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9정맥(졸업)/한북정맥(완주)

한북정맥 8구간(윗배다리=>고봉산=>장명산)

부뜰이(윤종국) 2013. 12. 15. 09:48

 

한북정맥

부뜰이와 천왕봉이 걸어온 대간과 정맥 길(검정색)

 

지금까지 걸어온 정맥길 187.2km. 접속거리가 제외 된 거리

우리가 걸어온 한남정맥 길.정맥길168.7km.접속거리 제외.(알.접9.3km).

누적시간76시간55분

강원도 철원군과 화천을 넘나드는 말고개에서 대성산.복주산.일동에 광덕산과 백운산.

민둥산을 지나 포천과 가평에 청계산 원통산. 운악산을 지나 양주에 불곡산.호명산을 지나면서 국립공원인 북한산으로 들어와 서울에 도봉산을 지나 북한산 상장능선에서

북쪽으로 급회전하여 고양시 노고산에서 원당동으로 들어가 견달산과 고봉산을 지나면서 일산 신도시를 관통아여 파주 장명산을 마지막으로 곡릉천으로 잠기면서

 

북한쪽에 정맥길을 제외한 남한에서 산행을 할 수 있는 거리인 도상거리168.7km.

실거리210km를 9회로 나누어  81시간 10분으로 마무리한다. 

 

산행일=2013년12월14일

산행지=한북정맥 8구간(고양시/파주시)

산행코스=윗배다리=>51탄약대대정문=>현달산(139)=>문봉동재=>성동재=>고봉산(206)=>고봉산정자=>중산고개=>금정굴=>현대큰마을=>일산가구단지=>고르연습장=>경기인ㄺ개발원=>목동사거리=>월드메르디앙1차아파트=>생명교회=>56번국도=>핑고개=>장명산=>곡릉천

거리 및 소요시간=22,7km/9시간45분

 

떠오르는 태양을 보니 날씨가 무지 맑고 좋아 보인다.

오후가 되면서 몇시간동안 눈보라에 시달린다.

일기 예보에는 인천지역에만 약간에 눈발이 날릴거라구 했는데. 

 

 

인천에서 출발할땐 여하4도였는데.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 기온은 영하9도에서 영하10도까지 오르내린다.

 

적당한 도로변에 주차를 한다.

 

오늘 산행 들머리인 윗배다리 외곽고속도로가 지나는 곳이다.

 

 

 

 

 

 

 

 

 

 

주위 풍경들

 

이길로 쭈욱 들어간다.

 

 

 

 

10분쯤 진행후 지금은 페쇄된 교외선 철길을 건넌다.

 

 

 

 

탄약부대 정문을 향해서 쭈욱 들어간다.

 

 

 

 

 

 

산행 35분후 부대정문에 도달한다.

정맥길은 정문 오른쪽에 철조망을 따라 들어가야 하지만...

 

약간 오른쪽에 길이 보인다 선답자들에 시그널도 보이고

별 의심없이 가다보니 맥이 끈어지는 듯한 느낌 gps를 보니 잘못가구 있었다

일차 알바였다 다시 되돌아와서...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계속간다.

 

이곳에는 어젯밤에 제법 많은눈이 내렸는 갑다.

눈길은 사람을 빨리 지치게 한다

 

 

 

 

견달산이 보일때쯤 군부대길은 끝나고.

 

두번째 만나는 도로.

도로를 건너면서 산행은 계속된다.

 

 

 

 

 

 

 

 

 

 

 

 

 

 

 

 

 

 

 

두사람이 앞서간 발자국을 따라 가다보니 예감이 안좋다

확인해보니 아니다 200여m를 다시 되돌아간다.

 

 

이길이 정맥길이라구 뜬다.

앞서간이는 어디로 갔을까? 

 

 

여기오니 다시보이는 두사람의 발자국 아래쪽으로 빙 돌아온 갑다.

 

 

 

 

 

 

 

 

견달산에는 운동기구들이 몇가지 있었다. 

 

 

 

견달산은 중국의 황제가 세숫대야에 비춰져 그 기운이 중국까지 도달했다하여

견달산으로 불렀다하며, 다른 이름은 본달, 번달, 현달로도 부르고 있다.

산 봉우리가 중국을 향하고 있어 일명 역적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이 견달산은 하늘과 잘 통한다고 하여 고양시에 비가 오지 않을 때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는 산으로도 유명하다.

6.25 전쟁 당시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기도 한 군사 요충지였으며

산 정상에서는 아무런 막힘없이 고양시 일대를 훤히 조망해 볼 수 있다

 

 

 

 

 

 

 

 

 

 

공양왕의 전설이 있는 견달산과 식사동(食寺洞)은

고려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이성계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견달산으로 도망쳤을 때

도피생활을 하는 왕에게 절에서 식사를 제공 했다는데서 유래한다.

공양왕은 이미 이성계에 의해 권력이 뺏긴 채 왕위에 올라 3년 재위,

이성계가 즉위하면서 유배된 후 살해되었다고 전해진다.

강원 삼척 근덕면에도 공양왕릉이 있다

 

 

 

 

견달산에서 떨어지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고개이름은 문봉등재이다.

 

 

저 멀리 고봉산이 보인다.

고봉산까지가도 오늘산행에 절반도 안되는 지점인데.

 

 

 

문봉등재에서 약4km지점 여기서 포장도로를 버리고 원각사 쪽 임도로 들어간다.

다시 도로하나를 건너서 영천사 쪽으로 올라가는데.

여기가 성동재이다.

 

고봉산에는 군부대가 있는관계로 정상은 갈 수가 없지만

왼쪽으로 도나 오른쪽으로 도나 상관은 없다. 우린 왼쪽길로 돌아간다.

오른쪽길은 망경사와 영천사로 가는 시맨트 포장도로 이다.

 

 

 

 

 

 

 

 

 

 

 

 한구슬과 안장왕 이야기

 

5세기말 백제 땅에 속해있던 옛 고양땅.

한강변에는 용이 되려다 못된 이무기의 한을 달래주기 위한 (용구제 이무기재)가 12년마다 축제처럼 벌어지고 있었다.

이때 축제장에는 얼굴이 아주 예쁜 한구슬(漢球)이라는 처녀가 몸종 별이와 함께 많은

구경꾼들 틈에 끼여 구경하구 있었다.

그녀의 미모는 너무나 유명하여 인근지역까지 소문이 자자하였다.

축제장 저편에서 한구슬의 아름다움에 눈을 떼지 못하고 훔쳐보는 청년이 있었다.

청년은 사람들 사이에서 구경하던 한구슬의 손을 잡고 인근 갈대밭으로 달렸다.

한구슬은 깜짝놀라 손을 뿌리치며 청년의 얼굴을 처다보았다.

허름하구 남루한 복장이지만 고귀한 기품에 평범치 않은 사람임을 느꼈는데.

청년은 이웃 나라 고구려에서 백제를 정탐하러 국경을 넘어 온 왕자 흥안태자임을 밝히며.

한구슬에서 사랑을 고백했다.

미모에 대한 자신감과 자존심이 강한 한구슬이지만 고구려 왕자에게 끌리는 마음을

어쩔 수 없었던 한구슬도 태자의 사랑 고백을 받아들이고 백년 가약을 맺는다.

며칠동안 행복한 사랑을 나눈 태자는 다시 돌아올것을 약속하고 고구려로 돌아간다.

세월이 지나 한구슬의 미모는 더욱 출충해져 소문은 더욱 멀리 퍼졌고.

다시 돌아온다던 왕자에게는 소식이 없어 애를 태우며 보냈다.

이 무렵 마을에 새로 부임한 마을 태수 비후는 한구슬에 미모에 대한 소문을 듣고 한구슬을 불러 수청을 강요하였다.

그러나 한구슬은 이미 정혼자가 있다며 극구 거부하자.

태수는 한구슬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첩자와 내통했다는 이유로 몸종 별이는 죽임을 당했고 부모는 옥에 갇히고 한구슬은 수청을 강요당하며 고문을 당하였다.

한편 고구려 흥안태자는 부친 문자왕이 죽고 제22대 안장왕으로 즉위하여 새 나라을 통치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안장왕은 뒤늦게 소식을 듣고 백제에 남겨둔 한구슬을 가슴 아파하였다.

마침내 안장왕은 을밀장군을 불러 한구슬을 구출케 하고 성공하면 높은산에 올라 봉화을 올린후 국경지역(덕양)으로 데려오도록 지시 하였다.

명을 받은 을밀장군은 군사을 이끌고 내려와 비 후태수를 처단하고 한구슬을 구출하여 높은 산

(고봉산)에 올라 봉화을 올렸다.

멀리서 초초하게 기다리던 안장왕은 산에서 봉화연기가 피여오르는 것을 보고 크게 기뻐하였고 이윽고 한구슬과 극적인 상봉을 하게 되였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봉화을 올린 이곳을 고봉산이라 불렀고 한구슬과 왕이 만난 행주산성 부근을 왕봉이라 하였다

이무기 제사를 지냈던 용구재는 지금의 일산서구 대화동 대화마을 부근을 말한다.

우리가 잘 아는 춘향전과 비슷한 이 한구슬 설화는 1500여년 동안 고양 사람들에게 구전되여

온 설화로서 춘향전의 모태가 되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김부식 삼국사기 신재호 조선상고사 기록중에서.

 

 

 

 

 

 

 

 

 

 

 

 

 

 

 

 

 

 

 

 

여기가 고봉산을 1km쯤 지난지점.

윗배다리에서 산행을 시작한지 4시간만이다.

여기서 점심으로 준비한 참쌀에 밤.콩.대추.해바라기씨.잣등 몇가지를 섞어만든

주먹밥으로 점심을 먹는다.  

 

 

 

 

 

 

 

 

 

 

 

중산고개 떨어지기 직전에 고봉산 팔각정

 

 

여기가 중산고개 즉 89번 도로가 지나는 곳이다.

 

대로를 건너 금정굴 쪽으로 올라간다.

 

금정굴 쪽에서 고봉산쪽.

 

 

 

 

 

 

 

 

 

 

 

 

 

 

 

 

 

 

 

 

여기서부터 일산 시가지를 요리죠리 질러가야 한다. 

 

 

현위치 큰마을 현대아파트 앞.

 

 

경의선 탄현역 이다.

 

 

395번 도로를 건너서 일산가구단지 쪽으로 들어간다.

뒤에 보이는 아파트를 지나서

 

다시 길 하나를 건너면 한소망교회가 있다.

교회정문으로 들어가서 후문으로 빠져나간다.

후문쪽에서 본 교회건물

 

건너편에 한빛마을 아파트 옆길로 가다가 중간쯤에서 우회전 해야하는데

마찬가지일거 같아서 조금 걷다가 건널려구 했는데 도로를 건널 수가 없어서 삼십분정도의

시간을 허비한다.

 

 

 

 

이미 해는 서산을 넘은지 오래이다.

일곱 시간으로 예상했던 산행을 한시간반 이상이 지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한다.

산행은쉬웠지만 일산 시가지를 지나는데 몇번에 알바로 힘들었던 하루였다.

 

헷 갈리는 고갯길 여기가 핑고개 인줄 알았더니 이름없는 고갯길이다.

 

 

화천과 철원에 경계선인 말고개에서 이곳 곡릉천까지

187.2km. 9구간 90시간10분으로 한북정맥을 마무리한다.

 

 

 고양의 장명산은 일명 약산이라고도 한다.

서북맥 내령으로 와동산을 거쳐 끝머리 벌판 가운데로 우뚝서있는 이산은 산아래 곡릉천(휴률강)이 흘러 경관이 아름다우며 이산 주위엔 구절초가 자생, 주민들은 이를 많이 복용하여 수명이 연장되었다하여 장명(長命)이라 불렀다 한다.

옛날 조선시대 때 한 아낙이 아이 갖기를 소원한 나머지 장명산 중턱에 위치한 약수터에 올라가서 약수물에 밥을 지어 먹고 구절초 대린 물을 먹으면서 지성을 드린 후에 아이를 갖게 되자 그 소문이 한양 땅에 퍼졌다 한다.

이후 아이를 갖지 못한 양반댁 부인들이 매년 음력 9월 9일에 장명산에 올라 약수물에 밥을 지어 먹고 구절초 대린 물을 먹어서 아이를 갖게 된 일이 많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구절초는 여자의 냉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