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기맥
부뜰이와 천왕봉이 걸어온 금강기맥
기맥길18.3(접속0.6/이탈)km/10시간48분
산행일=2019년6월15일
산핸지=금강기맥 1구간(완주군)
산행경로=작은 싸리재=>금강기맥분기점(금만봉:755m)=>왕사봉(718.3m)=>632암봉=>칠백이고지H(701m)=>588봉=>써레봉갈림길=>선녀봉갈림길=>용계재=>불명산(480m)=>445봉=>시루봉(427.6m)=>장선리재=>380암봉=>암릉=>450봉=>능바위산(476m)=>말골재
거리 및 소요시간=18.3(접속0.6/이탈)km/10시간48분
많이도 아니고 딱 두집이 시간마춰 움직이기가 쉬운거 같아도 어렵고도 어렵다.
지난주에는 우리 집안에 행사가 있어서 산행을 못하고 이번주에는 소슬바람님 댁에 사정으로 또 안되고......
여러가지로 교통편이 불편하고 차량회수도 쉽지않은 곳이라 오래전부터 미루어 오던 금강기맥에 들어보기로 한다.
이른봄에 군이님으로 부터 얻은 교통정보를 이용해보기로 한다.
운주개인택시(010-8000-2077) 하루전날 통화를 해보는데 운주에서 작은 싸리재 올라가는 길에 요즘 몇년동안 관리를 안해서 좌우에서 우거진 잡목으로 차량통행이 힘들다고 하면서 난색을 표한다.
올 봄에 사장님 택시를 이용한 분으로부터 소개을 받았다고 하며 사정애기를 하니 정 그렇다면 화물차량을 가져갈테니 괜찮겠냐고 한다.
화물차라도 감사하다고 약속을 받는다. 차종이 뭐가 대수겠는가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릴 수가 있다니. 저녁에 도착해서 연락을 드리겠다고 하니 혹시라도 전화를 안 받으면 자느라고 그럴수도 있으니 받을때까지 계속 전화를 하라고한다.
금욜저녁 7시에 인천을 출발 하는데 퇴근시간에 걸리다보니 인천에서 시흥을 벗어나는데 1시간이 넘게 걸린다.
이후로 8시가 넘어가면서 슬슬 풀리더니 이내 제속도를 내며 씽씽달리서 11가 조금넘은시간에 완주군 운주면 금당리에 도착을하고 오늘 구간에 지나게될 용계재에 행동식을 숨겨놓고 갈 생각으로 용계재로 오라갈려구 하는데 올라가는 임도 입구를 못 찿아서 실패하고 날머리인 말골재로 이동해서 기사님께 새벽4시까지 와달라고 부탁을하고 새벽3시에 알람을 마추고 쉬는 시간을 갖는다.
금강기맥(錦江岐脈)은 백두대간의 영취산에서 장안산.신무산.팔공산.성수산.마이상을 거쳐 진안과 전주사이의 모래재위 조약봉(주줄산 또는 주화산)에서 두 줄기로 갈라지는데 한줄기는 섬진강하구까지 이여지는 호남정맥이고 또 한줄기는 북진하여 운장산.장군봉을 지나서 싸리재와 봉수대사이의 금만봉에서 다시 두갈래로 갈라지는데 한줄기는 산경표의 금남정맥이고 또 한줄기는 서진하여 왕사봉을 거쳐 시루봉.작봉산.천호산.미륵산.고봉산을 지나 군산의 장계산에서 서해바다로 잠기는 141.3km의 산줄기로 이 산줄기를 보통은 금강기맥 혹은 금강정맥.금남정맥이라고도 부른다.
새벽3시 요란한 알람소리에 잠이깨고 누룽지를 끌여서 아침을 먹는다.
3시50분쯤에 4륜구동 화물차가 도착을 한다.
많은 산꾼들이 금남정맥이나 금강기맥에 들 때는 추촌면 대불리 중리마을에서 작은 싸리재까지 약2km를 걸어서 올라가거나 택시 또는 화물차량을 대여해서 올라가는데.운주쪽에서 이렇게 올라갔다는 애기는 들어보질 못했다.
운주쪽에서는 꼬부랑 임도가 중리쪽보다 2배이상 길기 때문이다.
어쨋든 우리는 운주계곡을 우측에 두고 올라가는데 기사님 말씀데로 임도 좌우에서 우거진 나무가 거의 맞다을 정도로 우거져서 마치 터널을 지나는 듯 좌우에 나무들이 앞 유리창을 후두둑 후두득 스치는데 나도 모르게 눈이 감기고 몸이 뒤로 제껴진다.
그렇게 거의 30분을 달려서 목적지인 작은 싸리재에 닫는다.
우리를 내려주고 돌아가는 화물트럭 운주에는 택시가 두대 있는데 다른분은 올라오지도 않는다고 한다. 아니 올라올 수가 없다.
절반 조금더 올라온 지점에 도로가 망가져서 차 바닥이 닫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연락처는 운주개인택시(010-8000-2077) 군이님은 3만원을 줫다는데 우리는 화물차라고 2만5천원을 지불했다.
이렇게 험한길을 3만원 이라고해도 왕복시간을 감안하면 완전히 거져인 셈이다.
작은 싸리재는 금남정맥을 진행하면서 이곳에 왔던 때가 엇그제 같은데 금강기맥을 진행하겠노라고 3년만에 다시 찿게 될줄은 그 당시에는 꿈에도 생각을 안했던 곳이라 감회가 새롭다.
잠시 그때를 떠 올려보고 산행을 시작한다.
피암목재 방향으로 올라가는데 금남정맥을 역으로 올라가게 된다.
같은 정맥길 임에도 이쪽은 내려서는 방향이라 시그널이 단 한개만 걸려있다.
작은 싸리재에서 20여분 올라서니 금강기맥 분기점인 금만봉(錦萬峰:755m)에 닫는다
금만봉(錦萬峰)이란 지명은 금강(錦江)과 만경강(萬頃江)이 발원하는 봉이라 하여 금만봉(錦萬峰)이라 하였다.
직진으로 금강기맥 방향이고 좌측이 금남정맥 피암목재 방향이다.
분기점에서 30여분 진행하면 어느 무명봉에 닫고 우측으로 내려선다.
키 이상으로 자라있는 산죽군락지도 지나게 된다.
자세히보지 않으면 알수도 없는 묵은 헬기장을 지나고 올라서면 좌측으로 작은 바위가 있고 바위에 올라서면 진행방향으로 왕사봉이 보인다.
왕사봉에 올라서니 날은 밝아 졌는데 주위에 웃자란 잡목들로 사방 어느쪽으로도 조망은 없고 새마포산악회에서 걸어놓은 산패와 삼각점이 여기가 왕사봉임을 알린다.
왕사봉의 삼각점은 4등(411) 삼각점
왕사봉(王師峰:718.3m)은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와 동상면 대아리에 걸쳐있는 봉우리다.
왕사봉이라 불리게 된 정확한 유래는 알수 없으나 비슷한 이름으로 불리는 국사봉(國師峰)이란 이름은 전국에 많이 있다.
반면에 왕사봉이라 불리는 봉 이름은 전라북도 완주 한곳에만 있다.
고려 때 국가의 스승을 국사(國師).왕의 스승을 왕사(王師)라 칭했다는 유래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짐작을 해본다.
왕사봉에서 내려서면 능선상에 돌담의 흔적이 보이는데 옛날에 집터인가?
자세히보면 철사로 돌을 엮어서 쌓은것이 보이는걸 보면 최근에 보수을 한거 같기도 하다.
우측으로 절벽이 나오고 밑을 내려다보니 아이구 아찔하다.
여기가 물좋기로 유명한 운주계곡이고 우리가 새벽에 용달차를 타고 계곡을 내려다보며 올라간 곳이다.
맞은편에는 금남정맥의 성제봉이 지척에 보이고 금강기맥과 나란히 흘러간다.
운주계곡 건너로 쭉쭉 뻣어가는 금남정맥 마루금 저 산줄기를 3년전에 걸엇었지 이렇게 보는것 만으로도 그때의 추억이 떠오른다.
갑자기 거대한 바위가 나타나고 좌측으로 조심스럽게 올라간다.
암봉위에 올라서니 밑에서 보는거와는 달리 안정감이 있고 군이님의 리본이 반긴다.
군이님은 요즘 산타님 나산적님과 춘천지맥에 들엇다고 한다.
오늘 처음으로 주위조망이 시원한 칠백이고지에 올라선다.
칠이고지에는 무인 산불감시 카메라가 있고 지금은 사용을 않는 묵은 헬기장이 있고 주위을 말끔하게 벌초를 하여서 조망이 아주좋다.
칠백이(702)고지는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와 동상면 대야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대둔산과 운장산 연석산이 한눈에 조망되는 곳이다.
702고지라 불리는 이곳은 6.25사변으로 인한 동족상잔의 애환이서린 현장이며 수많은 국군과 애국지사들이 산화한 피로 얼룩진 비극의 현장이다.
1950년 9월28일 수복과 아군의 진격에 북녁으로 쫓기던 괴뢰군 패잔병과 공산분자들이 이곳 칠백고지와 동쪽으로 육백고지 팔백고지 느티골 피목리 고당리 싸리재 왕사봉 등에 진을치고 본거지로 불야성을 이루었다.
그리고 무기탄약까지 만들어 금산군 전 지역과 논산 완주 무주군 등의 지역까지 출몰하여 양민대학살 식량과 가축약탈 민가방화 경찰관서 습격등 천일공로 할 만행을 일삼았다.
이곳을 요새로 준동하던 공비들은 소위 남조선 빨치산 총사령관 이현상 휘하 45사단 총참모총장 길병래가 지휘하던 백두산부대 압록강부대 청천강부대 한듬산부대 외팔이부대 나팔부대 호량병단인민학교 인민병원 남로당 완주 금산 논산군당 등 각부대 괴뢰군 대위 전광순 외 거물급이 통솔하는 2만명이 집결하여 대둔산 운장산지역과 멀리 덕유산 지리산을 거점삼아 출몰하던 공비들까지 합동작전을 지휘하던 막강한 세력으로 국내 내치안을 교란했다.
이에 따라 경찰 군인 향토청장년들이 혼연일체가 되여 9월28일수복과 약 5년반동안 공비 토벌작전을 감행 수백회의 치열한 공방전을 거듭하였으며 충청남도와 전라북도 경찰대 향토방위대 국군 8사단 화랑부대 김화산부대 등이 합동작전을 전개하여 적사살 2.287명 생포1.025명과 중화기 탄약등 다수의 전리품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고 한다.
리본이 뒤집어 졌다고 속상해 하던 문제의 군이님 리본은 제데로 잘 걸려있다.
칠백이고지에서 조망
살짝 당겨보니 멀리 보이는 산은 모악산으로 보인다.
산세참 험하게 생겼다.
좌우가 절벽수준으로 가파르고 능선이 칼날같이 솟아있다.
어느 암봉위에서 빵하나씩 먹으며 휴식을 취한다.
가끔씩 뒷쪽으로 조망이 열리고 운장산이 보인다.
앞쪽으로 기맥에서 좌측으로 살짝 벗어나 있는 암봉으로 이루어진 쎄레봉
홍성 대.충.산.사의 산꾼 선배님 시그널이 보인다
백두대간 왕복 9정맥완주 기념이라고 쓰여 있다
암봉에 올라서고
앞쪽으로 667.2봉과 쎄레봉이 보인다.
585봉인 듯한 무명봉에 올라서면 갈림길이고 좌측으로 리본이 많이 걸려 있어서 무심코 내려가다보니 주머니 속에서 잘못된 방향이라고 경고음이 들린다.
이상하여 지도를 꺼내보니 기맥길에서 좌측으로 벗어나는 중이다.
다시 되돌아 올라와서 우측으로 리본하나 걸고 내려선다.
677.2봉을 지척에 두고 갑자기 허기가 몰려와서 밥을 먹기로 한다.
작은 싸리재에서 9.3km지점이고 4시간 20분이 지난 아침 9시10분이다.
식사를 마치고 20여분 올려치니 677.2봉에 올라선다.
지난 3월에 거인산악회 막독대장이 설치한 산패에 누군가 선여남봉(仙女南峰)이라고 써 놓았다
지나온 뒷쪽을 조망하고
좌측으로 쎄레1봉을 조망한다.
677.2봉 내림길에 우측으로 천등산이 멋드러지게 보인다.
그리고 가가야 될 기맥마루금
기맥마루금과 대둔산에서 분기해서 내려온 천등산을 잡아본다.
천등산 뒤로 희미하게 대둔산을 조망하고 내려서면
사각정자가 있는 용계재에 내려선다.
용계재(龍鷄峙)는 완주군 운주면 금당리와 경천면 가천리를 잇는 고개로 고개아래로는 740변 지방도가 지나는 곳으로 조선조에는 용게원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의 지명에는 용과 닭의 관련된 지명이 많다.
대둔산과 천등산이 경계로되여 있는 17번 국도와 나란히 흐르는 옥계(鷄)천 원장선에서 장선리까지 지명중에 용계천(龍鷄川).용계성(龍鷄城).용계치(龍鷄峙).용계원(龍鷄園).모두가 천등산의 유래에서 용이 닭소리를 내었다는 전설과 무관하지 않은것 같다.
견훤이 등불(天燈山)과 닭소리의 도움으로 전쟁에서 승리하였다는 설이 있고 고산지와 대동여지도에는 조선조에 용계원이 있어서 부른것도 같다.
용계재에서 우측으로 완주군 운주면 금당리 방향
이쪽은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 방향
우리가 내려온 쎄레봉 방향
진행해야 될 방향
칙넝쿨이 엄청나게 뒤엉켜 있다.
용계재에서 올라서면 예전에 벌목을 했었는지 온갖 잡목이 얼마나 우거 졌는지 길이 보이질 않는다.
지나온 뒷쪽 조망
500m정도 되는 거리를 잡목과 한판 싸움을 벌이고 캔맥 하나까서 달아오른 열을 식혀본다.
잡목지대를 벗어나니 급경사길로 재차 진을 빼고 올라서니 작은 돌탑과 완주군에서 세운 오석으로된 정상석이 있는 불명산에 올라선다.
불명산(佛明山:480m)은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와 운주면 장선리 금당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밝혀주는 곳이라는 뜻에서 부처불(佛) 밝을명(明)을 써서 붙여진 산 이름이다.
불명산 아래에는 화암사가 있다
지난봄에 영산기맥 진행중에 강적고개에서 만난던 주봉님의 흔적이 보인다.
불명산에서 내려서면 좌측으로 화암사 갈림길이고 기맥길은 직진 시루봉으로 진행한다.
우측으로는 큰황골이라 하는데 제데로 된 길은 보이질 않는다.
전국에 시루봉이란 봉우리는 많은데 어쩜 하나같이 오르기가 힘든지 모르겠다.
시루봉은 완주군 운주면 장선리와 경천면 가천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떡시루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시루봉이란 이름으로 불린다.
시루봉의 삼각점.
자연석에 시루봉이라 써 있는데 소슬바람님 작품인가?
시루봉에서 내려서는 길은 부드럽고 좋다.
시루봉에서 내려서면 안부을 지나고 올라서면 직진으로 길이 좋고 우측으로는 길이 잘 보이질 않는다
우측으로 내려서야 기맥길이다.
여기서 지금까지 아껴두었던 캔맥과 삶은 계란으로 허기를 달래본다.
잠시 쉬였다 내려가니 무슨 시설물이 보인다.
산악 기상관측 장비라네
산악기상관측장비를 지나고 내려서면 임도길이고 여기위치가 장선리고개이다.
장선리고개는 경천면 가천리에서 운주면 장선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좌측으로 가천리 방향
우측으로 장선리방향
들머리를 찿는 천왕봉이
욱어진 잡목숲을 헤치고 들어가면 그런데로 괜찮은 길이 이여진다.
380봉.450봉.능바위산(475m)으로 이여지는 암릉길이 시작된다.
우측으로 돌아서 올라가는데 디딜 곳과 잡을 곳이 적당한 곳에 있어서 그리 어렵지않게 올라간다.
첯 봉우리인 380봉에 올라서서 돌아보니 천둥산과 대둔산이 웅장하게 조망된다.
암릉길은 계속되고 조금더 올라가니 새벽부터 지나온 기맥마루금이 한눈에 들어온다.
볼수록 멋진 천둥산이다.
450봉에 올라서서 리본하나 걸고 쉬여간다.
450봉을 내려서며 마지막으로 능바위산이 건너다 보인다.
능바위산도 처음부터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은근히 진을빼는 산이다.
능바위산 오름길에 돌아본 지나온 450봉.
마지막으로 올라서고
잠시후 기맥길은 우측으로 급하게 내려 꽃힌다.
1km정도를 한없이 내려가는데 어찌나 가파른지 바닥이 보이질 않는다.
급경사길을 30여분 내려가니 오늘 종착점인 말골재에 떨어지고 어잿밤에 주차해둔 차량이 보인다
말골재(馬骨峙:200m)는 완주군 운주면과 경천면을 잇는 17번 국도가 지나는 고개로 옛날 천등산부근 마을에서 애기장수가 탄생했는데 그가 훗날 집안에 액운을 갖다주고 대(代)를 끊어 놓을 애라고 하여 그 부모가 그를 무거운 돌로 눌러 죽였다.
그런데 그가 죽고 나서 3일이 지난뒤 갑자기 용마(龍馬)한마리가 나타나더니 울부짓으며 애기장수를 사방으로 찿아 다니며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이 고개에 떵어저 죽엇다하여 마골치(馬骨峙)라 불리는데 변음이 되여 말골재라고 부른다.
오늘은 여기서 산행을 종료하고 다음구간에 오르게 될 봉우리를 올려다보니 시작하자마자 땀좀 빼게 생겼다.
차량회수하여 계곡에서 열시간 넘게 찌든 땀을 씻어내고 용계재로 올라가서 준비해간 닭갈비와 쏘맥으로 하루종일 소진된 체력을 보충하고 푹 쉬고 밤 10시쯤에 출발해서 집으로 올라간다.
소요경비
이동거리=438km(왕복)
유류비=39.400원(연비15km/디젤1.350원)
톨비=갈때 없음/올때 없음
택시비=25.000원
등=20.000원
합계=84.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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