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봉지맥
부뜰이와 천왕봉이 걸어온 서봉지맥
지맥길55.4(접속1.5/이탈)km/20시간15분
산행일=019년3월23일
산행지=서봉지맥 2구간(화성시/평택시)
산행경로=샘골고개=>협성대학교=>150봉=>태행지맥 분기점=>134.7봉=>노리고개=>태봉산(224.5m)=>용구리고개=>163봉=>상병산 갈림길=>74봉=>점촌고개=>쉰길바위=>서봉산(250.3m)=>217봉=>명봉산 갈림길=>140봉=>도이리고개(82번도로)=>가로고개(68번도로)=>139.1봉=>양석골 사거리(330번도로)=>43번국도=>댕산(121.3m)=>주산봉(104m)=>127봉=>91봉=>동양레미콘=>요당리고개(306번국도)=>덕지산(명봉산:138.1m)=>107봉=>98봉=>백제약품=>어소리=>77봉=>토진육교(평택~제천간 고속도로)=>청북중학교(340번도로)
거리 및 소요시간=29.9km/10시간57분
한달 반 전에 수락지맥 진행중에 왼쪽 종아리에 심하게 쥐가 나더니 그 후유증이 지금까지도 영향이 있다.
무리를해서 그런가 하고 한주를 쉬고 비교적 난이도가 없는 서봉지맥을 한구간 진행하고 다시 한주을 쉬고 두번째 구간을 진행해본다.
산행중엔 그다지 큰 어려움은 없었고 지금도 그냥 그런 정도이다.
증세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쪼그리고 앉을 수가 없다.
종아리와 무릅 뒷쪽에 통증이 느껴지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한달정도를 한의원에 다니면서 일주일에 두번씩 침을 맞고는 있는데....크게 달라지는게 없는거 같아서 이번주에 산행을 한번 더 해보구 장시간 쉬여 볼까 생각중이다.
주말이 다가 오면서 일기예보를 주시 하는데. 토요일은 전국적으로 비나 눈이 올거라 한다.
다음날인 일요일도 그리 썩 좋은 날씨는 아니지만 일단 비나 눈이 안온다니 이번주에도 난이도가 무난한 서봉지맥을 진행할 생각으로 토요일은 하루종일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저녁 늦은시간인 밤 10시가 넘어서 인천을 출발하여 11시가 조금 넘은시간에 서봉지맥 두번째 구간인 협성대학교가 있는 샘골고개에 도착하여 5시 30분에 알람을 마추고. 천왕봉이는 뒷좌석에서 나는 조수석에서 쉬는시간을 갖는다..
협성대학교가 빤이 올려다 보이는 곳에 주차를하고 쉬는 시간을 갖는다.
샘골고개는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분천리에 있는 고개로 2차선 도로이고 우측으로 협성대학교가 있다.
샘골고개란 지명 유래는 고개아래에 시내말이라는 분천리의 자연마을이 있는데. 옛날 이 마을 앞에 큰 내가 흘럿다고 하여 불려진 이름으로 고개 이름도 거기서 따온 것이며 분천리(汾川里)에는 물(水)과 관련된 지명이 많다. 샘골.분천.수기리 등이 있다.
여기 위치가 2구간 들머리이기도 하다.
아침 5시30분 알람소리에 잠이깨고 누릉지를 끌여서 간단하게 새벽식사를 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산꾼들은 협성대학교 정문으로 들어가서 산행을 시작하는데 우리는 굳이 고개밑으로 내려가서 학교로 들어갈 필요없이 이곳에서 바로치고 올라간다.
학교 울타리인 녹색펜스를 따라 가다가 히미한 임도길을 잠시 따르고
담장을 따라 올라서서 우측으로 진행한다
20분만에 삼거리에 올라서면 지맥길은 좌측으로 진행한다.
삼거리에 있는 이정목.
지맥길은 태봉산쪽으로 진행되고 등산로입구 방향은 장안대학교에서 올라오는 길이다.
장안대학교 삼거리에서 10여분 진행하면 태행지맥 분기점에 닫는다.
태행지맥은 우측 방향이고.
서봉지맥은 좌측으로 내려선다.
몇가지 운동기구가 설치되여 있는 봉을 지난다.
비포장 임도에 내려서고 우측으로 방향을 잡으면
마루금을 뭉텅 잘라내고 도로을 공사중이다.
신설 도로공사 중인데 규모를보니 무슨 고속도로를 만들려는거 같은데.
도로가 완성되면 맥꾼들은 또 크게 우회를 해야될거 같다.
잘려져 나가는 서봉지맥 마루금
봉담 분천리 방향.
도로공사 중인 곳을 지나고 올라서면 잡목으로 어수선한 134.7봉 인데.
삼각점 확인을 못하고 지나고 약간 내려가면 생태통로가 설치되여 있는 노리고개에 내려선다.
노리고개의 본래지명은 노루고개였다.
경기도 화성시(華城市) 봉담읍(峰潭邑) 분천리(汾川里)의 태봉산(太鳳山)과 각씨봉 중간쯤에 분천리(汾川里)에서 왕림(旺林)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옛날부터 노루고개라 불러오고 있다.
노루고개라 불리게 된 데는 그러한 연유가 있었다.
고려(高麗) 광종(光宗) 때의 신호위대장군(神虎衛大將軍)을 지낸 이언(李彦)을 시조로 하는 함평이씨(咸平李氏)가 살고 있었다. 중시조(中始祖)인 이종생(李從生:시조의 11대손)은 세조(世祖) 때 무장(武將)으로서 1467년 이시애난(李施愛亂) 토평(討平)에 큰 공을 세워 적개공신(敵愾功臣) 2등에 올랐고, 각 도의 병마절도사를 역임했는데, 함평이씨가 배출한 문무(文武)의 현신(賢臣)은 거의 그의 후손이었다.
그의 아들인 량(良), 자는 자방(子房)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무과에 등제하여 의주목사(義州牧使).병사(兵使).가선대부(嘉善大夫).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등을 역임하여 함천군(咸川君)에 봉군(封君)된 사람이었다. 이량(李良: 1446∼1511)이 돌아가실 당시의 일이었다.
어느 날 아들이 뒷산에 올라 양지바른 곳에 앉아서 쉬고 있었다. 이때 홀연히 노루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구원을 청하는 듯 슬프고 가련한 모습으로 어쩔 줄을 모르면서 허리에 차고 있던 화살집을 비벼대 애원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이상히 여기면서 근처에 있는 풀잎으로 노루를 덮어 주었다. 그때 사냥꾼이 헐레벌떡 뛰어오면서 노루의 도망친 방향을 묻는 것이었다. 그는 태연한 태도로 못 보았노라고 대답하니, 사냥꾼은 그대로 각씨봉 쪽으로 가면서.“이곳으로 지나갔을 텐데.”라고 중얼거리면서 지나갔다.
그는 사냥꾼이 지나간 뒤 곧 풀잎에 숨어있는 노루를 일으켜 주었다. 그러자 노루는 몸에 묻은 풀을 훌훌 털고는 이제는 살았구나 하는 듯 의기양양하게 사람들이 다니는 산 고개를 넘어 어디론가 가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때부터 이곳 사람들은 이 고개로 노루가 넘어갔다. 하여 노루고개라 불러오고 있는데 산행지도에는 노리고개로 표기되여 있다.
그 며칠 후 꿈에 어떤 노인이 나타나더니 지난 번 내가 갑작스레 사경(死境)에 이르렀을 때 구해주어서 고맙다고 하례(賀禮)를 한 다음,“나는 본래 산신(山神)으로서 산이 하도 조용하기에 대자연과 더불어 잠시 즐기고자 하는 마음으로 노루로 변신하여 놀고 있었는데, 별안간 뜻하지 않은 사냥꾼을 만나 하마터면 죽음에 직면하는 변을 당할 뻔했는데, 당신이 구원해 주어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소. 그러하니 내 생명의 은인으로서 보답을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인즉 당신에게 묘 자리를 하나 알려주리라.”하고는 노인은 꿈에서 사라졌다.
꿈에서 일러준 묘 자리는 태봉산(太鳳山)에서 남향으로 산줄기가 뻗어있는 내룡(來龍)이었다.
그 후 얼마 안 있어 부친인 함천군(咸川君)이 별세하였다. 그는 이처럼 상을 당하게 되어 장례 준비를 할 즈음에 좋은 묘 자리를 잡기 위해 이산저산 돌아다녀 보았으나, 별로 신통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전날 현몽(現夢)하였던 곳에 가서 보니 과연 길지(吉地)라고 지사는 탄복을 하는 것이었다.
그 뒤 이곳에 산소를 쓴 뒤부터는 가세(家勢)가 번창하면서 자손들이 복록을 누리게 되고, 번족(蕃族)하게 되었는가 하면 대대로 내려가면서 문무(文武)할 것 없이 벼슬길에 많이 올랐을 뿐 아니라 고결청백(高潔淸白)한 문장가가 또한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조선조에 문과에 급제한 사람이 7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조선 정조(正祖) 때에 이르러서였다. 정조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묘소를 화산(花山)에 이장하고 본래 수원(水原)의 도읍지를 팔달산 밑으로 옮겼을 때다. 정조는 지극한 효성에서 내가 죽거든 우리 아버지 산소 근처에 묻어 달라고 하여 같은 화산(花山)에 묻히게 되었다. 그때 능을 중심으로 하여 능역(陵域)을 정할 때 태봉산이 모두 이 구역에 들어가게 되었으나, 태봉산 일대에는 함평이씨의 묘들이 있는 곳이라 나라에서도 이곳은 제외토록 하였다.
현재 함평이씨의 종산(宗山)이 9만 평에 이르고 있어 선조들의 내력을 짐작케 하고 있다.
함평이씨들은 아무리 좋다 해도 노루고기를 먹지 않으며, 또한 잠을 잘 때는 모두 몸을 모로 누워 자는 버릇이 있다고 한다.
노리고개를 생태통로로 건너고 약간 가파르게 올라서면 조망바위가 나오고 우측으로 조망이 열리며 봉담읍내가 보이고 건달산이 마주 보인다.
건달산(建達山:328m)은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세곡리에 위치한 산으로 발안천의 발원지 이기도 하다.
건달 이라는 산 이름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산에 돌이 많고 나무가 적어 산다운 맛이 없다 하여 건달이라 불럿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산의 형태가 멀리서 보면 잘생긴 모습이나 가까이에서 보면 난봉부리는 남정네 같다 하여 건달 이라 불럿다는 설이다.
만개한 진달래.
지맥길에서 약간 벗어나 있는 태봉산 정상.
태봉산(泰峰山:223m)은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분천리와 정남면 보통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산 정상에는 여러가지 운동기구와 표식을 읽을 수 없는 삼각점이 있고 쉴수 있는 벤취가 있을 뿐 태봉산이란 표식은 아무것도 없다.
조망도 별로이고 진행방향으로 서봉산이 보일뿐이다.
그리고 판독을 할 수 없는 삼각점이 있다.
태봉산에서 왔던길로 50여미터 빽을해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묵은밭을 지나고 잡목이 무성한 숲으로 들어간다.
쓰러진 통나무와 어수선한 잡목숲을 내려서면 작은 고갯길에 내려서고 여기 위치가 용구리 고개이다.
도로을 횡단하여 임도길로 올라가면 여러개의 묘지가 나오고 좌측으로 정남면 관향리가 내려다 보인다.
좌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정남면에 관항리 마을.
마루금에는 온통 묘지조성 공사중이다.
우측으로는 봉담읍 마하리 왕림리 당하리가 보이고 건달산이 마주 보이고 바로 앞쪽에는 KTX고속철로가 보인다.
등로는 갑자기 좋아지고
얼마 못가서 좋은길은 좌측으로 돌아가고 지맥길은 히미한 우측으로 내려선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곳에는 리본하나 걸어주고 진행한다.
한 10년은 된음직한 죽천선배님의 흔적도 보인다.
어수선한 잡목숲을 이리저리 헤치고 내려서니 묘지가 나오고 서봉산이 건너다 보인다.
묘지에서 내려서니 어느 공장으로 내려서고 정문을 통과하여 골목길로 나가는데.
목줄도 없는 똥깨놈이 따라오며 짖어댄다.
등을 보이면 안될거 같아서 눈을 마주치며 뒷걸음으로 슬슬 내려가는데 계속 따라 온다.
내가 멈추면 저놈도 멈추고 자기집에서 멀어지니 집쪽을 슬금슬금 돌아 보면서 짖어댄다.
어느정도 멀어진거 같아서 내가먼저 스틱을 휘두르며 소리를 지르니 냄따 내빼 버린다.
골목을 벗어나면 67번 도로가 나오고 여기위치가 점촌고개이다.
점촌(店村峙)고개는 경기도 화성시 마하리와 정남면 오일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67번 지방도로가 지나며 주위는 온통 크고작은 공장들이고 KTX고속철도가 지나는 곳이다.
점촌고개란 유래를는 좌측 아래쪽에 점촌이란 마을지명에서 따온것이며 점말이라고도 하며 예전에 이 마을에 옹기점이 많이 있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 이라고 한다.
도로를 횡단해서 골목길로 쭈욱 들어가면.
KTX고속철도가 보이고 굴다리로 통과하여
바로 우측으로 붙어서 올라가는데.
선답자들은 어디로 진행했는지 길이 보이질 않는다.
방향이 맞고 마루금이 맞으니 그냥 치고 올라간다.
좌측으로 묘지가 나오고 벌목지가 나오면서 점촌과 오일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데.
전답은 물론 농가도한체 안보이고 공장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T자 갈림길이 나오고 지맥길은 좌측으로 틀어진다.
여기서 부터는 서봉산 등산로라 길도 좋고 산책나온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배냥메고 스틱들은 사람은 우리밖에 없으니 사람들 눈에는 우리가 이상하게 보이나 보다.
운동장같은 곳에 육각정도 있고.
서봉산이란 유래가 적힌 안내판도 있다.
서봉산 오름길에 오늘 처음으로 바위을 보는거 같다.
쉼터와 키재는 자(尺)가 있다.
산중에 키를재는 시설이 있다는게 참 잼있다.
또 다른 바위를 만나고
다른 각도에서 한번더 찍어보고
좌측으로 약수터(100m) 갈림길을 지나서 서봉산으로 오른다.
등산로을 버리고 우측에 바윗길로 올라가면 커다란 바위를 지나고.
이 바위가 서봉산 쉰길바위 전설에 나오는 눈물 바위인가?
정면으로 기이하게 생긴 바위가 보이는데 전설이 내려오는 쉰길 바위이다.
서봉산 쉰길바위의 유래를보면 서봉산은 엣부터 봉황(鳳凰)이 깃드는 산이라 하여 서봉산(棲鳳山)이라 불리는데. 아주 오랜 옛날 서봉산 중턱 작은 암자에 젊은 중과 동자승이 시주걸림을 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젊은 스님이 시주걸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마을어귀 우물가에서 아름다운 낭자를 보았는데 그날 이후로 스님은 낭자의 모습이 어른거려 잠이 오질 않았고 불경을 외우는 것도 내키질 않았다.
스님은 모든것을 잊기로 하고 마을로 시주걸림을 떠날때 낭자의 부친이 깊은 병이나서 눕게되여 온갖 치료를 다해 보았으나 효험이 없었다는 소식을 듣게되여 약 처방을 써주고 차도가 있은 뒤 자기 암자에 와서 3일간 불공을 드리라는 말을 남기고 암자로 돌아 갔는데. 낭자는 스님의 처방데로 약을 달여 부친에게 드리니 병세가 금방 호전되였고. 낭자는 스님의 말대로 서봉산 암자에 들어가 사흘동안 정성을 다해 부처님께 불공을 드린다음 스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떠나려할 때. 스님은 그 동안 낭자를 사모하여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솔직히 고백하고 낭자와 함께 불도수행을 떠나 환속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겠으니 들어줄 것을 간청하였다.
환속을 하겠다는 표시로 서봉산 쉰길바위에서 턱걸이 백번을 하기로 하고 낭자가 보는 앞에서 온 힘을 다해서 턱걸이를 하였는데 99번째에서 기운이 빠지고 의식이 몽롱해지고 손이 풀리면서 급기야는 높이가 쉰길이나 된다는 바위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낭자는 너무나 지나친 요구를 하여 스님이 불의의 변을 당한 것을 후회하고 슬픔을 못잊어 한참을 엎드려 울고 있다가 일어나니 앞에 난데없이 커다란 바위가 하나 우뚝 솟아나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가 스님이 이루지 못한 영혼이 깃들어 눈물을 흘리며 울고있다 하여. 눈물바위라 부르게 되였으며 쉰길바위와 함께 지금도 스님과 낭자의 한맺힌 사연이 담겨져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쉰길바위 아래에는 벌통 한개가 놓여있다
쉰길바위를 둘러보고 서봉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서봉산 정상에 올라서면 바로 밑에 해병대 아파트가 내려다 보이고 발안저수지가 보이고 저수지 건너편에 건달산이 마주 보인다.
건달산(建達山:328m)은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세곡리에 위치한 산으로 발안천의 발원지이다.
건달 이라는 산 이름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산에 돌이 많고 나무가 적어 산다운 맛이 없다 하여 건달이라 불럿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산의 형태가 멀리서 보면 잘생긴 모습이나 가까이 에서 보면 난봉부리는 남정네 같다 하여 건달 이라 불럿다는 설이다.
육각정이 있는 서봉산(棲峰山:249m)은 경기도 화성시 발안읍과 정남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정상석과 팔각정이 있고. 4등 삼각점이 있다.
서봉산이란 지명 유래을 보면 멀리서 보면 봉황(鳳凰)을 닮았다고 하여 서봉산(棲鳳山)이라 불렸다는 설과 옛날에 봉황이 살았다고 해서 봉황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쉰길바위의 선설이 적힌 안내판
육각정을 지나면 기암이 하나 있고.
지맥은 우측으로 꺽어서 진행한다.
서봉산의 삼각점은 육각정을 지나서 우측으로 있고 우측이 지맥방향이다.
동오리 방향으로 내려간다.
서봉산에서 20여분 진해하면 217.4봉에 닫고
지도에는 삼각점이 표시되여 있는데 주위를 다 뒤져 보았지만 삼각점은 찿을 수 없었다.
217.4봉은 우측으로 화성시 천체가 내려다 보이는 최고의 조망처이다.
화성 종합운동장이 보이고.
살짝 우측으로 해병대 골프장도 보이고 내가 서있는 산높이 만큼이나 높은 굴뚝도 보인다.
좌측으로 연화사기 0.1km라 하여 내려가 본다.
암자는 아니고 점집인가 보다.
여기 위치에서 쉬면서 준비해온 스프와 빵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협성대학교가 있는 샘골고개에서 11.5km지점이고 4시간3분이 지난 지점이다.
아직도 갈길은 18km가 남았으니 반도 진행못한 상황이다.
일반 등산로는 여기까지 이고 길도 안보이는 통행금지구역으로 들어간다.
마루금 바로 아래에 골프연습장이 있고
골프공이 여기까지 날아와 있다.
히미한 길이 갑자기 없어지고 지독한 잡목숲을 헤치고 내려서니
좌측으로 묘지가 나오고 일반 등산로가 보인다.
마루금에서 산책길로 내려서고.
일반 등산로로 빠져 나가니
동산숲유치원이 나온다.
동산숲유치원 정문을 빠져 나가면 좌측으로 브라메리타란 찿집을 지난다.
동오정이란 한식당을 지나서 직진으로 진행한다.
교통량이 제법 많은 82번 도로가 지나는 도이리 고개.
도이리(桃李里) 고개는 경기도 화성시 향남면 도이리와 양감면 관리의 곙겨에 있는 삼거리 고개로 82번 도로가 지나고. 고개 이름은 우측에 있는 도이리에서 따온 것이고 도이리란 지명은 예전에 복숭아와 오얏나무가 많아서 불리워진 이름 이라고 한다.
길을 건너서 절개지 철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도이리 고개에서 우측으로 도이리 방향.
도이리 고개에서 좌측으로 송곡리 방향.
그리고 지나온 동산숲유치원 방향
버튼을 누루고 기다리면 차량신호가 끈어지고 보행자 신호가 들어온다.
길을 건너고
절개지에 설치되여 있는 철계단으로 올라간다.
도이리 고개에서 철계단을 올라서면 어디로 연결된 것인지.
굴뚝인지 환기구인지 모을 커다란 굴뚝을 만난다.
도이리 고개에서 이상한 굴뚝을 지나고 올라서면 산불감시 탑이 있는 139봉에 올라선다.
산불감시탑은 사용을 하는지 안하는지 주위에 나무들이 감시탑보다 훨씬 높게 자라있다.
산불 감시탑에는 준.희 선생님의 산패가 걸려있고 삼각점이 표시되여 있는데.
바닥에는 낙옆이 두껍게 깔려있고 있을 만한 곳을 수색을 해보지만 삼각점은 찿을 수 없었다.
등로에 커다란 바위가 나오고 천석바위라는 안내판은 땅바닥에 누워 있다.
천석산(天石山)은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과 양감면 경계에 있는 낮은 산으로 산이라기 보다는 조금 높은 언덕같은 산이고 정상에는 커다란 바위가 하나 있고 천석산의 유래가 적힌 표지판이 하나 있는데 천석산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싶다.
천석산의 유래를 보면 하늘이 천명을 구할 수 있는 산이라는 설과. 이 산골짜기에 천 명이 앉을 수 있는 바위가 있어서 붙혀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는데. 입이 남쪽으로 향하고 비구가 북쪽을 향하며. 멀리 서해가 바라다 보이고 사방이 한 눈에 보이는 곳으로 하늘이 맞닿은 바위라 하여 천석바위라 부르기도 하고 또 다른 일설에 의하면 부근에는 전혀 다른 바위는 볼 수 없어 옛날 삼신할머니가 놓고간 바위이며 하늘에서 떨어 뜨렸다 하여 천석(天石)바위라 불렸다고 전해지고 있다.
천석산의 유래가 적힌 안내판은 기둥 밑뚱이 썩어서 땅 바닥에 자빠져 있다.
좌측아래에 천석사가 있고 지맥길은 노인복지회관 방향으로 진행된다.
다시 갈림길이 나오고 노인복지회관은 직진으로 가고 지맥길은 좌측 행정리 방향으로 꺽어진다.
마루금이 걸레같이 띁기고 골재 췌취장이라 진행이 불가능하여 그냥 우측밑으로 내려서니 68번 도로가 나온다.
68번도로에서 우측으로 향남면 행정리 방향
좌측 양감면 백토리 방향으로 고갯마루가 보이고 여기 위치가 지도상에 가로고개 이다.
가로고개는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행정리와 백토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68번 도로가 지나가며 좌측으로 페골재 공장이 있고 우측으로는 행복나루라는 오리고기 식당이 있다.
일단 고개마루까지 올라가 본다.
행복나루 식당앞을 지나서 공장안으로 들어가 보니 높은 담장을 넘을 수가 없다.
되돌아 나와서 왔던길로 다시 내려가서 골재 췌취공장 맏은 편으로 들어간다.
골재 췌취공장 맏은편 공터쪽으로 들어간다.
가로고개에서 봉우리 하나 넘으니 절개지가 나오고 지도에 없는 시멘트길이 나온다.
좌측을 살펴보는데 올라갈 수가 없다.
우측으로 내려가 보니
올가가는 길이 보인다.
막상 올라서 보니 양탄자가 깔린 부드러운 길이다.
좌측으로 양감면내가 내려다 보인다.
꽤 넓은 공터가 있는 봉우리에 올라서니
138.4m라는 준.희 선생님의 산패가 걸려있다.
화성 시민들은 이곳을 방울산이라 부른다.
방울산을 내려서면 우측으로 묘지가 나오면서 향남면이 내려다 보인다.
방울산을 내려서면 330번 도로가 지나는 양석골 도로에 내려서고 도로를 횡단해서 골목으로 진행한다.
우측에는 한옥으로된 전원주택 두체가 보인다.
골목길을 빠져 나가면 43번국도가 나오고 43번국도을 잠시 따라간다.
양석골 사거리를 지나면 우측으로 양석골 누에박물관이 있다.
고갯마루 직전에서 우측 산길로 올라간다.
뽕나무골로 올라간다.
길 건너에는 갈비집이 있고 속은 좀 출출하지만 배냥에는 아직 먹을것이 많이 있어서 그냥 지나간다.
43번국도에서 5분정도 올라서니 야생화 나비동산이라는 비닐하우스가 지금은 쓰레기더미로 변하였다.
산행지도에는 여기 위치가 댕산(121.3m)으로 표기되여 있고 삼각점도 표시되여 있다.
삼각점을 확인하고자 잡목숲을 헤치며 올라가 본다.
삼각점은 판독을 할 수 없고 절개지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모습이다.
댕산(121.3m)은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하길리와 화현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버젓이 이름이 있는 산이지만 여기가 댕산이라는 표시는 아무것도 없다.
댕산을 지나고 양지바른 곳에서 맥주와 삶은 계란으로 간식을 먹으며 쉬는 시간을 갖는다.
갑자기 널찍한 임도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진행한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숲길로 다시 올라간다
희미하긴 하지만 그런데로 갈만한 길이 이여진다.
멀목지가 나오고 뒷쪽으로 지나온 지맥길이 조망된다.
마루금을 뭉개고 들어앉아 있는 고려레미콘 공장
고려레미콘 공장 뒷마당으로 내려서고
정문으로 빠져 나간다.
정문으로 나가며 돌아본 고려레미콘
고려레미콘 공장 정문을 지나면 우측에 강원폐차장이 있다.
고려레미콘과 강원폐차장을 차래로 지나면 대양리 고개에 내려선다.
정면으로 보이는 공장 뒷산이 마루금이지만 공장 앞 마당에서 좌측으로 들어간다.
공장 앞마당을 통과하면 바로 마루금에 복귀한다.
시멘트길을 잠시 걸으면 전주이씨 세정지가 나온다
전주이씨 세정지 덕에 향남읍(鄕南邑)이 한눈에 들오온다.
계속해서 시멘트 임도길을 한동안 걸으면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올라가 보니 또 다른 묘지가 나오고 묘지를 지나면서 좀전에 헤여진 시멘트 임도길을 다시 만난다.
또 다시 갈림길이 나오고 마루금이 우측이라 우측으로 올라간다.
또다시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올라간다.
묘지가 나오고 묘지 밑으로는 골재 췌취장이고 절벽이라 진행이 불가능하여 다시 되돌아 선다.
삼거리에 되돌아와서 좌측으로 내려선다.
이번에는 우측으로 내려선다.
묘지에서 내려다보던 절개지 모습.
마루금은 지금도 계속 없어지는 중이다.
모래가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걸 보니 모래를 생산하는 곳인가 보다.
밖으로 나가는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다.
이렇게 해서 밖으로 나간다.
돌아본 골재 췌취공장
공장이 차지하고 있는 마루금.
우측에 공장쪽으로 다가간다.
인삼포을 지나서
공장 골목으로 들어간다.
공장을 빠져 나가면 306번 도로가 나오고 우측으로 진행하여 마루금에서 좌측으로 올라서야 하나 조금 움직이는게 귀찮아서
도로 건너편에 한식부페건물 뒷쪽으로 치고 올라간다.
길이 있을 턱이 없지만 방향이 맞으니 그냥치고 올라간다.
10여분 올라가니 마루금에 올라서고 그냥 잡목숲인 주산봉이다.
주산봉(主山峰:108.3m)은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요당리에 있는 산으로 산 정상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다.
선답자들의 기록에는 이곳에 삼각점이 있다고 했는데 삼각점은 찿을 수 없었다.
주산봉에서 내려가면
포장도로가 나오고 좌측으로 요당리의 보호수인 은행나무가 보인다.
방금전에 내려온 주산봉.
보호수 안내판에는 수령이 안 적혀있다.
요당리(蓼塘里) 라는 마을은 전주 류(柳)씨 집성촌이였다.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 요당리(蓼塘里)는.명봉산(鳴鳳山) 자락 아래. 갈대(蓼) 연못(塘) 이 있다고 해서 요당리란 이름이 붙여진 이 마을은 400여년 된 은행나무가 마을 가운데 자리하고 있어서 은행나무 마을로도 불린다.
요당리는 작은 마을이지만 대기업 회장을 비릇해 교수.의사. 등 13명의 박사가 배출되였다.
4.19 가 발생한 1960년부터 대학생이 많기로 소문난 마을이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면 단위에서도 찿기 힘든 대학생이 요당리 마을에만 30명이 넘게 있었다 한다.
특히 이 마을에는 축산대학으로 널리 알려진 건국대 졸업생이 유독 많아 경기도에서 낙농마을의 시초가 됏고 황우석 박사의 복제소 영롱이 가 이곳 요당리에서 태여난 났다고 한다.
계속 도로따라 간다.
우측에 덕지산을 바라보고 진행한다.
도로명은 요댕이 길
우측으로 요당성지를 지난다.
덕지산 밑에는 공장을 짓느라 산을 깍아내려서 좀체 올라갈만한 곳이 없다.
어느 공장안쪽을 보니 완만한거 같아서 들어가 본다.
히미한 길이 보이고
올라서니 묘지가 한기 있고 더이상 길은 안보인다.
그냥 가시넝쿨을 헤치고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서고 마루금에서 우측으로 살짝 벗어나 있는 덕지산을 향해서 올라가면 산불감시탑과 사각정자와 삼각점과 정상석이 있는 덕지산 정상에 올라선다.
덕지산(德智山:138m)은 경기도 화성시 양감면과 평택시 청북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사각정자와 3등 삼각점.산불감시초소.몇개의 운동시설이 설치되여 있다.
그런데 정상석에는 덕지산이 아니라 명봉산이라 되여 있다.
덕지산을 지나면서 화성시는 끝이나고 평택시로 넘어 간다.
덕지산의 3등 삼각점.
덕지산 정상에 있는 이정표.
덕지사로 내려서는 길.
양감면으로 내려서는 방향.
앞서 진행하신 홀대모 방장님과 소슬바람님 시그널이 보인다.
지맥길은 왔던 방향으로 다시 내려간다.
덕지산에서 내려가면 우측으로 덕지사 갈림길이다.
덕지산에서 내려오며 몇번의 갈림길과 잡목숲을 지나면 우측으로 평택시 청북면이 보인다.
백제약품 울타리을 따라서 내려가면
도로에 삼거리에 내려서고
우측 고갯마루에 백제약품 건물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어소리 마을이 보인다.
어소리(魚沼里)마을 유래를 보면 조선후기 수원군 토진면 지역이였고 1914년 오소리.과좌리 일부.서신리면구설창리.석우리를 통합해 진위군 청북면 어소리가 됐다.
어소라는 지명은 예전에 마을 어귀에 웅덩이(소)가 있어 유래됐다.
"으"는 "어소"의 사투리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물고기 웅덩이.로 마을 앞 관리천 변에 물고기가 우글거릴 정도의 웅덩이가 있어 유래됐다. 웅덩이는 가뭄과 싸웠던 흔적이다.
마을 앞 어소리들은 만성적인 수해도 있었지만 모내기철에는 감당할 수 없는 가뭄도 있었다.
가뭄이 들면 농민들은 필사적으로 관리천에 매달렸다. 관리천에는 수많은 웅덩이가 생겼다.
웅덩이에 물이 고이면 바가지로 퍼 올려 모내기를 했다.
빈 웅덩이에 한차례 냇물이 휩쓸고 지나가면 물고기가 우글거렸다. "어못" 즉, "어소"가 형성된 것이다.
도로을 횡단해서 숲으로 들러간다.
봉우리 하나넘으니 마루금을 다 파내고 공장을 지어서 지나기가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지나와서 돌아본 공장 절개지
아직도 더 가야하는데 바람은 어찌나 쎄게 불어대는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이다.
봉우리를 넘으니 비슷한 절개지가 또 나온다.
마루금을 포기하고 금방 굴러내릴거 같은 바위지대를 지나서 내려선다.
공장건물 사이로 나가니
위에서 건너다 보던 절개지이다.
여기서 부터는 마루금을 우회하기로 한다.
우측으로 평택.제천간 고속도로가 보인다.
마루금을 좌측에 두고 농로길을 따라서 진행하면
평택~제천간 고속도로가 지나는 토진2육교가 보인다.
토진2육교에서 청북방향
토진2육교에서 오성방향
도로가 마루금상에 위치해 있고 앞에 보이는 숲에 청북중학교가 있다.
청북 중학교는 경기도 평택시 청북면 토진리에 소재한다.
청북중학교 정문앞으로 지나는 340번 도로에서 서봉지맥 두번째 구간을 마무리 한다
340번 도로 우측으로 20여분 쭈~욱 가면
청북읍사무소/신포 버스정류장에서 10분정도 기다려서 안중/수원을 오가는 시외버스로 화성 봉담 장안대학교 정문앞에서 하차하여 다시 20여분을 걸어서 협성대학교 아래 샘골고개에 주차해둔 차량회수 하여 집으로 온다.
소요경비
이동거리=110km(왕복)
유류비=9.200원(연비15km/디젤1.250원)
톨비=갈때 없음/올때 없음
버스= *2. 4.000원
하산식=갈비탕*2/소주1병/ 26.000원
등=10.000원
합계=49.2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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