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km이상 기맥.지맥/비슬지맥(완주)

비슬지맥 1구간(숲재)분기점=>사룡산=>대천고개)출정

부뜰이(윤종국) 2018. 3. 3. 20:22



비슬지맥

부뜰이와 천왕봉이 걸어온 비슬지맥

지맥길21.7km(접속1.2km)/8시간56분


산행일=2018년2월25일

산행지=비슬지맥 1구간(경주/영천/청도/경산)

산행경로=숲재=>비슬지맥분기봉(656)=>사룡산(685)=>541봉=>시루봉갈림길=>밤재=>517봉=>수암재=>부처바위=>무지터=>구룡산(675)=>구룡재=>582봉=>경산구룡산(십자가상)=>612봉=>정상재=>538봉=>588.4봉=>발백산(675)=>514봉=>494.6봉=>508.4봉=>477봉=>용림=>333봉=>351.4봉=>350봉=>비오재=>318.9봉=>274.2봉=>대천고개

거리 및 소요시간=21.7km(접속1.2km)/8시간56분.


3개월만에 함께 하게된 지맥팀에 이변이 일어났다.

이변이란?.

지맥팀 중 어느산악회든 소수인원으로 진행하다보니 고비용으로 어려움을 격는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출정하는 비슬지맥에는 어디서 어떻게 소문을 듣고 왔는지 평소보다 7~8명이나 많은 인원으로 출발한다.

그래바야 30명도 안되는 26명이지만 전국 어딜가더라도 이만한 인원이면 운영에는 큰 어려움이 없는 안정된 팀이라 할수 있다.

앞으로도 쭉~욱 이데로만 이여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비슬지맥(琵瑟枝脈)이란.

낙동정맥 사룡산(四龍山683)북쪽 400m지점에서 분기하여 서진하며 사룡산(四龍山683). 구룡산(674.8m). 발백산(髮白山674.5m). 대왕산(607m). 선의산(756.4m). 용각산(692.5m). 상원산(674.1m). 삼성산(668.4m)등.6~700m대의 산들을 들어 올린후 비슬산(琵瑟山1088.6m)에 이르러 북쪽으로 청룡지맥을 분기한후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조화봉(1057.7m). 수봉산(592.5m). 묘봉산(514m)을 지나 천왕산(619.2m)에 이르러 남쪽으로 열왕지맥을 분기한후 동남진하며 호암산(611.2m). 화악산(930m). 형제봉(556.7). 종남산(663.5m).팔봉산(391.4m). 붕어등(278.8m)을 지나서 밀양시 상남면 와산리에서 낙동강에 발을 담그며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146.5km가 되는 산줄기로 최고봉인 비슬산의 이름을 빌려와 비슬지맥이라 한다.


비슬지맥은 낙동정맥.청룡지맥과 함께 금호강의 남쪽 울타리를 분담하고 밀양강의 서쪽 울타리역활을 처음부터 끝까지 맡아와 밀양강을 낙동강에 합수시키고 동쪽 밀양강 건너로는 낙동정맥에서 온 영축지맥의 끝을 바라보고 남쪽 낙동강 건너로는 낙남정맥에서 온 무척지맥의 끝을 바라보며 그 끝을 맺는다.


지나가는 산들은 사룡산(683m).구룡산(674.8m).발백산(674.5m).대왕산(607m).선의산(756.4m). 용각산(692.5m).상원산(674.1m).봉화산(473.5).삼성산(688.4m).우미산(747.3m).비슬산(琵瑟山. 1083.6m).조화봉(1057.7m).수봉산(592.5m).묘봉산(514m).천왕산(619.2m).배바위산(607.1m).호암산(611.2m).화악산(930).형제봉(556.7m).종남산(663.5m).팔봉산(391.4m).붕어등(278.8)을 지난다.


지나는 행정구역은 사룡산에서 건천읍.영천시.청도군경계에서 시작하여 구룡산을 지나며 건천읍과 영천시와는 작별하고 경산시와 청도군경계를 한동안 따르다가 상원산근방에서 대구광역시와 경북도경계를 만나면서 도경계를 따라 비슬산.조화봉.수봉산.천왕봉.화악산까지 이여진다.

화악산을 지나면 그동안 처음부터 계속돼온 청도군계를 벗어나 밀양땅으로 들어선다.

비슬지맥은 전체거리가 146.5km청도군경계가 109km정도 이여진다.

비슬지맥에서 분기하는 지맥은 비슬산에서 북진하는 청룡지맥(약37km)과 천왕산에서 남진하는 열왕지맥(30.4km)이 있다.

비슬지맥 진행 계획표 

산행날자

구간

산행경로

거리(km)

예상소요시간

2018.02.25

1구간

(숲재)사룡산=>발백산=>대천고개

21km+1.2

10시간00분

2018.03.11

2구간

대천고개=>선의산=>남성현재

25.1km

11시간30분

2018.03.25

3구간

남성현재=>삼성산=>헐티재

26.7km

12시간00분

2018.04.08

4구간

헐티재=>비슬산=>비티재

17.5km

8시간30분

2018.04.22

5구간

비티재=>수복산=>밤티재

18.8km

8시간30분

2018.05.13

6구간

밤티재=>용봉고개=>날뒤고개

19.3km

9시간00분

2018.05.27

7구간

날뒤고개=>외산리.밀양강/낙동강합수점

17.8km

8시간10분


7구간

동아지도gps구간검색

146.8km+1.2km

65시간33분







생식마을이란 어떤 곳인가.

50여년 전에 임야 8만여평을 공동구매하여 속세를 벗어난 산속의 30여가구 100여명이 고기와 불에 닿은 음식은 입에도 안대며 살아있는 것만 먹는다.

불에 익히거나 구운 것은 절대로 먹지 않는다.

고기와 생선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산에서 나는 이름 모를 야생초와 나무껍질 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야체와 쌀 등을 날것으로 그냥 먹는다.

생식마을이 생겨난 것은 60년대 초반 충북 단양군 소백산 곤로봉 부근에서 살던 정평화씨(작고) 부부가 당국의 화전민 철거정책에 밀려나 이곳에 정착하면서 부터다.

친인척들과 공동구매한 8만여평의 임야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식생활을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뜻을 함께 하겠다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지금은 30여가구에 100여명이 살고 있다.

이곳 외에도 생식 식구들은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 경북 영덕.충북 제천.대구등 전국의 7개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들이 생식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은 바르게 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인데. 자연에서 태여난 인간이 자연 그대로 살아있는 식물을 먹어주는 것이 바로 바르게 사는 방법이라는 것.

음식을 불에 익혀 먹다보면 이것저것 맛있는 음식이 먹고싶어 진다.

식욕이 늘면 다른 욕심도 생긴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나 인류가 전쟁을 시작한 것도 모두 먹는 것에서 비릇되였다.

생식마을 사람들은 자유롭다.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렸기 때문이다.

경쟁과 시기 질투는 아랫마을 속세의 이야기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산나물과 맑은 공기가 있는 한 고통받을 일도 없다.

그들은 하루 두차레 예배를 드린다.

새벽 3시30분과 저녁 7시가 예배시간.그렇다고 특정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마다 종교는 자유다.

천주교 불교 기독교는 물론 선을 연구하는 사람도 있다.



우라리는 낙동정맥을 진행하면서 지난던 곳 이지만 기역이 가물가물 하여 당시에 기록을 찿아보니 2014년2월9일 이다.

그날은 경주지방에 수십년만에 내린 폭설로 무슨 체육관이 무너지고 많은 인명피해가 났던 그날이고 4년이란 세월이 흘렷다.

숲재(嶺)는 경북 경주시 서면 천촌리와 청도군 산내면 우라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산행지도에는 숲재로 되여 있으나 고개가 아화 방향으로 급하게 숙이고 있다고 하여 숙재(淑嶺)라고도 한다.

아화쪽에 마을 이름도 숙골이고 저수지가 하나 있는데 저수지 이름도 숙골지라고 한다.

그리고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버스정류장에는 시루기미라고 적혀있는데 시루기미는 생식마을 뜻 하고 우라 생식마을 지형이 시루같이 생겼다는 의미에서 명명되였다.

우라리는 마을 모양이 소를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 이라고 한다.

오늘은 비슬지맥이란 맥길을 가겠노라고 4년만에 다시 이곳에 왔다.

모쪼록 밀양강이 낙동강에 합수되는 밀양시 상남면 외산리 외산교까까지 무사완주를 마음에 다짐하며 새로운 출발을 한다.




우라2리마을에서 분기점까지는 1.2km.

낙동정맥 마루금을 우측에 두고 마을길로 올라간다.



식물분석장 안으로 들어간다.

문이 닫혀있으면 맥길로 진행해야 한다.





들머리에서 30분정도 마을 길을 걸으면 영문(靈門)에 도착하고 좌측으로 올라서면서 낙동정맥 마루금에 복귀하고 본격적으로 산길이 이여진다.


용문(靈門)을 통과하고 10분만에 분기점에 닫는다.

여기까지는 좌측은 청도군 운문면이고 우측은 경주시 서면이던 것이 좌측은 여전히 청도군이지만 우측은 경주시에서 영천시 북안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분기점에서10분만에 0.6km지점인 사룡산에 올라선다.

사룡산은 오늘 구간에 초고봉이고 첯 산이다.

사룡산에는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사룡산은 예전에 이곳에서 용 네마리가 승천하였다고 하여 사룡산이라 부르게 되였으며 병자호란때는 왜군이 이곳을 넘지 못했다고 하여 전방산이라고도 부른다.




사룡산에서 좌측으로 살짝내렸다 올라서면 541봉에 닫는다.







541봉에서 25분 내려서면 오재(밤재)에 내려선다.

이곳 오재(밤재)는 청도군 운문면 마일리와 영천시 북안면 상리를 잇는 921번 지방도가 넘는 고개이며 영천쪽으로 애국지사 이형표의 추모비와 쉼터가 있다.


오재(밤재)에서 들머리는 청도쪽으로 30미터 지점에 이정목이 서있다



사룡산쪽에서 왔으니 구룡산 방향으로 오른다.


오재에서 약간의 오르내림과 몇번의 갈림길을 지나고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에 내려서면 여기 위치가 수암재이다.

수암재(水岩峙)는 청도군 운문면 마일리 아래 수암마을과 영천시 북안면 상리 경계에 있는 삼거리가 있는 고개이다.

지명의 유래는 물과 나무와 바위가 많아서 수암(水岩) 또는 수암(樹岩)으로 쓰여 왔다고 한다.


수암재에서 구룡산방향으로 100m정도 올라가면


직진으로 시멘트길은 수암사 가는 길이고 지맥길은 우측 숲속 구룡산 방향으로 진행된다


수암사는 신라 때는 다섯개의 암자를 거느린 큰 사찰인 수암사(水巖寺)라는 절이 있었으나 점차절이 쇠락함에 따라 민가가 들어서면서 절은 페사되였는데 15년전 혜국스님께서 토굴을 짓고 수행을 했으며 스님의 상좌였던 성천스님과 병천스님께서 수암사 복원 불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수암재에서 구룡산 오름길에 갑자기 매퀘한 연기 냄새가 나서 주위를 살펴보니 산불의 흔적이 있고 이틀전 9시뉴스에 영천지방에 산불이 났더더니 여기였나 보다.

산불 흔적을 지나고 바위에 뿌리을 내린 소나무를 니난다






소나무가 박힌 바위을 지나면 부처바위가 있다.



이곳 부처바위는 옛부터 영험있는 미륵골 돌부처라 하여 소원을 비는 이가 많았으며 지금도 부처바위를 찿아 소원을 비는 이가 많다고 한다.

현재도 누가 기도를 드렸는지 술잔인지 정한수 잔인지가 놓여있다.


부처바위를 지나면 이내 구룡산 정상에 올라선다.

구룡산 정상에는 지나온 쪽으로 전망대가 있지만 일출전이라 아무것도 볼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다.

구룡산은 예부터 신령스러운 산으로 알려져 있다.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보면 열 마리의 용이 구룡산 무지터에서 승천하려다 아홉 마리만 승천하고 막내인 한 마리는 떨어져 구룡산 일대에서 방황하였는데 그 곳이 바로 경산과 청도의 경계에 위치한 반룡산이라 한다.

구룡산 아래에는 무지터로 불리는 샘터가 있다.

영천 북안천의 발원지이자 용의 전설이 서린 구룡산 중에서 용의 눈 부분에 해당된다고 한다.

가뭄에도 샘이 마르지 않아 옛날부터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영천 사람들은 무지터를 신성시하고 옛날부터 근처에 무덤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구룡산(九龍山 675m) 정상은 사룡산과 비슷하게 영천시 북안면과 경산시 용성면 그리고 청도군 운문면에 접해있는 3군/시 봉이다.

다만 경주시에서 경산시로 바뀌었을 뿐이다.

정상에는 재영북안 향우회(在永北安 鄕友會)에서 2005년7월9일 오석으로 세운 정상석과 맞은편에는 정상목이 세워져있고, 삼각점이 설치되어있다.








구룡산의 삼각점


구룡산에서 인증을 마치고 돌아서서 우측 발백산 방향으로 내려간다.


구룡산에서 8분여 내려가면 구룡고개에 내려선다.


구룡고개(九龍峙)는 영천시 대창면 용호리와 청도군 운문면 정상리를 가르는 고개이다.


구룡고개에서 이른 아침식사 시간을 갖는다.

숲재에서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 8분이 지났고 약6.5km지점이다.

대부분 산악회가 그렇듯 아침식사 전에는 참석자 전원이 함께 진행한다.

어두운 밤에 혹시라도 낙오되여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식사시간은 아침7시에서 8시쯤에 한다

식사가 끝나면 자유롭게 자유산행이 시작된다.

그래서 이출전에는 진행속도가 느릴 수 밖에 없다


식사를 마치고 발백산으로 향한다.

여기서 정상리 쪽으로 임도따라 가면 발백산을 넘어서 정상재에서 만나는 위회길이기도 하다.

몇몇은 우회길로 진행한다


식사후 35분쯤 오르니 구룡산이란 정상석이 있다.

식전에 지나온 구룡산은 영천시에서 세운 정상석이고 여기는 경산시에서 세운 정상석이다.

여기 경산 구룡산은 경산시 용성면 매남리와 청도군 움문면 정상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경산시에서 주장하는 구룡산인데. 표지석에 새겨진 내용을 보면 모든게 실제와는 틀리다는 걸 알수 있다. 








경산 구룡산에 있는 이정목 영천구룡산이 1km이고 발백산이 3.5km라고 안내한다.


경산 구룡산이란 곳에서 조금 내려가다 보면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십자가에 성경에 한구절이 새겨져 있고.


몇 발짝 아래에 우측으로 조망이 트이는 곳에는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상이 세워져 있다.

구룡산은 조선조 후반 참혹했던 천주교 탄압시기인 1815년 을해박해 때에 청송 노래산과 진보의 머루산의 교우촌이 파괴됨으로 인해 영천과 경주 지방으로 피난하여 있던 신자들이 더 깊은 산속을 찿아 이곳 구룡산에 모여 새로운 교우촌을 이루어 자급자족의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였으며 신중하고 은밀하게 인근 지역으로 복음을 전파하였다.

구룡산은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하여 모여든 곳으로 경북 남부 지역의 주요 피난처였으며 인근의 대구.영천.경주.밀양.등지에 산재해 있던 신자들간에 교류가 빈번하였고 경상남북도를 잇는 주요 통로였다.

천주교 탄압시기에 많은 신자들이 피신해 살던 곳이로 이지역에서는 다른 신앙촌들과는 달리 이곳에선 희생자를 한명도 내지 않았다.그리고 이 산속 마을에 170여년 전 벌써 공소가 설치됐다.

또 지금까지 수많은 성직자를 배출했다.

가톨릭에 특별한 마을인 셈이다.

한편 구룡공소는 교난을 피하여 온 사람들로 형성된 교우촌니지만 신부가 주재하여 사목하였으므로 성당으로 건립된 곳이다.

1933년9월13일에 성전의 준공을 이루였다.

1993년 이문희 대주교가 부활 미사 집전 후 성지로의 개발을 지시하여 1995년 공소를 복원하고 피정의 집을 마련하였다.

예수/십자가가 바라보는 앞쪽이 구롱공소가 있는 마을이지만 짙은 안개로 아무것도 볼 수는 없었다.

이 마을은 본래 비석리 였으나 구룡 이라는 이름이 유명세를 타면서 청도구룡 이라고 부르게 되였고 세월이 지나면서 본명은 잊혀지고 지금은 구룡으로 굳어졌다.


대리석 십자가는 일정한 간격으로 여러개가 세워져 있고 새겨진 문구는 제각각 다르다.


그렇게 30분정도 내려가면 시멘트 임도길레 내려서는데 이길은 아침을 먹은 구룡고개에서 좌측으로 돌아온 길이다.

이길로 진행한 팀은 벌써 이곳을 통과한 흔적이 보인다.


우리는 구룡산 쪽에서 왔고.

용성 남매리쪽이 구룡고개에서 여기까지 임도로 돌아오는 길.

발백산 쪽으로 진행한다.


앞쪽에 정상재가 보이고 짙은 안개로 히미하긴 하지만 발백산이 보인다.

정상재는 경산시 용성면 매남리와 청도군 운문면 정상리를 잇는 고개로 8번군도 이다.

이쯤에서 식사 전에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멈춘다.








정상재에서 50분만에 발백산에 올라선다.

발백산(髮白山.674.5m)은 옛날 이 산속에 머리가 하얀 신선이 있었다고 하여 터럭 발(髮)과 힌 백(白)자를 써서 발백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발백산에도 1년전에 앞서간 용아님(우리산악회)의 흔적이 보인다.


발백산 정상에 있는 이정목에는 반용산이란 표시가 있는데. 반룡산은 지맥길에서 좌측으로 벗어나 있는 산이고 앞에서도 언급 했듯이 구룡산 무지터에서 열마리의 용이 승천하려다 아홉마리만 승천하고 막내인 한마리는 떨어져 구룡산 일대에서 방황하였는데 그 곳이 바로 경산과 청도의 경계에 위치한 반룡산이라 한다.

무지터에서 용 열마리가 승천하다가 낙오된 한마리가 반룡산 근처에서 헤메다가 용성에서 죽었다는 전설이 있어서 그런지 이곳 주변에는 용(龍)자 들어가는 지명이 유난히 많다.


이상한 이정목이 자주보게 된다.

이정표란 현위치를 표시해야 하고 어디까지가 몇km라고 해야지 그냥 방향표시만 있고 다음 이정표까지가 몇km라고 하니 별 도움이 안되는 이정표이다.

여기위치가 3군/시 분기봉 이다.

분기점에서 부터 우측으로 지금까지 영천시이던 것이 여기서 부터는 경산시로 넘어가고 좌측은 여전히 청도군을 유지한다.

여기서 지맥길은 좌측으로 급격하게 꺽어저 내려간다.


3 군.시 분기봉에서 내려가면 지명을 알 수 없는 고개이고 비포장 임도길이다.

우측에서 올라 온 임도길은 지그재그로 지맥마루금을 이리저리 넘으며 내려간다.




지맥길은 어수선 하지만 직진으로 내려간다.


네번째로 내려서면 마루금으로 이여지고


우측으로 돌아가는 지점에서 직진 산길로 올라간다.


이상하게 생긴 이정목은 계속 나온다.




494.6봉에 올라서고




494.6봉에 삼각점.

그런데 영천4100?.

삼각점에 네자리 숫자가 있다니 이거 또한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다시 임도길에 내려서면  여기가 지도상에 임장재.

임장재는 경산시 용성면 부일리와 송림리 사이에 있는 고개로 우측에는 동아임장이라는 생산임지가 있고 개인 땅이니 출입하지 말라는 경고성 안내문이 있고 좌측으로는 산촌생태 체험관 1.5km라는 이정목이 있다.


임장재에서 한봉우리 올라서면 삼각점이 있는 508.4봉에 올라선다.


508.4봉의 삼각점


두어개의 무명봉을 넘고 묘지둘레에 울타리를 쳐놓은 묘지를 지나 내려서면 이름모를 임도길에 내려서고 마루금을 좌측에 두고 임도길을 잠시 걷는다.


우측에서 내려오는 임도에 합류하고 여기위치가 용림고개이지 싶다.

계속 임도길을 걷는다.

사실 여기서 부터는 지맥마루금에는 길이 없어서 벗어난 위치이다. 




용림마을이 보이고 우측으로 도로따라 올라가서 마루금에 합류한다.


앞쪽에 페가가 보이면 저기가 마루금인데.



좌측으로 임도길이 보이고 임도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임도길로 올라간다.


임도길을 5분동안 걷고 마루금에 북귀하고 오래전에 페업한 목장 초지로 올라간다.


8분만에 목장초지를 벗어나면 널찍한 임도길이 나온다.


걷기좋은 임도길을 7분정도 걸으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351.4봉에 올라선다.

산불감시원에게 물으니 조금전에 여섯명이 지나 갔다고 한다.




351.4봉에 삼각점


산불감시초소에서 내려가면 비오재에 내려선다.


비오재에서 들머리는 도로을 건너서 직진으로 포도밭 가운데로 올라가야 하나 여기서도 편안한 임도길을 뿌리치지 못하고 임도길을 선택한다.


비오(飛烏)재는 경상북도 경산시의 서쪽에 위치한 발백산 자락의 산촌인 용성면 부제리와 대종리를 잇는 4번도로가 지나는 고개이고 비리재라고도 한다.

옛날에 이 고개부근 마을에 금술좋은 소금장수 부부가 살았다.

어느 날 장삿길을 떠난 남편이 돌아오는 길에 변을 당하여 죽엇다.

이 소식을 모르는 부인은 식음을 전페하고 고갯마루에서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가 숨을 거두엇다.

죽은 부인의 한이 까마귀로 변하여 이 고갯길을 맴돌며 남편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그녀의 한이 까마귀가 되어 날아 갔다는데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마루금을 살짝 벗어난 임도길로 올라간다.




비오재에서 5분만에 마루금에 복귀한다.


오늘 구간에 마지막 봉우리 274.8봉.

지형도에는 삼각점이 표기되여 있지만  삼각점은 찿을 수 없었다.




대천고개에 내려서기전 우측으로 곡란리 마을이 보인다.




우측으로 곡란리 마을을 바라보며 직진으로 내려가면 오늘 산행종착지인 대천고개에 내려선다.


대천고개는 경산시 용성면 곡란리에서 청도군 금천면 소천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919번 지방도가 넘는 고갯마루이다.

산꾼들은 이 고개를 대천고개라 부르지만 현지인들은 곱돌내재 또는 곡들내재로 부른다.

곱돌이란 말은 도로나 물길이 굽어 돌기를 곱으로 한다는 의미이다.

고개의 양편에 봉우리가 있어서 고갯길은 두개의 봉우리를 피하기 위해 먼저 반원을 그리면서 하나의 봉우리를 돌아간 후 또 하나의 봉우리를 돌아가기위해 다시 반대로 반원을 돌며 돌아가는 곱돌이를 하기 때문에 곱돌재라고 볼리게 되였다고 한다.

고개 아래에는 곱돌지라는 작은 저수지가 있다.

산꾼들이 부르는 대천고개는 청도군 운문면 대천리가 있어서 대천고개라 부르게 된거 같다.

 예전에 대천리는 운문면이 중심지였는데.

대천리에 운문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되여 현재의 대천리는 수몰민들의 이주 단지로 운문면 대천리와 방지리로 갈라졌다.

운문산과 가지산 문복산에서 내려온 물들이 무척천을 이루고 마일리와 정상리에서 내려온 물이 함쳐져 봉화천과 경주시 산내면 지역에서 내려온 물이 또 다시 큰내를 이룬다고 해서 대천(大川)이라 부른다고 한다. 




버스정류장의 지명은 곡란리(谷蘭里)라고 되여 있다.


대천고개에는 수준점이 있고


마을 표석이 있다.


이곳이 역사상 가장 뛰여난 스님이였던 원효스님과 그의 아들 설충.그리고 삼국유사를 저술한 일연선사가 이곳 출신이라 한다.


이후로 한시간쯤 후에 마지막 후미 도착하고 경산 자인으로 이동하여 목욕탕에서 사워를 하고 자인 전통시장에 있는 복삼식당에서 김치찌게(메뉴판에는 돼지찌게)로 하산식을 하고 올라온다.




경산시 자인면 자인로에 자인전통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