 가파른 사면길을 통과한다

 

좌측으로 벌목지가 나오며 조망이 열린다.

맞은편 산을보니 산 꼭대기까지 마을이 보인다.

 

잘 가꾸어진 어느집 묘지를 지나고

 

묘지로 올라오는 길이라 널찍하니 좋다

 

 

오늘 새벽에 아침밥을 숨겨둔 월오현에 내려선다.

월오현(月午峴: 463m)은 경상북도 안동시의 도산면 태자리에 있는 고개이다. 고개 북쪽은 봉화군 상운면 신라리로, 예전에 예안에서 봉화로 갈 때 이용하였던 고개이다. 『해동지도』(봉화)를 비롯한 옛 지도들에서 '월현(月峴)'으로 표기되어 있다. 또 월현 바로 위에 신라현(지금의 봉화군 상운면 신라리 신라재)도 함께 표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월오현은 『조선지지자료』에서 나온다. 즉 봉화군 하남면(下南面) 태자산리 월오현(月午峴)과 그 한글 명칭 '달애재'로 기록되어 있다. 원래 높은 재란 뜻으로 우리말 달애재 혹은 다랫재라고 부르다가,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월현(月峴), 월오현(月午峴)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현지인들은 월오현 대신에 다랫재라는 명칭이 사용되고 있다.

 

이정표 뒷쪽 풀숲에 숨겨둔 물품을 회수한다

우측으로 봉화군 상운면 신라리 방향

산행을 시작한 미륵재에서 14km지점이고 아직도 갈길은 16km이상 남았다

 

좌측으로 안동시 도산면 태자리 방향

 

월오현에서 한 봉우리 올라서서 아침을 먹고 진행하는데

어수선 하기가 전형적인 지맥길이다

 

예전에 임도같은 길을 잠시 걸으니

 

우측에서 시멘트 임도가 올라온다

마루금을 우측에 두고 임도로 진행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루금이 좌측으로 넘어가고 계속 임도로 진행한다

 

좌측으로 묵 밭이 나오면서 조망이 열리고

아래로 안동시 도산면 태자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월오현으로 올라오는 도로가 내려다 보인다

 

임도 사거리에 내려서니 임당고개

임당고개(林塘峴)는 봉화군 상운면 매정리 임당마을에서 안동시 도산면 태자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봉화쪽은 사과 과수원이 있고 임당이라 불리게된 유래는 매정리 임당마을에서 따온 이름이다

 

우측 매정리 방향으로 사과 과수원이 보인다

 

좌측 안동시 도산면 태자리 방향

 

임당 고개에서 직진으로 1분 진행하여 좌측 임도로 올라서면

 

더 이상 길은 없고 가시 철조망으로 묘지를 둘러 놓았다

우측 철조망 밖으로 올라간다

 

묘지에서 50여분 빢쎄게 치고 올라서니 636.4봉

 

 

636.4봉에서 완만하게 내려서니 뚜렸한 재의 흔적이 보이는데

 

우측은 그물망으로 막아 놓았고

 

좌측으로도 길이 좋다

 

오늘 구간에 이름을 가진산이 여섯개나 되지만 자연석으로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 산은 용두산이 유일하다.

용두산(龍頭山: 664.6m)은 경상북도 안동시(安東市) 도산면(陶山面)과 녹전면(祿轉面)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의 모양이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용두산(龍頭山) 혹은 용수산(龍首山)이라고 한다. 정상에 기우제를 지내던 기우단이 있으며, 운곡리 쪽 기슭에는 유학의 대가인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와 퇴계(退溪) 이황(李滉) 가문의 학문 탐구의 장이었던 고려시대에 창건된 용수사가 자리 잡고 있다. 용두산 남쪽 봉우리인 국망봉 정상에는 ‘국망봉’이라고 새겨진 자연석 바위가 세워져 있는데, 이곳은 이황의 조부인 이계양(李繼陽)이 단종을 애도하던 곳이라 한다

 

정상석 뒷면에는 안동의 정기 용두산에서 발원하다. 라고 쓰여 있다.

 

 

용두산에서 청량산을 조망한다

 

누가 자동차키를 흘리고 갔을까

오물이 안 묻은 것을 보니 하루 이틀전에 흘린거 같은데

산꾼은 아닌거 같다. 산꾼은 거의 주말에 산행을 하기 때문이다.

 

용두산에서 내림길은 칡넝쿨 지대

 

용두산을 지나면서 선비 순례길이란 리본이 자주 보인다.

선비 순례길은 2017년 10월 말에 개통된 것으로 알고 있다.

안동 선비순례길은, 9개 코스 총 91.3km로, ‘가장 한국적인 길’을 모토로 안동의 전통과 문화, 정취를 잘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오천군자마을을 시작으로 도산서원· 퇴계종택· 수졸당· 이육사문학관· 청량산· 건지산· 농암종택· 칼선대· 수운정· 가송참살이마을 등 안동의 속살을 만날 수 있다.
기존 퇴계예던길, 마의태자길과 함께 고고한 선비정신을 지키며 살았던 군자의 흔적이 남아있는 선성현길, 공민왕의 어머니가 피난했던 왕모산성길 등을 새로 추가해 각각의 테마가 있는 9개 코스로 조성했다.
그 중 1코스 선성현길에 있는 선성수상길은 안동호 수면 위에 길이 1㎞, 폭 2.75m 규모로 수상 데크를 설치하였는데, 수위 변화에도 물에 잠기지 않도록 부교 형식으로 만들어졌고, 데크 중간에는 포토존과 쉼터가 함께 조성돼 안동호 절경과 함께 추억을 남기기에 좋은 장소이다.
이 곳을 지나는 코스는 8코스 10.6km 코스로, 도산온천을 출발하여 용수사입구 → 용두산정상 → 수운정으로 이어지는 코스다

 

 

 

가을로 접어들면서 버섯철이 되였는지 오늘 이런 경고문을 백개는 보았지 싶다

 

 

오늘 처음으로 만나는 이정표지만 지맥꾼들에겐 도움이 될만한 것이 없다

 

593.9봉에 올라서니 나무가 굵어지면서 산패가 곧 부러지게 생겼다

 

십 수년은 끄떡 없게끔 재설치 한다

 

593.9봉의 삼각점은 춘양 459

 

593.9봉에서 10여분 내려가니 용수재

용수재(龍首峴)는 안동시 도산면 매정리와 운곡리 갈현리로 이여지는 고개이며 예전에 용두산을 용수산이라 부르기도 했고 용수사란 사찰이 있어서 용수재란 지명을 붙인거 같다

 

용수재는 사람의 발길이 끊긴지가 수십년이 흐르다 보니 지금은 겨우 흔적만 남아있다

 

 

좌측으로 임도가 보여서 내려선다

 

임도에 내려서니

 

선비순례길 탐방시 유의사항이란 안내판이 있다

 

지맥길은 우측으로 진행한다

 

좌측으로 도산면 운곡리 방향

 

지맥 마루금은 이정표 뒷쪽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지형도을 자세히 살펴보니 별다른 봉우리도 없고 길만 험악하고 임도와 그리 멀리 떨어지지도 않았다.

 

그냥 임도로 진행한다

 

15분정도 가다보니 쉬여 가라고 의자가 두개씩이나 놓여있다

막걸리 한잔씩 마시며 쉬는 시간을 갖는다

 

다시 20분정도 걷다보니 임도는 좌측으로 돌아가고 지맥길은 우측 숲으로 들어간다

 

숲에 들어서 돌아본 모습 좌측에 임도가 우리가 걸어온 길이다

 

숲에 들어서보니 의외로 잡목이 심하지 않다

 

묘지가 나오면서 가슴속이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다

지맥 마루금에서 좌측으로 벗어나 있는 요성산이 보인다

 

또 다른 묘지가 나오고 굴티재로 올라오는 도로가 내려다 보인다

 

2차선 도로가 지나는 굴티재에 내려선다

굴티재(屈峙)는 안동시 녹전면 갈현리와 신평리에 있는 고개로. 북쪽 갈현리 굴티마을에서 남쪽 신평리를 잇는 도로가 지나며, 이 도로는 행정도로명 ‘신매로’이다.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데, 고갯마루에 외딴 집 한채가 자리하고 있다. 갈현리(葛峴里)는 점마, 상등골, 굴현, 갈골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1914년 갈골.굴현(屈峴, 일명 굴티). 상등골을 병합하면서 갈골의 ‘葛(갈)’자와 굴현의 ‘峴(현)’자를 따서 ‘갈현’이라 하였다.
자연마을인 굴현은 마을 남쪽에 구부러진 고개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갈골은 굴현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면 소재지에서 북동쪽으로 약 8㎞ 지점에 있다. 옛날부터 골이 길고 칡이 많아서 갈골.갈동이라 불러 왔으며, 갈화낙지(葛花落地) 형국의 명당이 있다고 전한다.

 

도로를 횡단해서 맞은편 산으로 올라간다

 

녹전면 갈현리 방향

 

녹전면 신평리 방향

 

굴티재에서 20여분 가파르게 치고 오르면 502.4봉인 헬기장에 올라서는데 잡목이 빼곡하게 자라있다

 

복두산 직전 잡목이 무성한 502.4봉의 헬기장에서 찿아낸 삼각점은 춘양 301

 

페 헬기장인 502.4봉에서 2분 올라서니 지형도에는 분명 복두산으로 표기되여 있는데 아무런 표시가 없고 묘지가 한기 자리하고 있다.

복두산(福頭山: 509.1m)은 경북 안동시 녹전면 갈현리에 있는 산이다. 『해동지도』(예안)에는 복두산(幞頭山), 『안동도회좌통지도』(예안)에는 폭두산(幅頭山), 그리고 『대동여지도』에는 '복두산(福頭山)'으로 각각 표기되어 있다. 『해동지도』를 보면, 남쪽에 요성산(邀聖山), 동쪽에 굴현(屈峴, 지금의 갈현리 굴티), 그리고 서쪽에 방하현(方下峴, 지금의 신평리 방아재)이 각각 표시되어 있다

 

복두산에서 내림길은 어디가 길인지 분간을할 수 없는 고약한 길이 이여진다

 

어수선한 길을 이리저리 내려서니 도로가 나오는데

녹전면 갈현리로 들어가는 길이다.

 

우측이 마루금이지만 올라갈 필요가 없다

올라 가더라도 금새 다시 내려오게 되고 길도 없기 때문에 도로길을 따른다

 

도로길을 7분여 걸으면 돌로쌓은 옹벽이 보이면 마루금이라 올라가야 한다

좌측에 갈골이란 표지석이 있다

 

갈현리(葛峴里)는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에 있는 법정리로. 점마. 상등골. 굴현. 갈골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조선 말기 예안군 북면에 속했다가 1914년 갈골. 굴현(屈峴, 일명 굴티). 상등골을 병합하면서 갈골의 ‘갈(葛)’자와 굴현의 ‘현(峴)’자를 따서 ‘갈현’이라 하였다. 복두산 자락에 있어 고도가 높고 골짜기가 많은 산촌 마을로 마을 아래로 용강천이 흐르고. 옛날에는 봉화현으로 가는 길목이었다.
자연마을인 굴현(굴티)은 마을 남쪽에 구부러진 고개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점마는 굴현 아래에 있어 하굴(下屈). 하굴현. 아랫굴티라고 불렀고, 일제강점기 말엽에는 옹기점이 많이 있어서 점마 또는 굴점이라고도 하였다. 갈골은 굴현 서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옛날부터 골이 길고 칡이 많아서 갈골. 갈동이라 불러 왔으며. 갈화낙지(葛花落地) 형국의 명당이라고 전한다. 6•25전쟁 때 임씨(林氏)들이 피난하여 정착한 이래 지금까지 살고 있다. 상등골은 굴현 동쪽 높은 지대에 형성된 마을로. 등화낙지(燈火落地) 형국의 명당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이외 굴현에서 오르막길로 올라와서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이곳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송이 지역이라고 막아놔서 올라가기가 고약하다

 

잡목의 저항을 받으며 35분여 힘겹게 올라서니 490.1봉에 올라서는데

이게 왠일. 십수년동안 잘있던 것을 이렇게 난도질을 해놓았다

재 설치한들 무사하지 못할 것이 뻔해서 그냥 회수하고 만다

 

나무을 베여서 덥어 놓은것이 수상해서 들춰 본다

 

예상 했던데로 삼각점이 있다

 

490.1봉에서 팽개처진 산패를 회수하고 7분 진행하니 천막을 쳐놓고 배냥이 매달려 있는데

사람은 보이질 않는다.

여기위치가 좌측으로 요성산(堯聖山:492.6m) 갈림길 이다

 

요성산 갈림길에서 11분 내려서면 935번 지방도로가 넘는 방아재.

방아재(364m)는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사천리에 있는 고개이다. 『해동지도』(예안)에 '방하현(方下峴)'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 지도를 보면 예안에서 영주로 가는 길은 방하현을 넘어 영주시 평은면으로 가는 길과, 녹전면 신평리 굴티와 매정리 도마치재를 거쳐 가는 길 등 2개의 길이 있었던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옛 예안현 지도들 대부분이 '방하현'을 표시하고 있다. 그만큼 중요한 고개였다. 『조선지지자료』에도 한자로 '방하현(方下峴)'과 우리말로 '방하재'로 기록되어 있다. 지금의 이름은 '방하재'에서 변음된 것이다. 방아재에서 우측으로 사천리 방향

 

방아재에서 좌측으로 신평리 방향

 

도로을 횡단해서 산으로 올라간다

 

방아재에서 16분 올라가니 산불감시 초소가 있는 480봉에 올라선다

산불감시 초소에 문은 잠겨 있지만 그래도 계단으로 올라가 본다

 

햐! 조망이 기가 막히네

 

쭈~욱 당겨보자

선명하게 보이는 청량산

 

청량산 우측으로 보이는 저쪽은 위치로 보면 덕산지맥 줄기 같은데.

 

지나온 쪽도 한번 바라보고

 

까마득한 저쪽은 방향으로 보면 문수산일거 같고

 

당겨 보아도 문수산인지 확신이 서질 않으니 아직 내공이 많이 부족한거 같다.

 

산불감시봉에서 내렸다가 올라서면 523.1봉

 

 

523.1봉에서 내려서면 커다란 나무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녹전고개

녹전고개는 안동시 녹전면 사천리에서 녹전 면소재지가 있는 녹재리로 내려가는 비포장 임도이다

녹전면소재지 윗쪽에 있는 고개라 녹전고개라 부른다.

 

녹전고개에서 우측으로 사천리 방향

 

녹전고개에서 좌측으로 녹내리 방향

 

녹전고개을 돌아보고

 

녹전고개에서 20여분 죽어라 올라서니 박달산이고

오래 되여서 보수를 해야 되겠다

 

조금 윗쪽으로 올려서 설치한다

박달산(博達山: 579.5m)은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녹래리에 있는 산이다. 봉수산의 북쪽에 위치한다. 현대 지형도에서는 사천리에 있는 산을 박달산으로 표시하고 있는데, 이는 또 다른 박달산이다. 『해동지도』(예안)와 『조선지도』 등에 박달산이 표시되어 있다. 이 지도들은 박달산과 함께 녹전산 및 봉수산도 나란히 표시하고 있다. 이 세 개의 산에 대한 정확한 위치 비정에 대해서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하다. 박달산이란 명칭은 산에 박달나무가 많았던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박달산에서 내려가는 길은 그야말로 개판

 

 

오늘도 하루해가 저물고

어두워 지기전에 예고개에 못 내려서겠다

 

 

튼튼한 철망이 나타나고 땅은 풀한포기가 안보인다

야생 멧돼지 사육장이라 하는데 멧돼지는 한마리도 안보이고 저 아래쪽에서 꽤액꽤액 소리는 들린다

 

철망 안으로 랜즈을 들이밀고 찍어본다

 

 

 

여기도 멍청이 이정목이 서있다

거리 표시가 없는 이정표는 산 봉우리에 높이 표시가 안돼 있는거나 같다

 

일반 등산로가 나오고 양탄자까지 깔려있다

 

 

용암지맥 분기점에 닿고 그런데 철사가?

한달쯤 후에 다시 올것이니 그때 보수을 하기로 한다.

 

거리표시 없이 방향만 가리킨다

 

오늘 구간에 마지막산인 봉수산에 닿는다.

봉수산(烽燧山: 570.0m)은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녹래리와 영주시 평은면 경계에 걸쳐 있는 산으로, 박달산· 일출봉으로 더 널리 불리고 있다. 봉수산은 조선시대 서후면 개목산에서 봉화를 받아서 봉화군 용점산으로 전해주던 봉수대가 산정에 있었던 것에서 유래된 명칭으로, 지금은 봉수대의 흔적만 있을 뿐이다. 또 다른 이름으로 녹전산이라고 불리는데, 녹전산은 복[祿]이 굴러 들어오고 토질이 비옥하다 하여 녹전이라 부르게 된데서 유래한다.
구룡골 서편 의상조사가 창건한 암자인 일출암(日出庵)이 자리 잡은 일출봉에서는 강원도 정동진보다 더 빨리 일출을 볼 수 있다고 해서 해마다 1월 1일에는 점등식을 비롯하여 33번의 새해맞이 타종, 불꽃놀이, 폭죽, 풍물놀이 등의 다채로운 해맞이 행사가 열린다

 

봉수산의 삼각점은 글씨는 히미하게 보이는데

ㅇ확히 읽을 수 는 없었다

 

오늘구간에 마지막 이정목을 만난다

 

예고개에 내려서며 문수지맥 2구간을 마무리한다

예고개는 도로에 내려서서 보면 맞은편에 예고개 표지석과 버스정류장이 있고, 그 우측편에 일신쉼터 식당과 매점 건물이 있는데. 예고개 아래로 터널이 뚫린 후로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하었다.

 

 

 

마지막으로 예고개 삼거리 풍경을 담아본다

 

아침에 산행을 시작한 미륵재로 돌아와서 준비해간 삼겹살과 쏘맥으로 하루종일 굼다시피한 배를 터져라 체우고 이자리에서 비박을 한다.

얼마나 잣는지 잠이 깨고 시간을보니 새벽 3시20분이다.

그만 자리를털고 집에 도착하니 아침 7시이다.

 

 

 

 

 

출발전에 하늘을보니 엄청나게 많은 별들이 마구마구 쏱아진다.

 

소요경비

이동거리=557km(왕복)

유류비=39.730원(연비15km/디젤1.070원)

톨비=갈때  8.750원/올때 10.500원

등=30.000원

합계=88.98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