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기맥
부뜰이와 천왕봉이 걸어온 영산기맥
기맥길57.3(접속4.1km/이탈km)/32시간59분
산행일=2018년월일
산행지=영산기맥 3구간(고창/장성/영광)
산행경로=암치재=>고산(527m)=>촟대봉=>가랫재삼거리=>가미치=>310봉=>540봉=>고성산(깃대봉:546m)=>임도=>340봉=>깃재(깃재산장)=>320봉=>460봉=>월랑산(458m)=>군감뫼=>몰치재=>537.1봉=>태청봉=>헬기장:태청지맥분기점=>태청산=>마치=>470봉=>작은마치재=>340봉=>장암지맥분기점=>장암산.왕복=>숫가마터:샘터=>사동고개(덤바위재)
거리 및 소요시간=18.2km/9시간44분
2주만에 다시 찿아온 암치재 뭐 별달리 눈에 뛰는게 없는지라 도로에 이정표을 찍어 본다.
암치재(岩峙峙:200m)는 전남 장성군 삼계면과 전북 고창군 성송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893번 지방도가 지나며 암치재 또는 암치고개라 부르며 지명은 북쪽에 있는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에서 따온 지명이다.
암치리에는 꽤 큰 암치제라는 저수지가 있으며 바위가 많은 재라고 해서 암치(岩峙)라고 부른다.
암치재에서 들머리는 임도길로 이여지며 고산까지 잘 정비된 편안한 길이 이여진다.
1시간20분정도 올라가니 조금씩 가팔라지기 시작하고
옷도하나 벗고 신발끈도 다시 조인다.
최근에 설치된 듯한 목조계단으로 올라서면 오늘 구간중 첯 산인 고산에 올라선다.
고산 정상에는 자연석에 고산이라 새긴 정상석이 있는데 고성군에서 세운 정상석이 하나더 있다.
위치를 조금 떨어진 곳에 설치해도 될 것을 기존에 있는 정상석 바로 앞에다가 설치를 한것은 좀 거시키 해보인다.
고산(高山:528m)은 전북 고창군 대산면 성송면과 전남 장성군 삼계면 생촌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높은 고(高)를 쓰는 이 산은 고창들녁에 높이 솟아있어 주변의 조망대 역활을 톡톡히 한다.
아직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고창의 숨은 명산으로 세계문화 유산인 선사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지석묘(고인돌)300여기. 후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알려진 고성산성 약4.1km등 문화유적의 보고(寶庫)라고 알려져 있으나 관리를 하는지 안하는지 그냥 방치하는 듯 보인다.
고산의 높이는 528m로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평야에 우뚝솟은 산이라 1000m산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며 350m까지는 육산(陸山)으로 송림이 울창하고 고산산성이 있으며 암봉과 산죽이 어우러진 나름 멋진 산이라 할수 있다.
고산에서 10여분 내려서면 기맥길은 좌측으로 틀어지고 살짝 올라서면 촟대봉에 닫는다.
촟대봉에는 이정목과 고산산성의 대한 안내문이 있다.
고산산성에는 선사시대의 고인돌이 수백여기가 있으며 후삼국시대에 축조한 고산산성이 자리잡고 있다.
길이는 약4.1km 정도이고 높이는 5m인데 지형에 따라 다르며 자연을 따라 이용한 토성혼성으로 축성. 양식은 포곡형이고 석축의 공법은 내탁법(內托法)이고 외면은 석축으로 쌓았고 내면은 흙과 잡석으로 다져서 축성하였다.
외면은 자연석을 수직 혹은 물림 쌓기로 아랫돌에 비해 윗돌을 5~6cm씩 안으로 물려 쌓은 방식을 썼다.
성문은 남문과 북문이 나아 있으나 동문과 서문은 찿아 볼수 없다.
문헌에는 산성둘레가 8.100척(2400m)이고 내유3천(內有三泉)이라는 기록이 있으며 성내에는 용지(龍地)와 서봉사(瑞奉寺) 수고암(水庫庵) 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산성의 형태는 600m정도가 남아 있고 거의 도태된 상태다.
이곳 촟대봉에서 부터는 북쪽인 고창군 성송면에서 대산면으로 면계가 바뀌지만 남쪽은 여전히 장성군 삼계면을 유지한다.
기맥길은 좌측으러 꺽어 가릿재 방향으로 진행된다.
촟대봉을 지나면서 그 좋던길이 점점 희미해지고 선두에선 우왕좌왕하며 길을 못찿고 빽을 한다.
지형도나 gps를 보면 맞는 길인데....우측으로 뚜렸한 길을 찿고 내려가는데 마루금에서 점점 멀어진다.
아마도 우회 길인듯 하고 무슨 사연이 있어서 우회길이 있을거라 생각하고 그냥 내려간다.
그렇게 6분여 내려가니 마루금에서 100m이상 벗어난 위치이고 위에 이정목이 나타난다.
산행지도에는 여기 위치가 가랫재삼거리로 표기되여 있다.
여기서 더이상 직진하면 고인돌 소공원으로 가는 방향이고 마침 이정목 뒷쪽으로 임도길이 보여서 좌측으로 몇분 진행해보니 묘지가 나오고 길은 없어진다.
더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냥 뚫고 나가니 재의 흔적이고 지도상의 가미치(가랫재)이다.
가랫재는 작은 임도길 정도로 알았는데.재의 흔적을 찿을 수 없을 정도로 편백나무 숲으로 울창하여 지금은 지도에만 있을 뿐이다.
가릿재(235m)는 전북 고창군 대산면과 전남 장성군 삼계면.그리고 영광군 대마면의 경계가되는 고개로 지도에는 가미치로 표기되여 있다.
고개에는 육군 보병학교장의 경고문간판과 원형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으며 성황당에서나 볼 수 있는 커다란 돌무덤이 고개를 지키고 있다.
지명유래를 보면 농기구를 뜻하는 가리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여기서부터는 북쪽으로 쭈욱 같이해 온 전라북도와 헤여지고 영산기맥줄기는 온전히 전라남도로 접어들며 목포 유달산으로 향한다.
옛날 가릿재에는 기골이 장대하고 마음씨 착한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어느 날 이들은 힘을 겨루어 보기 위하여 이두 산에 성을 쌓기로 하였다.
기간을 정하여 형은 고성산에 아우는 고산에 성을 쌓은 후 중간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약속한 날짜에 성을 쌓지 못하거나 가래재에 늦게 도착한 사람이 목숨을 내 놓기로 하였는데.결국 아우가 약속한 날짜를 못 지키자 형이 아우를 가래(삽)로 쳐 죽이고 고산에 올랐다.
아우가 명천수(明天水)가 솟아나는 용추골 주변을 이용하여 약속보다 갑절이나 많은 산성을 쌓느라 늦은 것을 알고 후회한 나머지 가래로 자기 목을 쳐서 자살하여 가래재에 전설로 전해온다.
그 후 사람들은 형제의 무덤이 나란히 있는 이 고개를 가랫재라고 부르게 되었다.
개랫재를 지나면서 편안한 편백나무 숲을 지난다.
초승달이 이렇게 밝은건 또 처음 보는거 같다.
암릉을 올라서면 540봉이고 조금 지나면 묵은 헬기장을 지나고 고성산에 올라선다.
고성산 정상에 올라서니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든다.
고성산 정상에는 스텐판에 고성산 안내도가 있는데 어설푸게 만들었는지 글씨가 다 지워졌다.
그리고 역시 스텐으로된 기둥형태에 깃대봉이라 쓰여있다.
땅바닥에 됭구는것을 바위위에 세워놓고 찍어본다.
고성산(古城山)은 전남 장성군 삼계면과 대마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남도지역의 산으로는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이지만 주위에 산이없이 너른 들녁에 우뚝솟은 산이라 상대적으로 높아 보인다.
산성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다보니 언제 어떻게 축조되였는지 알 수가 없는 실정이고 정상에는 2등 삼각점이 있다는데 미처 확인을 못하고 지나쳐버렸다.
고성산에서 조망은 멀리 광주에 무등산이 조망되고 다음구간에 지나게 될 월랑산과 태청산이 아련하게 보인다.
장성 삼계면 아래로 수산리 덕산리 사이에 커다란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데 물안개가 피여오르는 모습이 멋졌는데 사진에서는 물안개가 보이질 않는다.
지행해야 될 앞쪽을 보면 가까이로 월랑산과 태청산 장암산이 차레로 조망된다.
고성산을 조금 내려선 바위 조망처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담아본다.
고성산에서 장성군 동화면.삼계면.
진행방향 쪽으로 월랑산 아래 장성 추모공원과 태양광 발전단지가 보이고.태청산. 장암산까지 조망.
고성산에서 가파르게 내려서니 좌측으로 임도가 보이고 임도에 내려서서 아침식사 시간을 갖는다.
들머리인 암치재에서 6.3km지점 이고 4시간 20분이 지난 시간이다.
약간의 잡목은 있었지만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든다.
단체 산행에서는 이런일도 감내해야 한다.
오늘은 뜨끈한 떡만두 국을 준비했다.
아침 식사후 허비한 시간을 만회할겸 서둘러 출발을 하는데.
새벽녁보다 비교도 할수 없을만큼 어수선한 잡목숲을 뚫고 내려서니 깃재 휴게소 마당으로 떨어진다.
깃재는 전남 장성군 삼계면 부성리와 영광군 대마면 북평리의 경계에 있는 816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고개이며 고성산과 월랑산 사이에 있는 고개로 남쪽 장성쪽에 장성추모공원이 자리를 잡고 있으며 갯재라고도 부른다.
조선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시절에는 왜군들이 서해안을 따라서 영광쪽에서 장성지방으로 진격할 때는 고개위의 산인 고성산에 있는 산성에서 관군과 격전지가 된 곳이기도 했다.
일제시대에는 장성 사람들이 영광 법성포까지 공출(세금)을 갖다 바치는 민초들과 애환을 가까이했던 수탈로의 고갯길이기도 했으며 이 고개의 형국이 갯벌의 게모양과 닮았다고 하여 갯재로 불리우다가 지금은 깃재로 불린다고 한다.
장성쪽으로 조금 올라간다.
장성 추모공원 입구
깃재에서 영광군 방향.
깃재에서 가볍게 한 봉우리 올라서니 320봉이고 좌측으로 태양열 발전기 단지가 보이고 좌측 끝으로 월랑산이 올려다 보인다.
320봉을 지나면서 월랑산 아래 장성 추모공원 건물도 보인다.
깃재에서 50여분을 진행하여 오늘 구간에 세번째산인 월랑산(月朗山)에 올라선다.
월랑산(月朗山)은 장성군 삼계면 부성리와 영광군 대마면 월산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다랑산이라고도 부르며 월암 남쪽에 있는 산이라 붙여진 지명이라고도 하며 산 중턱에 옥황월형의 명당이 있으며 특히 달빛이 밝게 비치는 산이라서 월랑산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월랑산의 삼각점.
월랑산에서 인증을하고 좌측으로 급하게 꺽어서 내려가면 군감뫼에 내려선다.
군감뫼는 장성군 삼계면 부성리에서 영광군 대마면 남산리 내동을 잇는 고개이고 군감뫼(군관매)란 지명은 지형이 군인을 지휘하는 형국이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군감뫼에 있는 이정목
군감뫼에서 20분을 진행하여 삼거리에 닫고 우측으로 산림도로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우측 산림도로 갈림길에서 10분을 진행하여 편백나무 숲과 송전탑을 지나고 내려서니 몰치재이다.
몰치재는 영광군 대마면 남산리에서 대화관광농원이 있는 장성군 삼계면 화산리를 잇는 고개로 몰치재라 부르게된 유래는 고개 아래에 있는 삼계면 부성리에 있는 물치마을에서 따온 이름인거 같다.
몰치재에서 배냥떨이를 하며 쉬는 시간을 갖는다.
몰치재에서 태청산가는 길은 널찍한 임도길이고 좌측으로는 길이 없는데 gps는 길을 벗어났다고 한다.
300여미터 올라가니 마루금에 붙고 539.4봉을 빼먹고 진행한 꼴이다.
539.4봉은 비록 무명봉이지만 삼각점이 있는 봉이라 다녀 오기로 한다.
539.4봉을 다녀온 사람은 나포함 4명이다.
539.4봉의 삼각점.
539.4봉을 다녀오는 길에 지나온 월랑산 조망.
몰치재에서 올라와서 봉정사 방향으로 200여미터에 위치한 539.4봉을 다녀와서 태청봉으로 향한다.
앞쪽으로는 태청산과 장암산이 보인다.
또 다시 갈림길을 지나고
태청산아래 헬기장에 올라서면 좌측으로 태청지맥 분기점을 확인하고 태청산으로 오른다.
태청산직전 헬기장에서 좌측으로 태청지맥이 분기한다.
헬기장에서 태청봉은 목조계단으로 올라간다.
태청산에서 지나온 영산기맥 마루금 539.4봉과 월랑산 고성산 고산을 넘어 지난회차에 걸은 구황산까지 훤히 보인다.
약간 우측을 바라보면 태창지맥 줄기가 뚜렸하게 내려다 보인다.
장성 삼계면과 삼서면 일대.
태청산(太淸山:593.3m)에는 두개의 정상석이 서 있다.
태청산은 영광에서 북동쪽 고창으로 이어지는 23번 국도에서 어디서나 동쪽이나 남쪽으로 올려다 보이는 산이 태청산이다.
영광군 대마면과 장성군 삼서면 경계를 이루는 태청산은 영광에서 제일 높은 산이다.
그래서 이 산은 영광이나 장성뿐만 아니라 고창, 함평 등지에서도 보이는 유일한 산이다.
대마면 곡창지대의 젖줄이기도 한 태청산은 수량이 풍부하고 물 맛이 빼어나게 좋기 때문에 '대마 막걸리'라는 명주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그래서 영광에서는 대마 막걸리 맛을 보지 않고 다른 술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할 정도다.
태청산은 산세가 육산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상과 주능선 일부에는 마치 코끼리 몸에서 상아가 돋아나듯 바위지대가 돌출되어 있어 경관을 한층 더 아름답고 돋보이게 한다.
정상에 오르면 영광에서 제일 높은 산임을 상징하듯 광활한 조망이 전개된다.
태청산 정상에 있는 이정목
태청산에서 내려가면 마치에 내려선다.
마치(馬峙)는 장성군 삼서면 학성리에서 영광군 대마면 삼효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이곳부터 우측으로 영광군 다마면에서 묘랑면으로 면계(面界)가 바뀌는 곳이다.
마치재는 옛날에 영광군 대마면에서 장성군 삼서면으로 넘나들던 큰 고개였다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지금은 자복수림으로 뒤덥여 겨우 흔적만 남아있는 고개이다.
마치에서 작은 무명봉하나 넘고 내려서면 작은 마치재에 내려선다.
작은마치(小馬峙)재는 앞전에 마치와 고도가 똑 같다.
작은마치재에서 340봉을 가볍게 넘고 무명봉하나 더 넘으면
샘터정이란 현판이 걸린 사각정이 있는 곳에 내려서면 샘터 삼거리이고 우측으로 장암지맥이 분기한다.
장암지맥 분기점에는 우측으로 쉼터가 조성되여 있다.
여기 쉼터에서 배냥떨이를 하고 영산기맥에서 우측으로 200여미터 벗어나 있는 장암산을 둘러보고 되돌아 와서 기맥길을 이여간다.
잔암산 가는길
장암산(場岩山:482m)은 전남 영광군 묘량면과 장성군 삼서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정상석과 팔각정 삼각점이 있고 전설이 있는 커다란 바위가 있다.
장암산 정상에는 마당 장(場巖)자에 바우 암()자를 쓰는 산의 이름을 낳게 한 커다란 마당마위가 있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한다.
옆에서 보면 마치 물위를 떠 다니는 조각배를 닮은 이 마당바위에 신분을 초월한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전해온다.
오랜옛날 장암산 기슭에 고관집 아들과 가난한 농부의 딸이 애틋한 사랑에 빠지게 되엿다.
신분의 고하에 따라 집의 크기도 정해지던 시절이라 두 남녀 양가집안 ㅗㄹ래 장암산으로 도망치게 되였고 너럭바위에 앉아 사랑을 속삭이게 되였다.
두 손을 마주잡고 어떤 경우에도 헤여지지 말자고 다짐하며 껴안는 순간 희미한 안개사이로 지팡이를 짚은 흰수염의 산신령이 바위를 세 번 두두리며 나타나 두 남녀에게 3일동안 바위를 붙잡고 사랑을 속삭이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3일을 견디지 못하고 내려가게 되면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주문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
이 청춘남녀는 산싱령이 알려준 데로 바위에서 3일을 진달래로 연명하며 견뎌낸 후 부부의 연을 맺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두 연인이 사랑을 속삭인 바위는 처음에는 두세 명이 앉을 수 있는 크기였으나 산신령이 바위를 세번 쳐 십여명이 앉을 수 크기로 커져 마당바위가 되였다는 전설이다.
남녀가 함께 이 바위 위에 앉으면 사랑이 이루어 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지금도 젊은이들이 많이 찿는 명소가 되였다고 한다.
장암산에서 다음회차에 진행하게 될 칠봉산.가제봉.불갑산을 조망해본다.
영광들녁도 한번 내려다 보고
지나온 길 돌아본다.
장암산 정상에 있는 이정목
장암산을 둘러보고 앙암지맥 분기점으로 되돌아 와서 5분여 내려가니 숫가마터가 나온다.
숫가마터에 대한 유래가 적힌 안내문.
숫가마터 바로 아래에는 샘터가 있는데 음용수로는 부적합해 보인다.
사동고개로 내려가는 등로는 관리가 잘되여 있어서 어렵지안게 내려간다.
장암지맥분기점에서 20여분만에 오늘 날머리인 사동고개에 내려서며 산행을 종료한다.
사동고개(沙洞峙)는 영광군 묘령면 월암리 사동마을에서 장성군 삼서면 학성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덤바위재라고도 하는데 고개 아래에 있는 사동마을에서 따온 지명으로 대밭과 모래가 많아 사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사동마을은 200여년전 밀양 박.씨(朴.氏)에 이여 영월 양.씨(羊.氏)가 이주하면서 마을이 번창했다고 아여 대밭과 모래가 많아 사동(沙洞)이라 했다고 한다.
사동고개에 내려서면 좌측으로 상무대c.c가 있다.
이후로 영광 법성포로 이동하여 풍성한 집에서 하산식을 하고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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