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km이상지맥/검단지맥(완주)

검단지맥 1구간(무푸래고개=>영장산=>이배재)

부뜰이(윤종국) 2021. 1. 18. 22:06

 

검단지맥

부뜰이와 천왕이 걸어온 검단지맥

지맥길 25.6(접속/이탈)km/10시간41분

 

산행일=2021년1월10일

산행지=검단지맥 1구간(용인시/성남시/광주시)

산행경로=무푸래고개=>법화산(法華山:383.2m)=>346.1봉=>무등치=>큰무등치=>용인천주교공원묘지=>대치고개(대지고개)=>326.0봉=> 318.3봉=>부천당고개=>불곡산(佛谷산:335.4)=>311.7봉=>새마을고개=>

새나리고개=>일곱삼거리=>곧은골고개=>영장산(靈長山:414.2m)=>357.8봉=>333.4=>358.5m=>313.5봉=>이배재

거리 및 소요시간=25.6km/10시간41분

 

올들어 첯 강추위 몇십년만의 한파라고 한다.

예전에는 이보다 더 추울때도 산행을 했는데 지금은 나이을 몇살더 먹어서 그런지 추운게 싫어졌다.

지난주에 초 장거리 남해를갔다 왔는데 또 장거리를 가기도 그렇고해서 1년도더 된 숙제도 있고 집에서도 가깝고 길도좋은 검단지맥을 진행해보기로 한다.

사실 이런곳은 아껴두엇다가 아주아주 급할 때 써먹어야 하는데 아쉽긴 하지만 오늘하나 써먹는다.

그러구보니 하나가 아니고 두번째네. 지난해애 강화지맥도 써 버렷으니. 이러저러해서 장거리는 다음주에 가기로하고 검단지맥을 진행하기로 한다.

날씨가 춥다니 준비물이라곤 옷이 전부이고 먹거리는 막걸리 한통과 빵 몇개 물은 미니 콜라병으로 하나 그나마도 그냥 가져왔다.

새벽3시에 알람을 마추고 일치감치 잠자리에 들고 알람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엇 저녁에 준비는 해놓았지만 그래도 주섬주섬 챙기다보니 4시가 넘어간다.

출발을 하면서도 분기점을 가느냐 마느냐로 의논을하다가 결국에는 분기점은 산행후에 밝을때 가보기로 하고 분기점에서 88.cc를 건너 뛴 무푸래고개로 바로 가기로하고 무푸래고개를 네비에 검색하여 출발한다.

도착해서 보니 경남아너스빌 4단지에서 목적지가 종료된다.

근처 주택가에 주차를하고 컵라면으로 아침을먹고 산행을 시작한다.

 

검단지맥(黔丹枝脈)은 한남정맥 북서쪽으로 분기한 한남정맥이 내려오다가 석성산과 할미성을 거쳐 향린동산에서 두갈래로 산줄기가 분기되는데 한남정맥은 남서진하여 아차치고개로 내려가고. 또 한줄기는 북서진하여 법화산(385m).북곡산(213m).영장산(靈長山:413.5m).검단산(黔丹山:535m).망덕산(498.9m)청량산(淸凉山:480m).남한산(벌봉522.1m).용마산(596m).검단산(535m)을 거쳐 하남시 바깥창모루마을 한강변에서 그 맥을 다하는 45.6km의 산줄기를 검단지맥이라 칭한다.

 

 

 

선생님께서 주신산패는 1년이 헐 넘엇다.

물론 내가 요청해서 받은 것이지만 너무 오래 두엇던 것도 같고

 

주택가에 주차를하고 보니 물푸레마을 아너스빌 4단지 후문이다

이곳에서 첯 인증을 남기고 산행을 시작한다

 

배수지 쪽으로 조금더 올라가다 보면 이정표가 나오고 전망테크 쪽으로 올라간다

 

문은 활짝 열려있고 사유지라는 안내문이 있지만 차량통행을 하지말라는 애기지 사람까지 통행을 하지 말라는 애기는 아닌 것으로 해석한다.

 

산행을 시작한지 20여분만에 무푸레고개에 닿으며 지맥길에 접속한다.

무푸레고개는 용인시 기흥구 청덕동에서 처인구 모현읍 능원리를 넘어가는 고개이고 청덕동은 포장까지 되어있는 도로이나 모현읍쪽은 88골프장으로 철 울타리로 막혀있다.

무푸레고개라 불리게된 유래는 옛날부터 물푸레나무가 많고 항상 맑고 푸른물이 흘러 내린다고 하여 청덕리(淸德里) 또는 물푸레골 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법화산아래 청덕동과 마북동으로 흘러 내리는 물은 탄천(炭川)의 발원지이다.

이곳 탄천(炭川)은 검단지맥을 감싸고 있는 천(川)으로 옛부터 삼천갑자 동방삭의 전설이 내려오는 한강의 지류로 남에서 북으로 흘러 용인.분당.판교.송파.강남 지역을 관통하는 중요하천으로 이곳에서 발원하여 서울 송파구와 강남구를 거처 양재천과 합류하면서 한강으로 유입되는 한강의 제1의 지류(支流)이다.

 

탄천에 내려오는 전설을 보면 동방삭(東方朔.기원전 154~93)은 한(漢) 무제(武帝.기원전 156~87)에게 스스로를 천거해 미관말직에 등원된 이래 평생을 조정에 응거 했다는 익살과 해학의 정치가였는데 언젠가부터 한국에선 장수(長壽)의 대명사인 삼천갑자 동방삭으로 변했다

원래 수명이 삼십(三十)이었던 동방삭은 십(十)에 한 획을 더 그은 천(千)으로 바꿔 삼천갑자를 살게 되었다.

이에 동방삭을 잡으러 온 저승사자가 성남 분당의 탄천(炭川.숯내)에서 숯을 빠는 꾀를 냈다.

길을가던 동방삭이 내 삼천갑자를 살지만 이런 기괴한 모습은 처음 본다. 고 말했다가 신분이 탄로나 붙잡히고 만다.

이것이 전해오는 탄천 이름의 유래 중의 하나이다

철망 좌측으로 올라서며 본격 검단지맥을 시작한다.

 

20여분 올라서니 갈림길이 나오고 지맥길은 천주교공원묘지 쪽으로 이여지나 0.1km벗어나 있는 법화산을 다녀온다

 

20여분 올라서니 갈림길이 나오고 지맥길은 천주교공원묘지 쪽으로 이여지나 0.1km벗어나 있는 법화산을 다녀온다

오늘 구간의 첯산인 법화산에 올라선다

 

법화산(法華山:383.2m)은 용인시 기흥구 언남동 마북동 청덕동과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 수지구 죽전동에 걸쳐있는

산으로 데크목 쉼터와 운동기구들이 있고 정상석이 있다.

법화산이라 불리게된 유래을보면 주변의 형세가 타지역보다 높아 여러신하가 임금에게 조례를 올리는 군신봉조형(群臣奉朝形)의 길지(吉地)로 알려진 곳으로 기흥구 마복동의 마북천과 청덕동의 청덕천에 흐르는 물로 인하여 탄천(炭川)의 발원지가 되었다.

이곳에는 구한말 을사늑약에 항거해 자결한 충정공 민영환의 묘와 병자호란 때 3학사의 한 사람인 충렬공 오달제의

연안부부인 전씨 묘(延安府夫人 田氏 墓) 등이 있다.

법화산은 불경 중의 하나인 법화경에서 따온 이름이로 구성 지역의 중심산이다.

 

 

법화산을 둘러보고 왔던길로 되돌아가며 사각정자가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법화산 0.1km위치에서 우측으로 돌아간 길을 다시 만나고 다시 갈림길이 나오면 작은 무등치를 지난다

 

작은 무등치(小無等峙)는 용인시 기흥구 언남동에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 사기막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이정표에는

좌측으로 마북캠퍼스가 0.5km이고 진행방향으로 천주교공원묘지를 안내한다

검단지맥은 대도시를 끼고있는 산줄기라 갈림길이 엄청나게 많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연휴에 남한 전지맥을 완주하여 산줄기영웅에 등극하신 비실이부부 선배님이 가장먼저 반겨준다.

오늘도 선배님의 많은도움 기대합니다

 

주위가 밝아올 때 용인천주교공원묘원에 닿는다.

용인천주교공원묘지는 1967년 명동성당에서 최초로 묘지를 개발하였으나 관리운영상의 어려움으로 1978년 8월초

서울교구청으로 이관되었으며 현재는 재단법인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지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1998년 묘지가 만장 처리된 이후로 매장 묘지 분양은 하지 않고 있으며 천주교 신자들의 소요가 늘어나는데

비해 추가 묘지 확보가 어려워지게 되면서 1991년 6월부터 20년 기한제 묘지 제도를 실시해오고 있다.

한국인 최초의 주교이자 교구장이었던 노기남 대주교와 김수환 추기경을 포함한 사제 64명의 묘소가 있다

 

용인 시내도 내려다 보이고

 

묘역 안내도가 있지만 나는 이해할 수 없는 안내도이고

 

공원묘원 도로길을 따른다

검단지맥에 들기 몇일전에 선생님께서 여기에 김수환추기경 묘소가 있다는 정보를 주셔서 이참에

우리도 한번 둘러보기로 한다.

 

묘지 도로로 진행하며 아래쪽을 살펴보니 건물이 한체보이고 불이 켜져 있어서 내려가 본다

사진을 안 찍엇는데.

그 건물은 화장실이였고 화장실에는 후끈후끈 히타가 틀어져 있었다

몸도 녹이고 볼일도보고 화장실앞에서 입구쪽을 처다보니 직감적으로 저곳 이라는 예감이다

 

마침 성직자 묘역이라는 안내판도 있다

 

여느곳 과는 달리 발자국도 많이 보인다

발자국을 따라가보니 제데로 찿아왔다

 

좌측에 대주교 노기남(바오로). 가운데 추기경 김수환(스테파노). 우측에 주교 김옥균(바오로)

 

추기경 김수환(스테파노)

 

좌측에 대주교 노기남(바오로)

 

우측에 주교 김옥균(바오로)

 

마지막으로 인증을 남기고 내려선다

마침 일출시간도 얼마 남지 않은거 같아서 부지런히 마루금으로 올라간다

 

마루금에 올라서니 일초의 여유도 없이 일출이 올라온다

 

공원묘원 최 상단에서 좌측에 송전탑 밑으로 내려서는데 마루금이 아니라는 경고음에 확인을해 보니 마루금은 우측으로 보인다.

다시한번 지도를살펴보니 내려서면 43번국도가 지나는 대치고개인데 본 마루금으로 가도 깊은 절개지로 어차피 이쪽으로 내려와서 43번 국도를 굴다리로 건너게 되여있어서 그냥 내려서기로 한다

 

20여분 가파르게 내려서니 쉴낙원 장례식장 뒷 마당으로 내려섯다

 

쉴낙원 장례식장 앞에서 대치고개를 바라보고 좌측 죽전쪽으로 300미터정도 내려가서 굴다리로 43번 국도를 건너간다

대치고개는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에서 광주시 오포읍으로43번 국도가 넘어가는데

차량통행도 엄청많고 달리는 속도가 고속도로 수준이라 무단횡단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산행지형도에는 대치고개라 표기되여 있는데

현지에는 대지고개라고 표시되여 있다.

대지고개라 불리게된 유래를보면

옛날에는 서울에서 임금이나 관리들이 지방 나들이를 할 때 주로 사용하던 큰 길 중의 하나가 서울 양재와 판교를 거쳐 신갈로 이여지는 지금의 43번국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임금님이 경복궁에서 아침을 먹고 행차를 하면 남산을지나 서빙고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오면 점심때가 되어 말에게도 말죽을 먹였다하여 그 곳의 이름을 말죽거리(지금의 양재동)라 부르게 되었으며 점심 후에 다시 발길을 재촉해 달래내 고개(지금의 경부고속도로 위)를 지나 판교에 이르니 소나기가 쏟아져 운중천이 범람하여 길이 막히자 마을주민이 널빤지를 가져다 임시가교를 설치하여 임금님을 무난히 건너게 하였다하여 그 곳을 널다리 즉 판교(坂橋)라 부르게 되었으며 또 한참을 내려오다 보니 모처럼만에 그래도 다소 넓은들이 나타나자 이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한 백성이 농사를 지어 군량미를 조달하는 군량뜰(지금의 수지 레스피아 일원)이라고 말하자 임금님이 대지고개 쪽을 바라보며 그래도 이곳이 꽤 큰 땅 이구먼 하였다고 말 하여 그때부터 이곳을 큰 땅 즉 대지(大地)라고 부르게 되엇다고 한다.

 

좌측으로 내려가는 중에 낮익은 산이 보여서 확인을해보니 한남정맥에 형제봉 광교산 백운산으로 확인되고

오늘 하루종일 보게되는 풍경이다

 

43번 국도를 굴다리로 건너서 우측 대지로 방향으로 진행하여 마루금에 복귀한다

 

여기가 원래 43번 구 도로로 대치(대지)고개 버졋이 넓은 임도가 있는데

왜 울타리를 쳐 놓았나 모르겠다

 

대지산 올라가는 길

 

대치고개에서 10분정도 걸려서 대지산에 올라선다

대지산정상에는 사각정자와 정상석과 3등(수원320)삼각점이 있고 운동기구가 설치되여 있다

 

정자가 깨끗해도 너무 깨끗하다

만든지가 얼마안된 것도 같지만 누가 관리를 하는것도 아닐텐데....

이용하는 주민들이 많아서 자동으로 깨끗한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대지산(大地山)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과 처인구 모현면. 광주시 오포읍에 걸쳐 있는 산이다.

 

대지산에서 인증을남긴다

 

오늘은 나도 한장

 

삼각점은 수원 320이고

 

지맥길은 대지마을(죽전동) 방향으로 이여진다

 

진행중에 잠시 조망이 열리고

형제봉에서 광교산으로 백운산으로 이여지는 한남정맥 마루금

백운산에서 한남정맥은 좌측으로 틀어지고 우측으로 관악지맥이 분기한다

 

대지산에서 30여분 진행하여 불곡산에 올라선다

불곡산(佛谷山344m)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과 광주시 오포읍의 경계에 걸쳐있는 산으로 성덕산이라고도 한다.

불곡산은 성남.광주 주민의 휴식처로서 이른 아침시간 임에도 몇몇주민이 올라와 있었다.

 

불곡산에서 인증을 남기고

 

사각정자에는 다양한 책이 갖춰져 있고 시계도 걸려있는데

현재 10시 10분을 가리키고 있다

 

좌측으로 정든마을 우측으로 능안골 갈림길에 올라서면 오리 312 삼각점이 있는 311.7봉

 

311.7봉의 삼각점은 오리 312

 

대도시를끼고 있는 산이라 영하 10도는 되는 추운날씨 임에도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286.3봉에 닿고

 

갈림길도 참으로 많다

 

태재고개 직전에 마을로 내려선다

 

성남 누비길이라 부르게된 안내판

 

마루금은 성남시 이정표 뒤로 이여지지만 아무리 살펴보아도 사람이 오르내린 흔적이 전혀 없다

좌측으로 돌아갔으면 누비길로 이여지고 쉽게 지맥길로 이여지는데

 

우리는 우측으로 돌아서 태재에서 좌측을 바라보니 육교가 보여서 어찌어찌 해서 마루금에 올라서니

잘 만들어진 묘지가 나오고 조망이 좋다

 

조망도 좋겠다 점심으로 준비해간 빵과 스프로 점심을 먹는다

 

광교산과 백운산을 조망한다

 

 

묘지 밑으로 내려서니 누비길 데크길이 나오고 데크 난간데를 넘고 육교로 태재(泰峴)를 건너간다

태재(泰峴)는 성남시 분당구에서 광주시 오포읍 신혀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태재라고하며 여지승람에는 추현(秋峴)이라고

표기되여 있고 중람정 한지에는 추령(秋嶺)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부천당고개.새마을고개.새나리고개.고든골고개 등

성남시에서 광주시로 넘어가는 고개 중에 가장 험준한 고개이며 조선 중기부터 한양으로 통하는 큰 고개라는 뜻으로 태현 또는

태재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육교로 태재고개를 건너니 여기서부터 누비길 3구간이라 알린다

 

그냥 검단지맥이라 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애써 고민해서 누비길이라 했는지 모르겠다

 

영장산은 오늘구간의 최고봉이고 검단산은 다음구간에 지나게 된다

 

태재에서 1시간 40분을 진행하여 사각정자가 있는 344.5봉에 닿는다

 

344.5봉에서 인증을 남기고

 

부드러운 길은 계속된다

 

지나온 태재고개가 5.4km이고 영장산이 0.8km남았다고 안내한다

 

등산로는 마루금으로 안가고 우측 사면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마루금으로 올라선다

 

봉우리에 올라서면 358.3봉이고 뒷쪽으로 영장산이 보인다

 

 

이정목 기둥에는 누군가 응달평산 이라 적어 놓았데 좌측아래에 응달평골이란 지명이 있기는 하다

 

태극기가 박혀있는 돌탑봉을 내려섯다가 살짝 올라서면 오늘구간에 최고봉인 영장산에 올라선다

 

영장산에 올라서니 몇몇 사람이 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영장산(靈長山:414.2m)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율동.야탑동과 광주시 직동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영장(靈長)은 영묘한 힘을 가진 것의 우두머리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는다.

영장산이란 지명 유래도 신령한 기운이 서린 뛰어난 산. 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한다.

영장산은 옛날부터 사십팔대장상지지(48代將相之地)요 십승지지(十勝之地)라고 전해오는 천하명산(天下名山)중에 최고(最高)의 명산(名山)이다.

선인(先人)들은 이 산에 연결(連結)된 산맥(山脈)중 일장산(日長山)(남한산의이름)은 성일장여 (聖日長如)하고, 영장산(靈長山)은 성령장천(聖靈長千)하며, 일곱삼거리에서, 간구득도(懇求得道)하여 문현산(門懸山)(지금의문형산으로불리는산)에 천문현달(天門懸達)하라는 산 말은 남기었다.

이 말은 일장산(日長山)에서 백제시조(百濟始祖) 온조왕(昷祖王)께서 개국(開國)하신 후 임금의 위엄(威嚴)과 따뜻한 보살핌이 해(日)가 매일같이 온누리를 빠짐없이 비춰주듯이 그 찬란(燦爛)한 위명(威名)이 여일(如一)하라는 뜻이며 영장산은 임금의 착한 선정(善政)이 영원(永遠)하게 하여달라는 것이고 일곱삼거리는 여섯 갈래의 지옥(地獄)으로 가는길과 한 갈래의 하늘나라로 가는길 중에서 지성(至誠)으로 기도(祈禱)하면 하늘나라로 가는 길을 얻게 된다 하였고 문현산(門懸山)에는 하늘나라로 올라갈 수 있는 문이 달려있다 해서 문현산이라 하였는데 1914년 일제가 조선측량지도를 처음 만들 때에 조선의 정기(精氣)를 말살(抹殺)하려는 의도로 명산이나 명당혈처(明堂穴處)를 훼손(毁損)하였고 그 이름도 해괴망칙(駭怪妄則)한 이름으로 바꾼 것이 하나둘이 아니었음이 각종기록(各種記錄)과 문헌(文獻)에서 수없이 많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영장산도 예외(例外)는 아니어서 이 아름다운 천하명산의 이름을 망아지 구자 구봉(駒峰)으로 바꾸고 이름도 일본식으로 매이지봉으로 부르도록 강요(强要)하여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매지봉으로 불려온 수난(受難)의 역사(歷史)를 지닌 채 오늘도 묵묵히 그 엄숙찬란(嚴肅燦爛)한 위용(偉容)을 자랑하고 있지 않은가? 이 영장산에 대하여 수많은 일화가 전하여오고 있다. 무학대사께서 광주안씨선대중에 안성(安省)선생의 묘자리를 현 광주시 경안읍 중대리에 잡아주시며 영장산하에 뛰어난 명당길지(明堂吉地)라고 말씀하였다고 전하여 오고 있다.

 

영장산에서 인증을 남기고

 

영장산의 삼각점은 수원 437이고

 

오늘 산행을 끝낼 이배재가 아직도 5.94km나 남았다네

 

영장산에서 30여분 진행하여 357.8봉에 닿고

 

인증을 남기고 내려선다

 

357.8봉에서 6분 내려가면 등로는 좌측사면으로 돌아가고 여기위치가 중원터널 위이고

302.3봉을 만나보기 위해서 마루금으로 올라가 본다.

 

302.3봉에 올라보니 별다른 표시는 없고 내리막길이 꽤 가팔라보인다.

내려 갈려면 못갈 것도 없지만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왔던길로 빽해서 좋은길로 진행한다

 

사거리 안부에 내려서면 좌측으로 성남시 중원구 도촌동 응달말 마을이고

우측으로는 광주시 직동 이당골로 내려가게 된다.

우리는 맞은편 산으로 올라가는데 고개에서 올라서자마자 좌측에 사각정자가 있다

 

 

사거리 안부에서 올라서면 333.4봉에 올라서고 고불산이란 코팅지가 걸려있다.

 

삼각점은 수원 311이고

 

 

여기까지 누비길 3구간이고 2구간이 시작되는 위치이다

 

여기위치가 갈마치 고개이고 동물이동통로가 설치되여 있는데

동물이동통로에 대한 안내문이다.

갈마치 고개(葛馬峙)는 성남시 중원구 갈현동에서 광주시 삼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389번 지방도로가 넘어가며 갈현(葛峴)이라고도

불리며 고개 좌측 성남쪽에는 화장장이라 불리는 성남영생사업소가 있고 동물이동 통로로 연결되여 있다.

갈마치라 불리게된 유래를보면 말(馬)이 갈증(渴症)이 난다는 뜻으로 예전의 갈마치는 매우 가파른 고갯길 이어서 말이 이 고개를 넘으면 목이 말라 헐떡임으로 꼭 물을 먹이고 쉬었다는 고개로 옛날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는 도중에 이곳에서 말에게 물을 먹여 갈증을 풀어주고 길을 떠났다고 한다.

갈마치(葛馬峙) 또는 갈현(葛峴)이라 했다는데 언제부터인지 지명의 유래가 옛날부터 칙이 많아서 갈현(葛峴)이라 불리웠다고 하는데 평택임씨 족보에는 이곳을 갈현이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갈현동의 지명은 갈마치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갈마치고개는 동물이동 통로로 쉽게 건너간다

 

이곳부터 누비길 2구간 시작지점 이라고 알린다.

 

연리지 전국을 다니며 연리지라는 것을 많이 보았지만 이번만큼 확실한 것은 본적이 없는거 같다.

다른곳에서 본것은 서로 기대여 있는 정도지 이것처럼 완벽하게 붙은것은 아니었다.

 

붙은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파고들어간 형태이다

 

 

연리지 나무에대한 설명문

 

연리지 나무에서 15분을 진행하여 358.5봉에 올라서니 요골산이란 코팅지가 걸려있다

 

 

 

하절기 같으면 쉬여가기 딱 좋은 곳

지도에는 313.5봉이라 표기되여 있다

 

이배재에 내려서기 직전 좌측으로 성남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산줄기 영웅이신 죽천 선배님 흔적을 만나고

 

이배재는 육교로 건너갈 수 있게 되여있다

 

이배재 육교에서 인증을 남기고

 

좌측으로 내려선다

 

 

이배재 고개 이정석에서 인증을 남기며 검단지맥 1구간을 마친다

 

이배재(二排峙)는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과 광주시 송정동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성남공단과 광주를 연결하는 338번 지방도로가 넘어간다.

고문헌에는 이보치(利保峙)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뜻은 조선시대에 남한산성을 방어하는데 있어서 훌륭한 보장지(保障地) 역활을 하였다는 의미라고 한다.

 

지명의 유래는 절을 두번 하는 고개라고 해서 이배재라 불럿다고 한다

옛날 경상도와 충청도의 선비가 과거를보러 한양으로 갈 때. 이 고개에 오르면 한양이 보여 임금이 있는 경복궁을 향하여

한번 절하고 부모님이 계신 고향을 향해서 다시한번 절을 했다는데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조선조에 유학자로

이름을 날린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이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고개에서 임금이 있는 한양 도성을

향해 마지막으로 임금에게 두번 절을 하였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후자는 잘못 전해진 이야기라고 한다.

살아 있는 임금에게 두번 절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소요경비

이동거리=139km(왕복)

유류비=11.600원(연비15km/디젤1.250원)

톨비=갈때 없음/올때 없음

택시=26.600원

등=10.000원

합계=48.2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