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간1정간13정맥
부뜰이와 천왕봉이 걸어온 대간과 정맥 길(검정색)
우리가 걸어온 낙남정맥 길.정맥길20.7km.(알바약1km)접속거리 제외.누적시간8시간45분
산행일=2015년7월12일
산행지=낙남정맥 2구간
산행경로=고운동재=>산죽군락지=>길마재=>칠중대고지=>양이터재=>방화고지=>돌고지재=>
백두대간우듬지분기점=>산불감시초소(467)=>천왕봉=>백토재
거리 및 소요시간=21.7km/8시간45분
낙남정맥 첯 출정일을 몇일 앞두고 일기예보를 관찰하는건 당연한 일이다.
때가 때인만큼(장마철) 비가 오는건 당연 하겠지만.설상 가상으로 태풍(찬흠)까지 온다니 긴장이 안될 수가 없다.
그동안 우중 산행을 안해본건 아니지만 긴장되는 건 바람이 문제다.
겨울 산행에 눈보라에 강풍도 어렵지만 여름철 폭우에 태풍을 동반한 강풍은 그 어느 바람보다도 무서웠다.
혼자 생각하기에 기상청 예보 대로라면 지리산은 국립공원으로 전등산로가 통제될 것이고 더구나 우리가 진행할 들머리는 거림골로. 계곡 산행을 해야 하니 위험 천만이 아닐 수 없다.
정맥을 책임지고 있는 팀장에게 어떤 대안이 있는지 궁금하여 문잘 날려 보지만 대답이 없다.
시간은 흘러 배냥 싸들고 집을 나서는데. 아이구야 마당에 나오니 장대비가 쏫아진다.
망설임 없이 지하주차장으로 뛰여 들어가 차를 빼서 나오는데. 외지차가 들어 왔다가 나가면서 출구을 못 찿구 얼쩡 거린다.
부천에서 아홉시 오십분에 만나기로한 사또님을 열시에 만나서 태우고 출발하는데. 오늘따라 고속도로도 느릿느릿 서행이고 팔팔도로까지 시원스레 빠지질 않는다.
양재에서 열시 사십오분에 출발하니 사십분 까지는 가야 하는데. 이거야 원. 팀장에게 몇분 늦겠노라고 전활하고 양재구청 주차장으로 들어 가면서 보니 우리가 타고갈 버스는 아직 도착을 안한거 같다.
서둘러 주차하구 내려가니 방금 버스가 도착한거 같다.
그렇게 출발한 버스에서 잠을 자다보니 버스가 흔들림에 잠을 깨보니 차는 어느새 고속도로을 빠져나와 거림쪽으로 올라가는 중이다.
여전히 장대비는 쏫아지고 들머리인 거림에 도착하여 주위를 살펴보니 거림골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엄청나다.
잠시후 팀장이 한마디 한다.
오늘 낙남정맥 첯 구간은 안되겠다.
둘째 구간으로 산행을 변경 한다는...나두 속으로는 그 생각을 했다.
이동중에 1047번 국도가 통과하는 터널안에서 차를 멈추고 우중산행 복장을 갖추고 다시
출발한다.
오늘 날머리가 오늘 들머리로 둔갑했다.
여전히 장대비는 쏫아지고 다행히 태풍(찬홈)의 직접적인 영향은 안 받는지 천만 다행으로
바람은 잠잠하다.
폭우와 어둠속에 단체사진두 못 찍구 산행에 들어 가는데.숲속으로 들자마자 사람 키 보다두 큰 산죽지대가 시작된다.
이렇게 우거진 산죽군락지는 처음 보았다.
허리를 숙이고 보면 분명 길이 있는데.허리를 펴면 아무것두 보이는게 없다.
사람하나 간신히 지날 수 있는 길. 좌우로는 병아리 한마리도 빠져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빼곡한
산죽밭엔 그 어떤 짐승도 살수 없을거 같다.
잠시 산죽군락지를 벗어 난듯하여 바로앞에서 가던 팀장이 gps을 꺼내더니 저장설정을 안했다구 하여 내껄 꺼내보니 이런 정맥길에서 벗어났다.
족히 오백미터는 될꺼 같다.
알바다.내 뒤로도 다섯분이 더 있어서 총 일곱명 이다.
후미는 어찌되였는가 연락을 하니 후미는 제데로 가고 있다.
졸지에 선두가 후미가 되였다.
서둘러 백을하여 확인하니 정맥길은 우측으로 급회전해야 하는데.그냥 지나쳐 버렸다.
여전히 울창한 산죽길은 계속되고 갑자기 그렇게 한참을 진행하니 앞이 트이면서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에 떨어진다.
여기가 산행지도에 등재된 길마재 이다.
길마재란 이름은 고개의 지형이 길마와 같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으로 한자로는 안현(鞍峴)이다.
길마재는 질마재.질매재란 이름으로 전국에 분포하여 있으며. 짐을 싫을려고 소나 말의 등에 얹는 안장인 길마(질마)를 뒤집어 놓은듯 하여 길마재라 하였다 한다.
길마재에서 산죽밭을 지나느라 진을 뺀 체력을 보충할겸 아침 식사 시간을 갖는다.
길마재 이후로는 산죽길은 사라졌고 잡목과 잡풀이 성가시긴 하지만 산죽밭에서 호되게 당해서 그런지 만만치 않은 잡목이지만 그래도 편하게만 느껴진다.
길마재에서 한봉우리 치고 오르니 산불 감시초소가 있어서 한바퀴 돌면서 살펴보니 안쪽에는 평상까지 만들어 놓았고 알록달록한 담로도 깔려 있었다.
쥐위에는 별다른 표식도 없고 특징도 없다.
짙은 안개속이라 조망은 더욱 안되고 장대비에 사진도 한장 못 찍고 지나친다.
조금더 진행하니 칠중대고지(562.2)란 준희 선생님의 표시가 있다.
오늘 산행에 유일한 표시기 이다.
칠중대고지는 빨치산 토벌당시 칠중대가 주둔 하였다 하여 산 이름을 칠중대라 하였다 한다.
여전한 폭우에 여섯장을 찍어서 그중 한장인데 괜찮아 보인다.
칠중대고지에서 완만한 능선길을 걷다가 내려서니 간이 화장실이 있고 간이 의자가 놓여있는
시멘트 임도길에 내려서는데.하동군 위태리에서 청암면에 하동호를 연결하는 지리산 둘레길인 양이터재 이다.
양이터재는 동학혁명 때.양씨와 이씨가 터전을 잡고 살았다고 해서 양.이터재라 했다고 한다.
오늘 두번째로 보는 삼각점.
양이터재를 지나면서 등로는 더욱 편해졌고 시간은 대락 열한시 반은 넘은거 같다.
비는 여전히 장대같이 쏯아지고.작은 밭둑을 지나고 왕복 2차선 도로에 내려서서 조금
내려가니 삼거리이고 정맥길은 도로를 건너 시멘트 임도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우측 숲속으로 들어간다.
이후로도 숲길과 임도를 여러번 왔다갔다 한다.
여기가 돌고지재 이다.
돌고지재는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구불구불 돌고 돌아야 비로서 넘을 수 이는
고개라 하여 돌고지재란 이름을 얻엇다고 한다.
지금은 곳곳에 터널과 도로가 잘 나있어서 쉽게 넘을수 있지만 옛날에는 겹겹으로 싸인
산들을 볼때 결코 쉽게 넘을수 없음을 알수 있다.
정맥길은 좌측에 보이는 임도를 따라 오르게 된다.
오늘 날머리인 백토재가 5.8km라는 이정목을 지난다.
백두대간 우듬지란?
산자분수령에는 백두대간이 우리나라의 모든 물줄기를 동서로 나눈다고 했다.
백두대간의 시작점인 백두산에서는 압록강과 두만강이 동과 서로 갈라지나 그 끝점인 지리산에 와서는 동서로 가르는 물줄기가 없이 엉거주춤하게 되였다.
나라 전체의 윤곽과 체계적인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두 발로 직접 걸어올라 보면서 나라 전체의 물줄기와 산줄기를 도표로 만듬에 있어서 미세한 부분까지 언급하며 기록 할 수는 없었겠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나라 등뼈에 해당하는 백두대간의 마지막 지점이 어디냐를 놓고 많은 이견들이 지적 지적되기 시작 하였다.
산경표에서 마감한 지리산 이후의 산길에 관한 의견들인 것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하거나 또는 마무리하던 백두대간 산행을 언제부턴가 웅석봉에서 백운산으로 또는 진양호까지 연장을 하며 진행하기도 하였지만 그 경우에도 물길을 가르는 기능이
없어 지금은 그 의미가 많이 축소되였다.
지리산 천왕봉을 지나 가장길게 연장하여 진양호까지 이여간다 하더라도 마루금 양쪽의 물은 모두 남강물(낙동강)로서 원래 산줄기를 정했던 물길이 동서로 가르는 기능은 없기 때문에 산줄기가 더 이상 이여지지 못하는 지점까지 가거나 왔다는 의미는 있으나 물길을 가르는 분수의 역할은 영신봉을 넘으면서 이미 끝이 났기 때문이다.
산경표에서는 백두대간을 영신봉에서 계속 남으로 이여 노량 앞바다에서 마감을 했는데.이럴경우 낙동강과 섬진강을 가르면서 나라의 물줄기를 온전히 동과 서로 양분하는 산줄기가 가능 하지만 이럴경우 산경표의 낙남정맥과 일부 겹치게 되여 산경표의 일부 수정이 불가피하게 되는데.우듬지와 낙남정맥이 분기하는 옥산을 낙남정맥의 시작점으로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다른 맥들처럼 이름짓기가 용이하지가 않는데 먼저 백두대간으로 볼것인가.아니면 별도의 지맥으로 볼 것인가. 어느 것으로든 확정 짓기가 용이 하지가 않다.
신산경표의 백두대간이나 백두대간 꼬리 또는 신백두대간이라 불려지기도 하는데.그 중에서 순수 우리말인 우듬지를 택해 백두대간 우듬지로 정하자는 의견이 우세하다.
우듬지란 순수 우리말로서 나무 꼭대기의 가지 웃 부분을 뜻한다.
위 내용과 관련하여 신산경표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신백두대간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주위에 산꾼들에게 신백두대간이란 말은 몇번 들은적이 있는데.그 시작점이 여기라는 것도 오늘 처음으로 알았고. 우듬지란 단어도 오늘 처음으로 알았다.
돌고지재에서 천왕산 오름길이 약간 힘들긴 했지만 그런데로 오를만 했고.
천왕산에 오르니 이제야 태풍(찬홈)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지 짙은 안개속에 강풍이
몰아 치는데. 몸을 가눌 수가 없을 정도다.
선답자들에 의하면 천왕산에서의 조망은 지나온 지리산 뿐만 아니라 앞으로 가야할 정맥
길이 환상 이라고 했다.
전체적으로 사진이 몇장 되지도 않지만 내사진은 단 한장도 없다.
날씨가 좋으면 옥산도 한번 둘러보구 싶지만 오늘은 아니다.
옥산에서도 조망은 일품이라구 한다.
백토재는 (고향옥종故鄕玉宗) 하동군 북천면과 옥종면의 경계지점으로 1005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이다. 옛날에는 도자기의 원료인 백토(白土)가 많이 나는 곳이라 백토재라
불리웠다고 한다.백토란 글자 그대로 힌 흙이란 뜻이다.
지금도 백토재 주변에는 많은 광산들이 산재해 있고.백토는 도자기뿐만 아니라.
보온재.내화벽돌.농약.고무신등.다양한 물품을 많든다고 한다.
백토(白土)는 의약품으로도 쓰이는데.맛은 쓰고 맵다고 한다.
동의보감에서는 설사와 적리를 멈추게 한다라고 하였고.
오래 먹으면 오장이 상하고 몸이 마른다고 하였다.
오늘 산행은 전체적으로 오르내림도 심하지 않았는데.
새벽녁에 5km가 넘는 산죽군락지를 지나느라 된 고생을 해서 그런지 후반에는 잡목과 잡풀
지대를 어렵지 않게 지났다.
폭우가 예상된 터라.
카메라를 가져가면 물폭탄에 아작이 날것이 뻔해서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던 디카을 일년이
넘어서 꺼내보니 작동을 안한다.
급히 수리점에 달려가서 수리를 하고 밧데리가 수명이 다되였다구 하여.
일반용 중에서 고용량을 구매 하면서 물으니 50장 정도는 찍을 수 있다고 해서 4개를사서
두개를 비상용으로 가져간다.
여기까지 찍고나니 작동을 멈춘다.계속되는 폭우에 밧데리를 교환하기도 그렇구 해서 위에
사진을 마지막으로 산행과 함께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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