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간1정간13정맥
부뜰이와 천왕봉이 걸어온 대간과 정맥 길(검정색)
우리가 걸어온 한남정맥 길.정맥길=57km.접속거리 제외.(알.접1.9km).
누적시간=19시간42분
지도클릭
산행일=2015년2월15일
산행지=한남정맥 2구간
산행경로=두창리(매봉재)=>극동기상연구소=>57번국도=>마애불상=>문수봉=>
망덕고개(애덕고개)=>바래기산=>재주봉=>십자가탑=>염치고개=>은화산cc=>
무네미고개(45번국도)=>함박산=>서울공원묘지=>하고개(학고개)=>부아산=>
영진골프랜드=>42번국도(용인정신병원)
거리 및 소요시간=32km/10시간36분
두창리고개에서 한남정맥 2구간 맥 이여가기 산행을 시작한다.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는 극동기상연구소 방향으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곧이어 기상연구소 담장을 따라 걷는데 마치 군부대와 같은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다.
외부인 접근금지 경고판이 여기저기 붙어 있고. 정문에서 사진을 한장 찍으니 초소에서 초계병이
나오며 사진 찰영을 제지 한다. 이미 찍은 사진도 그 자리에서 삭제을 하구 무슨 연구를 하기에 살벌한 분위기를 풍기는지 알 수가 없다.이곳 극동연구소는 현지 사람들도 잘 모르는 국가 기관에서 관리하는 곳이다. 5공끝나고 청문회에서 큰 이슈로 떠 올랏던 바로 그곳...지금도 국정원 직원이 상주하는 곳이다.
기상연구소 담장이 끝나는 곳에서 삼거리가 나오고 우측으로 표고버섯 재배 검은색 비닐하우스가 있다고 했는데. 어두운 밤이라 잘 보이지도 않는데. 이정표 따라가다 보니 아무래도 안닌거 같아 지도을 확인하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다시 되돌아와서 이정표을 보니 이정표 위치가 잘못 세워저있다. 도로우측에 세워 뒀으면 맞겠지만 왼쪽에 세워져 있다보니 문수봉을
가리키는 방향이 엉뚱한 곳으로 가리킨다
마을길과 밭뚝을 한참을 더 간 후에 좌측 언덕배기 산길로 시그널을 따라 접어든다.
날이 밝아올때쯤 57번국도에 떨어진다.
도로를 건너 장수농원 방향으편안한 길을 이어간로다
왼쪽에 공장과 오른쪽에 주택사이로 빠져 나가면 이리저리 임도가 나있는 산길로 이여지는데,
정맥 마루금이다. 산길도 잠시 잠깐이다.
미리내마을은 전원주택 마을이다.
곧이여 전원주택 단지를 지나고 도로를 건너서 법륜사 쪽으로 30m쯤 지점에서.
로프가 매여져 있는 가파른 산길로 올라간다.
좌측으론 법륜사가 내려다 보이고.
우측에는 용인 농촌테마파크 공원이 보인다.
이마와 등줄기에 땀이 흐를때쯤 능선에 올라서고 정맥길은 우측으로 90도 꺽인다.
약간 내려가니 갈림길이 나오고
잠시후 y자 갈림길이 나오는데 어느쪽으로 가든 문수봉은 간다.
우측은 문수봉오로 바로 올르는 길이고.좌측은 약수터를 경유하는 길이다.
목도 축일겸 약수터 쪽으로 방향을 잡는데.
약수터 쪽은 약간의 경사도는 있지만 계단이 잘 되여 있어서 별로 어려움은 없다.
요즘같은 심한 가뭄과 정상에서 멀지않은 곳에 이렇게 많은양의 물이 나온다는게
신기 할 정도다.
약수터을 지나고 문수봉 마애보살상에 도착한다.
약수터와 마애보살상을 지나자 넓은 공터에 정자가 있고.
삼각점이 있는
이곳 문수봉에서는 지나온 칠장산 쪽으로 한남정맥 마루금이 한 눈에 들어 온다는데.
많은 구름과 짙은 연무로 전혀 조망이 안된다.
문수봉은 앵자지맥 분기점 이기도 하다.
신산경표에 의하면. 한남정맥 용인에 문수봉(404.2)에서 분기, 칠봉산(446.6). 용실봉(422), 해룡산(367.1), 국수봉(424), 정개산(433.4), 천덕봉(632.1), 앵자봉(670.2), 해협산(527.1), 정암산(402.8)을 일으킨 뒤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 한강이 되는 팔당호에서 맥을 대하는 도상거리
약 60km의 산줄기라 했다.
앵자지맥은 곱든고개 쪽이고. 한남정맥은 함박산 쪽으로 간다.
한한석유공사 용인석유비축기지를 지나고.
잠시후 쌍령지맥 분기점에 도착한다.
한남정맥에서 서쪽으로 산줄기 하나가 분기하니 쌍령지맥이다.
쌍령지맥은 쌍령산,봉황산,천덕산,백련봉,불악산을 일구고 평택의 동고리앞 진위천이 안성천에 합류하는 지점에서 그맥을 다한다.
지나는 산들은 쌍령산(502m),또다른 쌍령산(377.5m), 봉황산( - 0.3km. 259.3m),천덕산(322.3m),백련봉(235.2m),덕암산(164m),불악산(149.4m)들이고 도상거리로 43.6km쯤 되며. 우측의 물은 진위천으로 흘러들고 좌측의 물은 한천과 안성천으로 흘러든다.
한남정맥은 망덕고개 쪽으로 향한다.
최근에 새로 설치된 무인 산불감시기.
3년전에 대간을 같이했던 산애강애님 정맥길은 따로 가지만 같은 곳을 가구 있음은 같다.
1대간 9(13)정맥 무사히 완주 하시기 바람니다.
바래기산을 5분정도 지나면 망덕고개이다.
좌.우로 가로지르는 임도를 만나고 우측에 김대건 신부 유적지인 천주교
수원교구 평택성당에서 세운 망덕고개비가 있다.
김대건 신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였다.
유해 운구길이 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미리내 성지가 4,372m 떨어진 곳에 있다
망덕고개비 뒷면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있다.
(오늘 묻고 내일 물어도 오직 이 같을 따름이오 때리든지 죽이든지 또한 이 같을 따름이니 어서
때리고 어서 죽이시오. 이제 죽는 것도 천주를 위하여 하는 것이니 바야흐로 나를 위하여 영원한
생명이 시작하려 합니다). 1846년 9월 16일 만25세의 나이로 순교하면서 감옥에서 말한 김대건
신부의 말씀이다.
망덕고개비 뒷면에 새겨진 글.
오늘 한남정맥길에 유난히 많은 송전철탑 지도에 표시된것을 세여보니 22개이다.
송전탑만 정확히 따라가면 지도 없이도 갈수 있을 정도이다
이런 산꼭대기에 십자가는 왜 설치 해놓았을까?.
작동이 되는지 안되는지는 모르지만 네온싸인 까지 되여있다.
호남정맥에서는 쓰러진 나무가 셀수도 없을 정도러 만은데.
한남정맥에서도 심심찮게 보인다.
십자가탑을 지나고 은근슬쩍 고도을 낮추는데. 염치고개이다.
염치(鹽峙)는 한자로 소금이다.
산 아래쪽에는 용인시 이동면 용덕저수지 근처에 염티마을이 있다.
염치(鹽峙)고개에는 전설이 있다. 옛날에 소금장수가 지게에 소금을 지고 고개을 넘다가 하도
힘들어서 지게를 내리고 쉬고 있는데. 숲속에서 바가지 긁는 이상한 소리가 나서.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가 보니 파헤쳐진 묘지앞에서 햐얀 여우가 사람의 해골을 긁다 머리에 쓰면 사람으로 변하고 벗으면 다시 햐얀 여우로 변하는 것이였다. 깜짝 놀란 소금장수는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여우는 사람으로 변신하여 마을로 내려가는 것이 였다.
소금장수는 사람으로 변신한 여우을 따라 마을로 내려가 보니. 마을에 결혼식을 올리는 집으로 들어 가는 것이였다.소금장수는 이 집에 무슨 변고가 일어날 것을 직감하구 집 근처에서 집안을 주시 하는데. 밤이 으슥해 지자 신부가 기절 하였다고 야단 법석이 났고. 집안이 박칵 뒤집어
졌다. 소금장수는 올커니 올것이 왔구나 하구 지게 작대기를 들고 신부방으로 뛰쳐 들어가 아랬목에 앉아있는 할머니를 지게 작대기로 후려치니 사람 해골을 뒤집어쓴 백여우로 변해 죽어있었다. 주인은 소금장수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많은 선물을 주어 즐겁게 고개를 넘게 되였는데.
소금장수가 넘었던 고개라하여 염치(鹽峙)고개라 부르게 되였다고 한다.
위치상으로 볼때 용인시 처인구 해곡동이나 동부동 같은데 무슨 시설물인지 모르겠다.
벌목지대가 나오면서 마을이 보이는데. 호동마을 이다.
옛날에 호랑이가 자주 출몰해서 호동이라 했다는데.
산의 규모로바선 호랑이가 살았을거 같진않다.
정맥 마루금은 안내판 뒤쪽으로 가야하나 정맥길을 뭉게고. 파헤쳐 만들어 놓은 은화삼 골프장을 통과 할수가 없어서 좌측으로 우회 해야한다.
한마디로 엉터리 마루금을 간다.
골프장이 쉬는 날이나 밤에는 정석마루금을 타는 꾼들이 있다고 한다.
돌아가라는것도 모자라서 조용히 가라니....
위쪽에다 어느 정맥꾼이 반박의 글을 써놓은 글이 잼있다.
(산행하는데 골프치는 소리가 산행을 방해 합니다)
무네미고개 제대로된 마루금을 탓으면 저 앞에 건물 뒷쪽으로 내려 왔어야 한다.
분수령(分水嶺)이라는 말이 있다.
물이 나뉘는 고개라는 뜻이다. 따지고 보면 크고 작은 모든 고개가 분수령이 아닌 곳이 없다. 그러나 고개이름에까지 뜻이 살아있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용인에서는 무네미고개가 유일하다. 무네미고개에 소나기라도 내리면 떨어지는 빗방울의 운명이 순간적으로 갈린다. 즉 경안천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안성천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그야말로 물방울의 흐름이 남과 북의 정반대로 나뉘게 되는 것이다. 무네미란 지명과 고개는 전국 곳곳에 많이있다.
은하삼c.c정문 앞.
무네미고개에서 점심을 먹는데 매식을 한다.
갈비탕을 먹을려구 했는데. 갈비탕은 안된다구 해서 된장찌게 백반으로 한다.
식사후 정맥길은 식당가 뒷쪽으로 올라 가야 하지만 산 넘어에 45번 국도가 지나는데.
도로을 횡단 할수가 없어서 부득히 위회해야 한다.
이런 개구멍 같은 지하도로 통과 한다.
지하도를 통과하면 버스종점이 있고.
임도를 따라 쭈욱 올라가서 정맥길로 복귀한다.
정맥길에 복귀해서 내려다본 45번국도.
지나온 길도 돌아본다.
왼쪽에 은화삼 골프장이 보이고.
철탑따라 왔다.끝트머리에 뾰족한 산이 문수봉 이다
함박산은 용인시 남동과 이동면 서리에 접해 있는 산으로 명지대학 뒷산이다.
주위의 표고가 높은 지형 때문에 높아 보이지 않지만 용인의 산 중에서는 높은 편인 산이다.
시내에 가까우면서도 독특함이나 개성이 없는 산어서 찾는 이가 적어 등산로가 확실치 않아
접하기가 쉽지 않다.
아주 오랜 옜날에 무너미고개까지 물이 차올라 이 일대 봉우리가 모두 물에 잠기고 이 산
봉우리만 함지박 만큼 남았다 하여 함박산이라 명명했다 한다.
용인에는 유난히 묘지가 많다.그 이유에 걸맞는 전설이 있다. 생거 진천이요 사거 용인이라(生去鎭川 死去龍仁)”는 말이 있다. 옛날 충청도 진천 어느 산골에 허생원이 살았는데. 딸을 잘 키워서 경기도 용인으로 시집보냈다.
이 딸이 시집을 와 보니 시부모님이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소곤소곤 말을 하는데 가만히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새애기가 들어와 식구가 하나 늘어서 기쁘지만 또한 먹을 것이 부족하여 걱정이구나!” 라는 시부모님의 대화였다.
허부인은 시집이 가난하기 이를 데 없었다는 것을 알고, 이전 말에 대복은 재천(大福在天)이요 소복은 재근(小福在勤)이라고 하였으니, 나 하나가 부지런하면 어떻게든 이 집 가난을 면할 수 있지 않겠는가하고 각오를 하였다.
새댁이 말하였다,
“아버님, 어머님, 저는 이제 이 집 식구가 되었나이다. 저는 원래 남정네처럼 부지런하고 씩씩하다고 집이나 동네에서 소문이 났는데, 이제 시집을 왔으니 여기서도 부지런하고 씩씩하게 일을 하여 살림을 일구고자 합니다.”
과연 그날부터 말한 대로 허부인은 부지런히 남자처럼 일했다. 남편과 같이 일을 하니 장정 둘이 일을 한 셈이라서 재산이 늘고, 동네 사람은 저런 상머슴 같은 여자가 다 있는가 하고 입을 떡 벌렸다. 게다가 부부금슬도 좋으니까 시부모는 이래저래 대만족 이었다. 살림도 차차 늘어났다. 이제 남부럽지 않게 살게 되었고 떡두꺼비 같은 아들도 낳았다.
아, 행복하여라!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남편이 우연히 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더니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갑자기 남편을 잃은 허씨 부인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 눈앞이 캄캄하였다. 그 후 시부모님이 연달아 돌아가셨다.
과부 신세가 된 허씨부인 날마다 눈물로 밤을 지새우니 의지하고 하소연하고 마음껏 울고 싶은 곳은 이제 친정뿐이었다.
그래서 하루는 친정에 가려고 소복을 한 채로 친정인 진천 땅으로 걸어갔다. 험난한 산길을 허위단심 올라가다 보니 고갯마루 직전에 도착하였다.
그때 마침 맞은 편에선 한 선비가 괴나리봇짐을 지고 올라오고 있었다. 진천의 유생(儒生)인데, 지금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다가 이 고갯마루에 당도를 한 것이다. 유생이 고갯마루에서 잠시 쉬고 있노라니 소복을 입은 여인 하나가 허위단심 올라오고 있었다.
이 산 마루에 누가 있어서 저 여인을 붙들고 이야기를 한들 들키랴?’
이런 생각을 하는 때인데, 어디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건너편 소나무 아래애 자기처럼 쉬고 있는 노인이 있었다.
“부인, 사람 좀 살려주십시오. 티끌이 눈에 들어가 한 발짝도 내딛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구” 하고 엄살을 부렸다. 허씨 부인은 아무리 남녀가 유별해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부끄럽지만 우선 사람을 살리고 볼 일이라서 이 선비의 눈을 비집고 입으로 “후우” 하고 불었다.
유생은 꾀를 내 바로 눈앞에 이 아리따운 여인과 입을 맞춘 듯 숨결을 빨아들이는 일을 성사 하였으니 천만다행이었다. 유생은 진심을 담아 말하였다.
“고맙습니다. 부인께서는 어디로 가십니까? 저는 진천에 사는 유생인데 지금 한양에 과거를 보러 갑니다”라고 하는데 허씨 부인은 그저, “눈이 나으셨으면 어서 한양에 가십시오” 하고 묻는 말을 다른 데로 돌리면서. 이렇게 헤어졌다.
진천 사는 친정아버지는 홀로 된 딸이 걱정이 되고 그리워서 하루는 열일을 제쳐놓고 용인 딸네 집으로 찾아가는 중이였다. 거의 고갯마루에 다다랐을 때 별 해괴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아무도 없는 산중이라고 저 남녀가 저 무슨 입맞춤인가? 더구나 여자는 소복을 하고 외간남자와 못된 짓을 해? 에잇, 쌍놈쌍년 같으니.도대체 저 여인의 쌍판을 좀 보자며 친정 아버지는 소나무 밑에서 쉬고 있다가 다가오는 그 여인을 보고 그만 기겁을 하고 후닥닥 내려갔다.
그런 줄도 모르고 허씨 부인은 한참 후에 친정에 도착하였다. 얼마나 그리운 친정집, 보고 싶은 아버지, 어머니인가? 동기간인가? 부모님을 붙들고 원 없이 한 없이 이 설움을 쏟아놓고 싶엇다. 사립문에 들어서 소리를 질렀다.
“엄마, 아부지 저 왔어요!”
그런데 청천벽력 이었다. 아버지가 뛰어나와 호통을 쳤다. 불문곡직하고 소리를 질렀다.
“너는 출가외인 이거늘 어찌 내 집에 발을 들여놓는단 말이냐? 당장 돌아 가거랏!”
옛? 아버지, 왜....너는 내 딸이 아니다. 꼴 보기 싫다. 냉큼 돌아가거랏!” 하고 문을 탁 닫고 들어가 버렸다. 이 무슨 일인가? 허씨 부인은 그리던 친정 집 마당에 발 한 자국도 내딛지 못하고 돌아섰다. 용인 집으로 돌아가다 그만 길에서 쓰러졌다. 마음씨 고운 어떤 집에서 얼마 동안 정양을 하다가 다시 집으로 향하였다.
한편 서울에 과거를 보러간 유생은 그만 과거에 낙방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고갯마루에 당도할 때 쯤, 그 소복여인이 있었다.
과거에 낙방한 유생과 친정에서 문전박대를 당한 허씨 부인은 이렇게 만났다 가슴 아픈 환경에서 만났다.
유생은 진정으로 위로하였다. 속으로는 가슴이 터질 듯 기쁘면서도. 허씨 부인은 의지할 곳이 없는 나의 외로운 심정을 달래줄 분은 이 사람뿐이구나 하고 그만 억울하고 폭폭한 심정에서 유생의 품에 안겼다.
용인에 아들은 시댁 삼촌에게 맡기고 진천에 사는 유생에게 다시 시집을 갔다.
과거는 다 잊었다. 시댁과 친정도 잊었다. 그렇게 독하게 마음을 먹고 오직 새 남편 유생만을 위하여 살고 열심히 부지런히 악착같이 일하고 살았다. 그래서 살기가 택택(澤澤)하였다. 고맙게도 아들까지 낳았다.
어느덧 세월이 흘렀다. 환갑을 맞이할 즈음에 그만 남편이 세상을 뜨고 말았다.
무슨 팔자가 두 번씩이나 과부가 된단 말인가. 이제 아들 하나를 의지하고 말년을 보내야 하는 허씨 부인.
용인에 사는 큰 아들은 부모 없이 작은할아버지 집에서 살레설레 컸고, 그때마다 나를 낳은 엄마는 어디 있는가 궁금했다. 이제 장성을 하여 재산도 모으고 혼인도 하고 보니 마음이 더욱 간절하였다.
나도 한번 남과 같이 부모를 모시고 살고 싶다. 부모님 환갑잔치도 해드리고 싶다” 하고 어머니 생각에 젖어 혼자 울기도 하였다.
이럴 것이 아니라 내가 기어이 어머니를 찾아 모시고 살아야겠다. 어머니가 살아만 계신 다면 어이 못 찾으랴.하고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드디어 어머니가 계신 곳을 알아냈다.
‘어머니는 진천에 사시는구나. 그냥 찾아갈 수 없으니 송아지라도 끌고 가야겠다.’
그리하여 어머니 계신 곳을 찾아갔다. 허씨 부인은 어떤 장정이 송아지를 끌고 와서 뵙자고 하니까 웬일인가 하고 나와 보았다. 찾아온 사람을 보니 정신이 번쩍 났다. 한시도 잊지 못한 어린 아들... 앗 닮았다! 앗, 저 눈 위 콩알만 한 사마귀... 혹시 용인에 사는....”
그러자 찾아온 이가 허씨 부인을 왈칵 끌어안고 울부짖었다.
“어머니, 엄마, 저에요, 용남이에요, 용인에 두고 온 아들이랍니다.
“아가, 아들아, 내 아들아! 보고 싶었다. 용남아, 이리 잘 컸구나.”
“어머니, 얼마나 보고 싶었다고요. 얼마나 외로웠는 데요, 이제 드디어 찾았으니 떨어지지 말고 함께 살아요. 이것이 저의 평생소원 이었습니다.”
그러자. 이 에미도 용인에 사는 너한테 얼마나 죄를 지었는지, 보고 싶었는지, 나도 너를 떼놓고 와서 한시라도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단다. 이제 같이 살자, 아들아.
“안됩니다.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어머니 여기 진천에도 아들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앞으로도 제 어머니입니다.”
울고불고 하던 허씨 부인과 용남이는 그만 울음을 그치고 정신을 차렸다. 듣고 보니 이 말도 맞았다. 진천 아들이 말하였다.
어머니 난데없이 우리 집에 나타난 저 용인에서 온 아들이라는 사람이 아들 진짜로 맞습니까. 맞는다고 합시다. 사십 년을 산 우리 집을 떠난다는 말이 맞습니까.
이러고 보니 참으로 난처하였다. 용인의 아들도, 진천의 아들도, 사실 어머니도 난처하였다.
사정을 보면 어머니를 모셔다가 같이 살 수는 없었다. 그런데 평생소원은 모셔다가 같이 사는 것이다. 여러 가지 궁리를 하면서 “어찌한다! 어찌한다!” 할 뿐이었다. 결국 관가에 소장(訴狀)을 냈다.
소장을 받아본 고을 원님도 어떻게 판결을 힐지 뾰쪽한 생각이 나지 않아서 저녁도 못 들고 골몰하고 누워 있었다. 손자가 쪼르르 달려와서 할아버지가 무슨 근심이 있으시냐고 물으니 원님이 소장 이야기를 하니까 손자가 간단히 말해버렸다. 손자 말을 들은 할아버지는 벌떡 일어나서 무릎을 탁 쳤다.
이튿날 관가에서 두 아들을 불러놓고 판결을 하였다.
용인에 있는 맏아들과 진천에 있는 다음 아들이 다 어머니를 모시려는 것은 지극한 효심이라 세상에 귀감이 되도다. 그런데 어머니 한 분이 두 군데 살 수는 없구나. 몸을 쪼갤 수도 없는 것, 그래서 내가 판결이 힘이 드는구나. 그래도 판결을 하겠다. 너희 어머니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진천에 살도록 하고, 죽은 후에는 용인에서 모시도록 하여라.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去鎭川 死去龍仁)”이렇게 판결이 끝났다.
이리해서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라고 하는 말이 나왔다
부아산과 멱조현. 옛날 삼가리에 홀로 된 시아버지를 모시고 외아들을 키우며 사는 한 시골부부가 있었다. 이들 부부는 비록 가난하지만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부친을 잘 봉양하였다. 할아버지 역시 손주를 끔찍이나 아껴주어 항상 집안에는 화기가 돌았다. 그런데 어느날 남편이 관가에서 시키는 부역 때문에 여러 날 동안 집을 비우게 되었다. 남편이 없는 동안에도 부인은 시아버지를 극진히 모셨고 시아버지는 아들 대신 나무를 해서 시장에 내다 팔았다.시아버지가 돌아올 때쯤이면 항상 아이를 등에다 업고 배웅나가 고갯마루에서 시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런데 웬일인지 밤이 깊어가고 있는데도 시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등에다 아이를 업은 부인은 조금 더 조금 더 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가다가 자신도 모르는 길을 헤매게 되었다. 한참을 헤맸을까 가까운 곳에서 사람의 비명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부인은 혹시나 시아버지가 짐승에게 해를 입고 있는 것이아닌가 하여 그곳으로 달려가보았다.
과연 그곳에서는 시아버지와 호랑이가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부인은 호랑이를 크게 꾸짖으며,네가 정말 배가 고파서 그런다면 내 등에 업힌 아이라도 줄 터이니 우리 시아버님을 상하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러고는 어린아이를 호랑이 앞에 주자 호랑이는 아이를 물고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겨우 정신을 차린 시아버지는 손주를 잃은 슬픔에 오열을 금하지 못하였으나 며느리의 간곡한 애원으로 집으로 돌아왔다.돌아와서 나는 이미 늙었으니 죽어도 한이 없을 터인데, 어찌해서 어린아이를 죽게 했느냐 하고 물었다. 그랬더니 부인은 어린아이는 다시낳을 수도 있으나 부모는 어찌 다시 모실 수 있겠습니까? 하며 마음 상하지 않으시길 새삼 부탁하였다.시아버지도 며느리가 더욱 마음 아파할까봐 겉으로는 슬픈 척도 하지 않았다.
부아산은 바로 이때 부인이 아이를 업고 헤매던 곳이라고 하며, 멱조현은 시아버지를 찾던 고개라는 뜻으로, 아이의 할아버지를 찾아 넘는 고개 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영진골프랜드로 이어지는 지곡리 도로
42번국도 절개지 위에서 다음에 차량 주차 할 곳과 진행하게될 들머리 확인한다.
다음에 들머리는 덤프트럭앞에 전주대 있는 곳에 길이 보인다.
다음에 주차 할 곳은 트럭두대 사이에다 하면 되겠다.
오늘경비:차량이동왕복168km.유류비15.600원.톨비11.200원.택시비22.500원.
식사비10.000원.(총경비:59.300원)
난 날을 위한 엘레지) / Utada Hikaru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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