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km이상지맥/백운지맥(완주)

백운지맥 3구간(서낭당고개=>미륵산=>창말.섬강/남한강 합수점)

부뜰이(윤종국) 2020. 5. 18. 22:57

백운지맥

부뜰이와 천왕봉이 걸어온 백운지맥

지맥길 53.7(접속5.8/이탈)km/20시간35분

 

산헹일=2020년5월17일

산행지=백운지맥 3구간(원주시)

산행경로=서낭당고개=>345.5봉=>미륵산(彌勒山:689.9m)=>봉림산 갈림길=>서지재=>481.1봉=>쌀개봉(495.8m)=>467.2봉=>비두냄이고개=>409.7봉=>437.4봉=>상봉산(443.4m)=>만디고개=>369.2봉=>399.1봉=>418.6봉=>부문재=>260.1봉=>332봉=>긴경산(351m)=>307.1봉=>수영봉(283m)=>소리개재=>매골고개=>242.8봉=>창말=>흥원창=>섬강/남한강 합수점

거리 및 소요시간=22.1km/12시간29분

 

올해는 봄철 가뭄이 없어서 좋기는 하지만 우찌된 것이 주말만되면 비가온다.

덕분에 올해는 지독한 송화가루을 안 뒤집어 써서 좋은점도 있기는 하다.

이번주말에도 예외없이 비소식이 있는데 막상 주말이되니 일요일은 구름많고 비는 안올거라 하여 백운지맥을 마무리하기로 하고 토욜저녁에 인천을 출발해서 산행14km지점인 부문재에 들러서 점심으로 먹을 밥과 물한병 그리고 냉동한 캔맥주 한개을 풀숲에 숨겨두고 들머리인 서낭당고개 향한다.

 

 

 

백운지맥에 새롭게 자리잡을 산패는 9장

 

들머리인 서낭당 고개에는 주차를할만한 곳이 없어서 귀래쪽으로 버스 한정거장 내려가니 좌측으로 운동시설이 있어서 뭔가 살펴보니 약수터이다.

한켠에는 화장실도 있고 승용차 대여섯대 정도는 주차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새벽 4시전후로 산행을 시작할 생각으로 3시30분에 알람을 마추고 쉬는 시간을 갖는다.

알람이 울리기전에 몇번 잠이 깨고 막상 알람소리가 나니 더 자구싶고 일어나기가 싫다.

어쩔 수 없이 정신을 차리고 집에서 준비해간 된장국을 데워서 밥을 한술씩 말아먹고 산행을 시작한다.

 

물맛도 좋고 아주시원한 약수이다

 

버스정류장 명칭도 약수터이네

 

서낭당고개에는 구사 버스정류장이 있고

 

맞은 편에는 서낭당고개란 표지석이 있다

 

초입은 임도로 올라가니 밭이 나오고

 

이내 우측으로 붙어서 마루금에 닫는다

 

서낭당고개에서 11분만에 삼각점이 있는 345.5봉에 닫는다

 

삼각점은 글씨가 있는 것도 같은데 알아볼 수가 없다

 

미륵산 정상이 가까워 올수록 점점 가팔라지고 안개가 잔뜩 끼여서 뭐가 보이는 것도 없는데 지난주에도 그러더니 오늘도 속이 미식거리고 불편해서 속을 비워 볼렸더니 가스만 뿡뿡나오고.... 천왕봉이에게 사탕하나 달랫더니 오늘은 안가져 왔다고하여 막걸리를 한잔 마시니 조금 있다가 속이 편안해진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10분이 걸려서 미륵산에 올라서니 안개는 여전하지만 날은 이미 밝았다.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에 있는 미륵산(彌勒山:689.9m)은 원주시에서 남쪽으로 22㎞ 지점에 있는데 황산사 뒤쪽에 솟은 미륵봉 바위에 마애석불이 새겨져 있어 미륵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이 쇠약해진 신라를 고려에 이양한 뒤 전국의 명산(名山)을 두루 다니다가 용화산(미륵산)에 올라 수려한 경관에 반해 그 정상에 미륵불상(彌勒佛像)을 조성하고 그 아래 학수사(鶴樹寺)와 고자암(高自庵)이란 절을 짓고 말년에 잠시 의탁하였다.

이 불상은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초상이라는 전설이 전해지는데 불상의 코를 만지고 치성을 드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전해온다.

미륵산을 지나면서 급 내리막에 집체만한 바위들이 앞을 턱턱 막아서니 올라갔다 내려갔다을 반복하며 우회를하니 속도도 안나고 체력소모가 많다.

미륵산을 지나면서 울창한 숲이기도 하지만 짙은 안개로 조망없는 답답한 산행이 계속되고 잡목숲을 헤치고 진행하다 보니 임도같은 곳을 지나고 벌목지대가 나와서 지도를 확인하니 잡목과 잡풀이 무성했던 임도가 지도상에 서지재였음을 뒤늦게 안다.

 

마루금 좌측으로 벌목을 하였는데 짙은 안개로 아무것도 안보인다.

 

벌목지대를 지나서 올라서니 481.1봉이다

죽어서 쓰러져 있는 저 나무좀 치웠으면 좋겠구만.....

 

 

481.1봉에서 13분 진행하여 삼각점이 있는 쌀개봉에 닫는다.

 

쌀개봉의 삼각점은 4(406)등 삼각점

 

쌀개봉에서 35분 진행하여 467.2봉에 올라선다

 

467.2봉

 

467.2봉에서 좌측으로 꺽어서17분여 내려가면 2차선 포장도로가 넘어가는 비두냄이고개에 내려선다

비두냄이고개는 원주시 문막읍에서 부론면으로 넘어가는 지방도로이다

 

비두냄이란 지명 유래를보면 고개 아래인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비두미란 마을에서 유래 되였는데 여기에는 전해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비두냄미에는 옛날부터 질 좋은 화강암이 많이 나와 그것이 비석재료로 많이 사용되었다. 현재의 거돈사에 세워진 승묘탑비를 세울 때 비신과 좌대는 완성됐으나 비갓을 만들 만한 석재가 마련되지 않아 거돈사 주지는 사방으로 찾아다니다가 이 마을 근처에서 화강암이 나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석공을 데리고 가서 알맞은 바위를 떠 용이 구름에 쌓여 있는 양각 무늬까지 쪼았다. 그러나 막상 이 비갓을 옮기려고 하니 얼마나 무거운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힘을 쓴다는 사람들이 모였다가 이 갓이 꼼짝도 하지 않자 모두 슬며시 꽁무니를 빼고 없어졌다. 절쪽에서는 심히 난처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스님 한 분이 이 마을에 들렸다. 그는 어느 농가에 들러 "이 댁에서 먹이는 소 좀 빌립시다"하고 부탁해 왔다. "무엇을 하시렵니까?" 주인이 물었다. "비갓을 실어 옮겨야겠는데 댁의 황소면 거뜬히 할 수 있을 것 같소" 주인은 선뜻 승낙해주었으나 내심으로는 수십 명의 장정들이 모여 옮기려다가 옮기지 못 한 것을 스님 혼자서 어찌 황소 한 마리의 힘을 빌어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인은 소에게 쇠죽을 잔뜩 먹여 외양간에서 끌어내 앞마당에 매어놓았다. 그런데 금방이라도 소를 끌고 갈 듯한 스님이 해가 다 지도록 나타나지를 않았다. 주인은 일부러 쇠죽까지 잔뜩 먹여 놓은 일에 울화가 치밀었다. 이 때 스님이 나타나서 소를 잘 썼다며 인사를 하였다. 주인은 소가 종일 마당에 매어 있었는데, 언제 소를 끌고 갔다 돌아왔다는 말인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스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요"하고 물었다. 주인의 생각을 눈치 챈 스님은 "몸은 그대로 두고 소의 혼만 데리고 가서 일을 마치고 무사히 왔소. 소가 몹시 힘겨운지 땀을 흠뻑 흘리고 있소." 하는 것이었다. 주인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소를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아무래도 괴이한 일이라 주인은 비갓을 옮겨갔다는 비두네미골로 가보았다. 이미 비갓은 분명히 옮겨졌고 그것을 끌고 간 자국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로부터 이곳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비두네미로 불러왔는데 나중에 행정구역 명으로 '비두리'로 고쳐졌다고 한다.

 

 

비두냄이고개에서 맞은편 절개지에 있는 철계단으로 올라간다

 

좌측으로 마루금에 닫고 우측으로 올라선다

 

비두냄이 고개에서 30여분 올라가면 Y자 갈림길이 나오고 직진으로 몇발짝 올라서면

 

409.7봉

 

409.7봉

 

409.7봉을 만나고 잠시 내려섯다가 가볍게 한봉우리 올라서면 437.4봉

 

437.4봉

 

437.4봉을 지나고 편안한 꽃길이 계속되고 지맥길은 좌측으로 돌아 내려가고 우리는 직진으로 올라간다.

우측으로 살짝 벗어나 있는 삼각점봉을 다녀오기 위해서

 

 

배냥은 나무에서 걸어두고 삼각점봉을 다녀와서 간식을 먹으며 쉬여간다

 

소나무에는 한입버섯이 잔뜩 붙어 있는데 몇개 따보니 속에는 죄다 벌래가들어 있어서 수확을 포기한다

 

삼각점이 있는 443.4봉

 

삼각점에는 분명 글자가 있는데 알아볼 수가 없고

 

그곳에 오르고 싶은 산

 

443.4봉을 만나고 10여분 내려서면 좌우로 길이 뚜렷한 만디고개 이다.

만디고개는 원주시 부론면 면소재지에서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에는 문막읍 궁촌리, 서쪽은 경기도 강천면, 남쪽은 정산리와 단강리, 북쪽은 노림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만디고개라 불리게된 유래를보면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유배를 당하여 여기에 머물게 되었는데 공양왕이 이성계에게 왕위를 손위(遜位)하고 와 있었던 곳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손위실(遜位室)로 불렀고 이를 한자로 적으면서 '위'가 탈락되고 손곡이라고 적었다고 한다. 또는 한시로 유명한 손곡 이달(蓀谷 李達)선생이 살았다고 해서 손곡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아마 이달의 호 손곡은 손위실의 마을 이름을 따서 지어졌을 것으로 본다.

 

만디고개를 지나면서 좌측으로 벌목지가 나온다

 

아까보다는 많이 나아 졌지만 희뿌연 것이 시계가 여전히 좋질못하다

 

오늘 최고기온이 28도라더니 벌목지를 지날 때는 햇살이 제법 따갑다

 

만디고개에서 20여분 빡쎄게 올라치니 369.2봉에 올라선다

 

369.2봉

 

369.2봉을 만나고 완만하게 25분 진행하여 418.6봉에 올라선다

 

418.6봉

 

이게 뭔가요?

하늘소 인가요?

대충보아도 수십마리가 한군데서 사랑놀이 정신들이 없다.

방해가 될까싶어 조용히 자리를 뜬다. ㅋ

 

 

418.6봉에서 40여분 내려서니 체석장인 듯한 입구에 내려서고 우측으로 조금 이동하면 부문재이다

 

 

어잿밤에 들러서 풀숲에 숨겨둔 물품을 회수한다

 

부문재는 원주시 문막읍 후용리와 부론면 손곡리을 넘어가는 고개로  정상에는 버스정류장이 있고 손곡리 마을표지석이 있다.

이곳 손곡리는 고려의 마지막왕인 공양왕과 이성계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으로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유배를 당하여 여기에 머물게 되였는데 공양왕이 이성계에게 왕위를 손위하고 와 있었던 곳이라 하여 마을 이름을 손위실로 불렀고 이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위가 탈락되고 손곡이라 적었다고 한다.

또는 한시로 유명한 손곡 이달 선생이 살았다고 해서 손곡리라고 부르게 되였다고도 하며 아마 이달의 호 손곡은 손이실의 마을 이름을 따서 지여졌을거란 이야기도 있다 

 

물품을 회수해서 손곡리 방향으로 이동한다

 

절개지 낙석방지용 철망 끝 지점에서 숲으로 올라선다

 

부문재에서 15분을 빡쎄게 올라서니 마루금에 닫고 자리를펴고 점심을 먹는다.

서낭당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한지 6시간50분이 지났고 약14km 지점이다

 

우측으로 벌목을 하여서 후용리가 내려다 보인다

 

식사후 무명봉 두어개 넘으니 긴경산이 빼꼼이 보이는데 좌측으로 뺑 돌아서 가기때문에 보이는 것보다 멀리에 있다

 

벌목을 하여서 풀이없는 곳은 흙이 흘러내린다

 

계속되는 벌목지대 오후 12시가 넘으니 이런곳을 지날때는 내리쬐는 열기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앞에 삼각점봉인 260.1봉이 보이고 그 뒷쪽에 302봉이 살짝 보이고 긴경산은 그 우측에 있는데 보이질 않는다

 

좌측으로는 농경지가 내려다 보이는데 모내기가 벌써 끝난 모습이다.

 

갈림길에 올라서고 여기에 배냥 내려두고 좌측으로 살짝 벗어나 있는 삼각점봉을 다녀온다

 

 

마루금에서 좌측으로 살짝 벗어나 있는 260.1봉

 

삼각점에는 글씨가 있는 듯 한데

전혀 식별을할 수 없다

 

좌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손곡리

 

뒤을 돌아보면 부문재에 내려서기 전인 그곳에 오르고 싶은 산. 443.4봉

 

삼각점봉을 다녀와서 한 봉우로 치고 오르니 302봉

 

저쪽에 홀로 외롭게 있는 방장님 시그널 이쪽으로 이동하고

 

302봉에서 가파르게 내려 꼿히니 고개의 흔적이 보이고

 

우측으로 노림리방향 오토바이들이 얼마나 다녔는지 고랑이 파였다

 

좌측은 이미 오래전에 사람의 발길이 끈어진거 같다

 

힘들게 올라선 긴경산. 높이로 보면 보잘거 없어 보이는 긴경산은 오늘 산행중 가장 힘들었던 곳이였다

긴경산이라 불리게된 유래나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는 찿을 수 없었다

 

긴경산 정상에는 비교적 깨끗한 헬기장이 있고 받침없이 길쭉한 삼각점이 있다

지맥길은 좌측으로 틀어서 내려선다.

 

받침없는 말뚝형 삼각점

 

긴경산에서 조망

 

긴경산에서 40분을 진행하여 307.1봉에 닫는다

 

307.1봉

 

307.1봉에서 10분 내려가니 수영봉에 닫고

 

섬강이 남한강에 합수되는 흥창원이 내려다 보인다

성지지맥의 끝자락 자산에서 엄청 가파르게 내려섯던 기역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오늘도 함께해서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영봉에서 20여분 내려서면 낙엽이 수북히 쌓인 고개에 내려서고 여기가 소리개재

 

소리개재 좌측 모습

 

소리개재에서 무명봉 하나 넘으니 매골고개

 

매골고개에서 우측모습

 

매골고개에서 좌측모습

 

매골고개에서 20여분 올라서니 삼각점이 있고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243봉

 

 

삼각점은 엄정301

 

좌측으로 남한강이 내려다 보이고

 

우측으로 섬강. 남한강 합수점이 보인다

 

맞은편엔 오갑지맥 뒷쪽으로 독조지맥을 조망하고

 

산불감시초소를 지나고 길이 없어지고 무루금을 분간을 할 수 없고 대충내려서니 밭이 나오고 밭으로 올라오는 길로 내려가서 마을로 내려서니 창말

 

합수점을 바라보고 내려선다

 

49번 지방도로에 내려서고 합수점으로 향한다

 

 

흥원창( 혹은 )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서 한강의 지류인 섬강이 남한강에 합류하는 지점에 설치. 운영되였던 조창 중 하나이다. 양광도 소속의 원주()와 그 주변 지역의 세곡()을 모아 개경의 경창()으로 운송하는 기능을 담당하던 한강 수계의 대표적인 조창중 하나였다. 고려시대에는 전국에 13조창을 설치하고 조운()을 통하여 각 지방의 세곡을 개경으로 운반 하였다. 흥원창()은 고려 초기에 설치한 전국 12조창 중 하나로 현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흘호리 지역에 위치하였다. 고려 초기인 992년(성종 11) 개경까지의 수경가(. 조운선의운반 비용)를 정할 때에. 세곡6석에 1석의 비용을 지불하는 포구 중 은섬포(. 이전 명칭은 섬포구()가 흥원창이 있던 포구로 파악된다. 은섬포는 평원군()에 위치했다고 하는데. 평원은 원주의 별칭이다. 고려시대 흥원창은 원주의 관할 하에 있었으며 흥원창의 수세() 구역은 원주와 그 주변 속군현() 지역이 중심이 되였을 것이다. 고려사에는 정종() 때(1034~1046) 전국 각 조창에 배치할 조운선의 숫자를 정하면서 흥원창에는 1척 당 200석의 곡식을 실을 수 있는 평저선() 21척을 두었다고 한다. 흥원창에 모인 세곡은 한강을 따라 개경의 경창으로 운송되었다. 흥원창을 비릇한 13조창에는 판관()이 임명되여 각 조창에서의 세곡 운송과 보관을 관리 감독하였다. 인종 때(1122~1146) 개정된 외관()의 녹봉 규정에 따르면 13창의 판관에게는 20석의 녹봉이 지급되였다. 

 

섬강 남한강 합수점

 

남한강 건너로 오갑지맥

 

남한강 상류

 

백운지맥의 마지막산 긴경산

 

남한강노을 식당이 보여서 가보니 코로나19로 인해서 영업을 안한다네.

편의점도 겸하는데 콜라도 없어 사이다도 없다네 캔맥 하나사서 둘이 나눠 마신다.

55번 버스로 원주 중앙시장에 내리고 냉면으로 달아오른 몸을 식히고 31번 버스로 귀래로....서낭당고개를 경유해서 귀래로 가는 버스는 5시50분차가 막차라네.

귀래 슈퍼에서 서낭당고개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니 그쪽으로 가는 버스는 없다고 한다.

택시는 있느냐니까 귀래에 택시가 한대가 있는데

일요일에는 영업을 안한다네

어떻게 방법이 없겠냐니까 영업용은 아닌데 동래사람들 급할때 도와주는 차량이 있다면서 연결을 해준다

요금은 정해진게 없고 그냥 알아서 주면 된다고 한다

도착해서 1만원을 드리니 너무 많이 준다고 하면서 되래 고맙다고 한다.

참고로 귀래에서 카카오택시 콜을 시도할 때 5천9백원이 검색이 되였으니 서로가 만족했으니 모든게 잘되였다는 생각이다

 

 

소요경비

이동거리=304km(왕복)

유류비=20.270원(연비15km/디젤1.000원)

톨비=갈때 없음/올때 없음

버스요금=×2. 5.200

택시=10.000원

하산식=냉면x2  12.000원

등=10.000원

합계=57.47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