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km이상 기맥.지맥/금강기맥(완주)

금강기맥 2구간(말골재=>천호산=>문드러미재)

부뜰이(윤종국) 2019. 10. 10. 22:21



금강기맥

부뜰이와 천왕봉이 걸어온 금강기맥

기맥길45.5(접속0.6/이탈)km/25시간7분


산행일=2019년10월5일

산행지=금강기맥 2구간(완주/천안)

산행경로=말골재=>장재봉 갈림길=>수재=>370봉=>남당산=>445.5봉=>밤아니재=>380봉=>360봉=>360봉=>작봉산(419.6m)=>260봉=>380봉=>까치울재=>420봉=>까치봉(456m)=>400봉=>380봉=>280봉=>말목재=>석천교회=>450봉=>옥녀봉(411.7m)=>범허리재(63번송전탑)=>함박봉(403m)=>함박재=>소룡고개=>371.3봉=>고내곡재=>350봉=>350봉=>누항재=>공원묘지=>천호산(501m)=>갈매봉=>문드러미재

거리 및 소요시간=27.2km/14시간19분


올 가을에는 유난히도 태풍이 한반도에 자주온다.

이번 주말에도 예정된 산행지인 강원도 양구지방에 태풍 미탁이란 넘이 온다구하여 일기예보를 주시 하는데 다행이 하루전날 양구는 피해 가겠지만 비가 내릴거라 하니 양구에 성골지맥이나 도솔지맥은 포기하고 첯 한구간만 진행하고 중단한 금강기맥을 이여 볼 생각으로 전북 완주지방에 일기예보을 살펴보니 구름은 많겠지만 비는 안올거란 예보이다.

이렇게해서 거의 5개월동안 중단된 금강기맥을 이여보고자 금욜 저녁 7시반이 조금넘은 시간에 인천을 출발하여 산행중 중간지점인 말목재를 경유하여 풀숲에다 물 1.5리터와 0.5리터짜리 캔맥주 하나를 숨겨두고 들머리인 말골재에 도착하니 11시가 막 넘어가는 시간이다.

새벽 4시 전후로 산행을 시작할 생각으로 3시에 알람을 마추고 천왕봉이는 뒷좌석에서 나는 조수석에서 쉬는 시간을 갖는다.

요란한 알람소리에 잠이깨고 집에서 준비해간 된장국을 데워서 밥을 한술씩 말아먹고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 들머리인 말골재에는 그 흔한 도로표지판도 하나없다.

유일하게 인증할 만한 것이라곤 이것이 유일한 증표이다.

말골재(馬骨峙)는 전북 완주군 운주면과 경천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고개로 17번 국도가 넘어가는 고개이다.

 

천왕봉이를 모델로 인증을 하고


완주경찰서 입간판 앞쪽에 있는 임도길로 20여미터 들어가 바로 우측으로 치고 올라간다.


서서히 가팔라지던 히미한길은 20여분 올려치니 길은 보이지도 않고 커다란 바위가 앞을 막아선다.

아차하는 순간이면 큰 사고로 이여질 수 있는 곳이라 조심조심 올라서니 지맥길은 좌측으로 90도 이상으로 꺽어지고 직진으로는 맥길에서 600여미터 벗어나 있는 장재봉으로 가는 길이다.

여기까지 0.86km인데 50분이나 소요 되였다.

갈길도 멀고 깜깜한 밤에 뭐가 보이겠냐 싶어서 장재봉은 페스한다.


장재봉 갈림길에서 40여분동안 가파르게 한껏 고도를 낮추면 근사한 이정표가 서있는 수재에 내려선다.


번듯한 이정표까지 설치해 두었지만 좌우을 살펴보니 사람이 다닌 흔적은 보이지도 않는다.


수재(秀峙)는 전북 완주군 운주면과 충남 논산시 양촌리 임화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빼재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이곳에 소나무가  빽빽하게 많았고 골짜기의 깊이가 8km나 되여 재를 빠져나가는데 너무 힘이들어 빼재라고 불럿다고 한다.

이곳 부터는 지난구간 싸리재에서 같이해온 완주군 운주면은 끝나고 좌측으로는 완주군 화산면이고 우측은 충남 논산시 양촌면으로 충남과 전북의 도계의 경계능선이 이여진다.


오늘은 낮이고 밤이고 하루종일 거미줄과의 싸움이 끈이질 않는다.


수재에서 몇개의 무명봉을 넘고 올라서니 376m인 남당산인데

여기가 남당산 이라는 표시는 없고 선답자들의 리본 몇개가 여기가 남당산임을 알린다.

남당산(376m)은 완주군 화산면과 논산시 양촌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양촌면 고산리 상고마을의 남쪽에 있는 산이라하여 남당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논산시 양촌면 쪽으로는 울창한 숲이고 좌측인 완주군 화산면 쪽은 벌목을하고 어린 편백나무가 심어져 있다.


지난주에 미탁이 휩쓸고 간 흔적으로 아름들이 소나무가 꺽어져 있고 대강대강 톱질을 해놓아서 지나기가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산행을 시작한지도 3시간이 지났고 배도 출출하여 빵 한개씩으로 간식을 먹는다.


남당산에서 내려서니 재의 흔적이 보이고 지도에서 확인을하니 여기 위치가 밤아니재 이다.

밤아니재는 전북 완주군 화산면과 논산시 양촌면을 잇는 고개로 고개가 하도 험하여 낮이나 밤이나 통행이 힘들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밤아니재에서 인증


밤아니재에 있는 이정표

우리는 장재봉.남당산 쪽에서 왔고 지맥길은 쌍계사 방향으로 진행된다.


쌍계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만나고 여기 위치에서는 가야곡.삼전리.작봉산 방향으로 내려선다.


등로는 잘 정비되여 있는데

이런곳에 등산객이 올리도 만무하고

실제로 사람이 다닌 흔적은 보이지 안는다.


남당산에서 잘 정비된 등로을 내려서면 묘지를 하나 만나고 묘지로 올라오는 임도로 잠시 내려가면 임도는 좌측으로 돌아가고 지맥길은 우측 산길로 들어선다.



작봉산 오름 중에 쌍계사 갈림길을 두어번 지나고


봉우리에 올라서니 또다시 쌍계사 갈림길이고 작봉산이 05km라고 안내한다.


 작봉산(峰山)은 완주군 화산면과 논산시 경촌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예전에 이 봉우리에 까치가 많이 살아서 까치 작()자에 봉우리 봉()을 써서 작봉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런데 잠시후에 까치봉이 또 나온다.

산 정상에는 중산리 숲길 안내도가 있고 3등 삼각점이 있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불명산이라 불럿다고 한다.


작봉산의 3등 삼각점


그리고 작봉산 등산 안내도와 쌍계사의 유래가적인 안내판이 있다.

사진을 클릭해서 원본으로 보면 쉽게 볼수 있다.


작봉산에서 천왕봉이을 모델로 인증을 하고


작봉산을 지나면서 등로는 좋아진다


작봉산에서 40여분 후 어느 무명봉을 사면으로 돌아가는데.

사진이나 그림으로만 보던 버섯을 만나는데 순간적으로 능이버섯 이란걸 알았다.


능이 버섯은 1능이. 2송이라 하여 식용버섯 중에서는 송이버섯 보다도 으뜸으로 쳐주는 아주 귀하고 특급 버섯이라고 한다.

현 시세로 1kg당 16만원에 거래된다구 한다.

내가 쓰는 카메라 무게가 700g인데.

카메라보다 약간 가벼운듯 했으니 500g 이상은 되는거 같았다.

보물을 획득 했으니 한참동안 발걸음이 가벼워 진다.


갑자기 허기가 진다구 하여 과일 한쪽씩 먹으며 쉬여간다.


움푹 들어간 내림길 삼거리가 나오면 지도상에 까치울재

까치울재는 완주군 화산면 작동마을에서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 우왕마을을 넘나들던 고개이며 옛날에 도적들이 진을치고 있었다고 한다.

6.25때는 공비들의 은신처이기도 하였다고 하며 지금은 오랜 세월동안 사람의 발길이 없다보니 자세히 보지 않으면 고개의 흔적은 알수 없을 정도이다.


까치울재에 있는 이정표


까치울재에서 한봉우리 올라서면 여기가 까치봉.

까치봉(546m)은 완주군 화산면과 논산시 가야곡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멀리서 보면 산봉우리가 까치집 처럼 보인다고 해서 부른 이름이라고 한다.


까치봉을 지나고

원래는 말목재에서 어잿밤에 숨겨둔 물을 회수해서 석천교회에서 아침을 먹을 계획 이였는데 천왕봉이가 허기가 져서 갈 수가 없다고 하여 여기서 아침을 먹는다.

한시간이면 충분히 말목재까지 갈수 있을거 같은데....


까치봉에서 아침을 먹고 좌측으로 희미한 길을 따라 내려가는데 군이님 리본이 땅바닥에 딩굴고 있어서 회수하여 조금 진행후 우측으로 꺽어지는 위치에 걸어준다.



갑자기 절개지가 나오고 우측으로 돌아서 내려가는데 밤나무 단지이고 미쳐 수확을 못 했는지 바닥에는 주먹만한 알밤들이 그냥 썩어가고 있다.


어잿밤에 물을 숨겨둔 말목재

말목재는 643번 지방도로가 넘는 고개로 전북 완주군 화산면과 충남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를 잇는 고개로 고개의 형상이 말의 목처럼 생겼다고 해서 말목재라 부르기도 하고 전라북도를 향하는 끝 길의 막다른 길목이라 하여 말목재라는 지명이 되였다고 한다.

 



말목재에서 도로를 건너면 우사 안쪽으로 석천교회가 있고

석천교회 종각뒤에 산으로 올라가는 철사다리가 바닥에 깔려있다.


우사에는 튼실한 한우들이 우글우글.


교회는 페업을 했는지 우째 갈끔해 보이질 않는다.


바닥에 깔려 있는 철 사다리로 올라간다


마루금에 올라서면 우측으로 벌목을하여 편백나무가 식재되여 있고 삼전리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우리가 지나온 마루금을 돌아보고


이름이 뭔지는 모르지만 이런 열매가 군데군데 엄청 많이 열려있다.

벌목지가 끝나면 이슬을 잔뜩 머금은 잡목에 고무줄같은 거미줄에 더딘 산행이 진행된다.


하루종일 희뿌연 안개로 잡목과 풀숲에 맺혀있는 이슬로 우중산행 처럼 옷이 젓고 찐덕찐덕한 거미줄로 도저히 속도가 나질 않는다.

지도상 450봉에 올라서니 앞쪽으로 함박봉과 천호산이 조망되고 옥녀봉이 내려다 보인다,


그 와중에 좌측으로 조망이 열리고 석천리와 춘산리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엄청난 잡목길은 계속되고 옥녀봉이 0.16km 지났다고?

450봉을 옥녀봉으로 가리키는거 같다.

지도에는 약 500m 앞쪽에 있는 걸로 되여있는데.

 

이정표에서 가리키는 삼전리 방향을 보니 길이 보이질 않는다.

예전에는 길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사람은 고사하고 짐승도 지나갈 수 없을 정도다.


좌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춘산리


논산465번 삼각점이 있는 이곳이 지도상에 옥녀봉.


옥녀봉(玉女峰:411.7m)은 완주군 화산면과 논산시 가야곡면 경계능선에 있는 봉우리로 봉우리가 예쁜 여자처럼 생겼다고 해서 옥녀봉이란 이름을 붙였다는데 내 보기엔 아무리 보아도 그리 보이질 않는다.


옥녀봉을 지나면서 등로는 차츰 좋아진다.


63번 송전탑을 만나면


여기가 범허리재.

범허리재는 동박골에서 지내기재로 넘어가는 고개로 고개의 모양이 범의 허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우측은 논산시 가야곡면에서 연무읍으로 행정구역이 바뀌는 곳이다.


범허리재는 좌우가 이렇게 칙넝쿨로 뒤덥여 있어서 고개의 흔적은 보이지도 않는다.


범허리재에서 한봉우리 치고 오르니 근처에 사격장이 있는지 박격포 피탄지역이니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판이 수시로 나온다



사격이 있는 날에나 올린다는 붉은 깃발은 사격이 없는 주말임에도 펄럭이고 있다.


쓰다 남았으면 되가져 가서 잘 둿다가 필요할 때 쓰던가 해야지 지돈으로 산거 아니라구 이러면 안되지.


군사지역이라 그런지 함박봉까지 잘 정비된 길을 걷는다.


함박봉은 충남 논산시 연무읍 소룡리와 전북 완주군 화산면 운산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논산훈련소 뒷편에 있는 산이며 산봉우리가 작약꽃처럼 이쁘다고 해서 함박봉이라 부른다고 하는데 군 훈련소가 있는 곳이라 우리같은 지맥꾼이 아니면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이고 이름같이 이쁜산은 아니다.



함박봉에서 내림길은 히미하긴 하지만 부드럽고 편한길이 이여진다.


갑자기 절개지가 나오면 좌측으로 가파르게 내려가는데

칙넝쿨이 얼마나 무성한지 넘어져 굴러 미끄러져도 다칠일도 없겠다.

  

칙넝쿨이 무성한 절개지를 내려서면 여기가 소룡고개이다.

소룡고개(巢龍峙)는 완주군 화산면 운산리와 충남 논산시 연무읍 소룡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15번 군도가 넘어가는 고개이다.

소룡리(巢龍里)는 옛날에 이무기가 집을 짓고 반용이 되여 천운을 기다렸다가 승천 했다는 용골이 있어 소룡골이라 부르다가 1914년 일제강점기에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양지리(陽地里) 일부을 병합 개칭하였는데 소룡고개는 소룡리에 인접한 고개라 그냥 소룡고개(巢龍峙)라 부르게 되였다.


도로를 횡단하면 좌측으로 임도가 돌아가고 지맥길은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소룡고개에서 논산시 연무읍 방향


완주군 화산면 방향


소룡고개에서 히미하긴 하지만 예전에는 관리가 잘 되였는지 곳곳에 벤취의 흔적도 보이고 그런데로 편한길을 10여분 올라가니 성터의 흔적이 보이는 성태봉이다.

이곳은 예전에 백제의 고성(古城)으로 알려진 곳으로 백제 8대 고종왕의 셋째딸인 매화공주가 있었는데 이 공주는 문무(文武)가 출중하고 지혜도 남달랏다 하며 신라와 전쟁을 할때 신라를 방해하기위해 용장을 인솔하고 이곳에 와서 성을 쌓고 대기한 곳이라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성태봉에는 사각 정자가 있는데 얼마나 낡았는지 곧 무너지게 생겼다.


성태봉(城太峰:371.3m)은 완주군 화산면과 논산시 연무읍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옛 성의 흔적이 남아서 성태봉이라 부르고 성태봉 서쪽 황하리 사람들은 윗대의 어른들로 부터 이 성이 삼국시대에 백제의 고성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정상은 묵은 헬기장이고 몇미터 아랫쪽에는 연고가 없는 묘지인지 오랫동안 관리가 안된 묘지가 한기 있고. 산행지도에는 삼각점이 표기되여 있는데 엄청남 잡풀로 인해서 한참동안 수색을 했지만 삼각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성태봉에서 내림길은 묘지로 올라오는 임도길이고


몇분 진행하면 임도는 좌측으로 돌아가는 위치에서 우측 산길로 올라선다.


성태봉에서 한 봉우리 올랏다 내려서면 고개의 흔적이 보이는데

지도에서는 정확한 지명이 없다.

위치는 조금 앞쪽에 고내곡재라는 고개가 있는데.

여기가 원래 고내곡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우측으로 연무읍 고내리 방향


좌측으로 운산리 방향


지명을 알수 없는 곳에서 5분후에 절개지가 나오면 새로 확정하여 포장을 한 고내곡재이다. 

어느 쪽으로 내려가야 할지 모르고 주위를 왔다갔다 하는데


우측에 군이님 리본이 살랑거리며 이쪽으로 오라구 길 안내을 한다


절개지 끝을 바라보며 내려가는데 막상 가보니 내려설 수가 없을 정도의 높이라 우측으로 계속 돌아가니 묘지로 올라오는 돌계단이 있다.



절개지에서 바라본 논산

삼국시대에는 황산벌로 불리던 곳이고 백제의 명장 계백과 신라 김유신 장군과의 큰 전투가 있었던 곳이다.

황산(黃山)벌 전투란. 660년에 황산벌에서 있었던 백제군과 신라군의 큰 싸움을 말한다.

마지막 전투을 앞두고 처자식을 희생시킨 계백의 결사항전 백제의 명장 계백은 마지막 전투임을 직감하고 결전을 위해 처자식을 손수 희생시키고 5천명의 소규모 병사를 이끌고 전장에 나선다.

이에 맞서는 신라 김유신 장군의 병력은 5만명.누가봐도 전쟁의 승패는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였다.


그러나 국운이 걸린 백제의 항전은 놀라웠다.

신라의 5만대군을 맞아 4전 전승을 거둔것이다.

발이묶인 신라는 초조해 질수 밖에 없었고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게 된다.

계속하여 잔 신라군의 사기를 높이는 방법이 필요했는데.바로 화랑 관창이 그 역활을 맡게 된다.

16세 화랑 관창이 나서 백제군의 진영으로 향한다.

창 하나로 적진 한가운데에 뛰여든 관창.그 용기를 높이 산 계백이 관창을 살려 보내지만.그는 또다시 적진으로 뛰여들어 목숨을 잃는다.

말의 안장에 매달려 돌아 온 관창의 목.참혹한 어린 화랑의 죽음앞에 신라군은 투지를 불태우고 결국 백제군은 전멸당하고 만다.

백제는 황산벌전투 후 열흘 만에 700년 역사의 막을 내린다.


백제의 멸망으로 삼국통일의 초석이 된 황산벌 전투. 논산의 천호리.연산리 표정리 관동리.송정리 등을 포함하는 황산벌은 백제 말기에 계백(階白)장군이 김유신의 신라군을 맞이하여 싸운 격전지이다.

죽기를 각오한 계백의 황산벌 전투는 백제와 신라의 호국 충정의 격전장이었으며, 계백으로서는 1당 100의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네번이나 싸워 이겼으나 5만의 나당연합군의 수적 열세에 밀려 패전한 통한의 전투였다.

백제군은 결국 중과 부적으로 대패하여 계백은 전사했고 좌평. 충상. 상영. 등 20여명이 포로가 되였다. 

이 황산벌 전투로 백제는 비운의 종말을 맞이 했으나 우리 역사상에는 충과 호국의 표상으로 길이 기억되고 있다.

이 황산벌 싸움에서 김유신장군의 5만 대병을 맞아 계백장군 휘하의 5천 결사대가 피와 땀을 흘렸던 대결전장의 하나였던 벌곡면 한삼천리 일대에는 당시 한삼천 주변의 세 골짜기에서 백제군과 신라군이 흘렸던 피와 땀이 냇물을 이루었다 한다.


내려서기 직전에 돌아본 고내곡재 절개지


도로에 내려서고 보니 논산쪽은 아직 임도수준의 도로이다.


옹벽을 올라서고 맞은편 절개지를 향해서 올라간다


터널을 뚫었으면 좋았을 텐데.

동물들은 또 어떻게 지나다녀야 하나?


예전에 성황당이 있었는지 커다란 나무와 근처에 울굿불굿한 천이 걸려 있어서 을씨년 스럽다.

 


멧돼지가 문질러덴 나무는 곧 죽게 생겼고 주위에 풀한포기 없는 것을 보니 멧돼지가 상주하는 곳인가 보다.

등골이 오싹하고 풀숲에서 우리을 보고 있는거 같아서 신속하게 벗어난다.


오지 산중에 무슨 용도로 쓰던 것인지 모르겠다


누항재에 내려서고 한개남은 캔맥으로 마지막 힘을 보충한다.

처음 계획은 여기 누항재까지 였었는데 거리도 21km이고. 2km의 접속구간이 생기는지라 조금더 진행해서 문드러미재까지 진행하기로 한다.


누항재에서 10여분을 쉬고 출발하는데

올라서자 마자 팔뚝만한 잡목에 칙넝쿨이 온산을 다 뒤덥고 있는지 허리를 펼수 없을 정도라 오리걸음으로 기여가야 하는곳도 지난다.


그 와중에도 천왕봉이는 으름을 수확한다.

딱 두개가...올들어 처음 먹어보는 으름 씨는 좀 많지만 엄청 달달하다.


잡목지대를 벗어나니 내림길이고 우측으로 수십미터 낭떨어지 폐광산이 드러난다.

밑을 내려다 보니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아찔하다.


봉우리도 아닌곳에 방위각이 보여서 스틱으로 주위을 찍어보니 받침이 있는거 같아서 발로 문질러서 낙엽과 흑을 치워보니 받침은 있는데 글씨는 없는거 같다.


도대체 이런곳을 어떻게 둟고 지나가나 말이다.


자꾸 눈길을 끄는 이름모를 이쁜 열매




1km정도를 40분이 넘게 걸려서 올라서니 구름이 뒤덥고 있는 논산시내(황산벌)이 내려다 보인다.


천호산성의 대한 안내판이 나오고


돌담으로된 성터가 나온다.

천호산성(天壺山城)은 천호산(天壺山:500m) 정상부를 둘러싼 테뫼식 산성이다.
성의 축성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문헌기록은 없고, 다만 여산구지(礪山舊誌)에 의하면 천호산성은 부의 동쪽 십리에 있는데, 성 아래 용추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천호산은 익산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산의 정상부를 둘러싼 테뫼식 산성으로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으므로 방어에 유리한 성으로 판단된다. 성의 외벽은 비교적 납작한 사각형 석재로 내탁과 협축 방법으로 축성하였다. 둘레는 669m이며 높이는 현재 잘 남아 있는 부분이 5∼6m 정도 남아있다. 주변에서 백제토기와 기와편이 수습되어 백제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천호산성(天壺山城)은 여산면 호산리 천호산의 가장 높은 500m의 중봉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가 약 4km에 이르는 거대한 산성이다.
산명에 따라 천호산성이라 칭하고 있으나, 속칭에는 태성(台城)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이 곳은 후백제(後百濟)와 고려군의 격전장이라고도 전하여 온다.

성곽은 폭이 약 4.4m로 비교적 넓게 성저(城底)를 잡아서 쌓은 석성인데 성벽의 북벽을 보면 치석(治石)한 석재를 써서 정교하게 축성(築城)한 것을 볼 수 있고, 봉수시설(烽燧施設)로 추정되는 원형의 유구(遺構)가 남아있다.
여기에서는 멀리 부여와 대전 남쪽의 면병산(綿屛山)이 바라보이고 동남쪽으로는 무주방면이 가리는 것 없이 시야에 들어오는 전략적 요지이다.
현재 남아 있는 성곽의 높이는 약 2m인데 원래는 그 보다 더 높았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 성에 관한 기록은『동국여지승람』이나『호남읍지』에는 보이지 않아 조선시대 이전에 이미 폐하여졌던 성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여지승람』에 보이는 군입산(軍入山)이라 하고 왕건 태조군이 후백제 정벌 때에 주둔 하였던「문드뢰뫼」산이 천호산에 이어서 있고, 또 황산 탄현이 이 산에 연결되어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구찌뽕 나무가 있고 열매가 엄청나게 열려있다.

몇개따서 맛을보니 산딸기 맛 비슷하다.

좀 따보고 싶었지만 어두워지기전에 산행을 종료하고자 서둘러 자리를 뜬다.


널찍한 묵은 헬기장에 올라서면 여기가 천호산 정상이다.

지도에는 삼각점이 표시되여 있는데.

이런곳에서 어떻게 찿을 수 있을까.




삼각점은 포기하고 인증하고 내려선다.

천호산(天壺山:501m)은 전북 익산시 여산면과 완주군 비봉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하늘 천() 병 호()를 써서 속이 텅빈 산이라는 뜻이다.

천호산의 서북쪽에 호남에서 유일한 길이가 약 800m에 이르는 천호동굴(天壺洞窟)을 간직하고 있다.

성피마을 주민들에 의하면 성치마을 윗쪽 냇가에 구멍이 있는데. 비가 많이 오면 그 구멍속으로 냇물이 빨려 들어간다고 한다.

결국 그 텅빈 구멍으로 스며들어간 물은 석회를 녹여 큰 동굴을 형성하고 있는 중이며. 그래서 동굴이 있는 마을의 이름도 호산리(天壺里)이다. 




천호산에서 조금 내려가면 봉천장여신(烽天張茹信) 이라 쓰인 대리석 표지석이 있다.


오늘 구간에 마지막봉 산불감시 초소가 있는 갈매봉에 올라선다.



지금은 현대식 무인 산불감시 카메라가 있어서 유인 초소는 폐기된거 같다.

주위에 나무들이 웃자라서 육안으로는 쓸모도 없게 생겼다.

갈매봉에서 몇 발짝 내려서면


호남고속도로와 익산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내려가면서 마루금은 우측으로 서서히 틀어진다.


해는 이미 서산을 넘엇고 잠시 걸음을 멈추고 우측으로 보이는 저산이 궁금하여 확인을 해보니 금남정맥에 계룡산이로구나.

금남정맥을 진행할 때 저기 천단에 올랏을 때.

군인 애들 대여섯명이 올라 오길래 나는 카메라을 배냥속에 잽싸게 숨겼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천단에서 찍은 사진을 죄다 삭제을 당했었지.

핸드폰도 일일이 검사를하고 사진 다 삭제하고 난리를 쳤던 추억이 떠오른다.


오늘 목적지인 741번 지방도로 전북 완주군 비봉면 내월리에서 익산시 여산면 원수리로 넘어가는 문드러미재에 내려서며 오늘 산행을 종료한다.

문드러미재의 유래를 보면 산이 높아서 극난(極難)하고 예전 서울에서 옛 고산으로 올 때. 고개가 높고 고산으로 가는 문과 같다 하여 문드러미재라 했다고 한다. 

다음 들머리는 자측에 통신탑쪽으로 올라서면 되겠다.


이곳 문드러미재는 버스노선이 없는 곳이다.


말골재에 있는 차량을 회수 할려면 좌측 비봉쪽으로 5km를 내려가서 내월리 마을에서 완주 군내 버스를 이용해야 되는데. 이미 해가 넘어 갔기 때문에 곧 어두워질 것이라 말골재 아래에 있는 운주택시를 콜한다.

운주 택시는 1구간을 진행할때 화물차로 작은 싸리재까지 2만5천원에 이용했던 택시이다.

오늘도 40분 넘게 걸려서 문드러미재까지 왔는데 최단거리로 달리니 미터요금 3만4천원이 나온다.

운행중에 오늘 비박을하고 내일 아침에 올라갈려구 하는데 비박 할만한 곳을 알려 달라하니 운주 생활체육공원이 좋다구 한다.

관리인이나 누가 뭐라하지 않겠냐 하니 운주택시가 소개해줘서 왔다고 하면 괜찮을거라 한다.

운주 체육공원엘 찿아가니 조용하고 화장실엔 비데까지 설치되여 있고 청소도구 칸을 열어보니 기다란 호수가 있고 세면대 밑에 수도꼭지가 있어서 호수를 연결하여 사워을하고 준비해간 우럭매운탕으로 쏘맥을 곁들여 저녁을 먹고 기사님이 알려준 축구장 본부석에 텐트를치니 이슬도 안맞고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아침 6시까지 자고 어제 저녁을 잘 먹어서 그런지 아침 생각은 없고 해뜨기전에 자리를 정리하고 인천으로 출발한다.



능이 버섯은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서


국물을 버릴것이 아니기 때문에 물을 많이 붙고 푹 삶는다


건데기를 건져서 먹기좋기 찟고.


처음에 버섯을 우려낸 국물에 간을 마추고 여러가지 야체와 버섯을 넣고 끌인다,

마지막으로 샤브샤브 용 쇠고기를 투하해서 기호에 맞는 술과 함께 먹으면 좋다.


소요경비

이동거리=455km(왕복)

유류비=40.950원(연비15km/디젤1.350원)

톨비=갈때 15.300원/올때 없음

택시=34.000원

등=20.000원

합계=110.25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