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km이상지맥/만뢰지맥(완주)

만뢰지맥 1구간(만뢰지맥 분기점=>만뢰산=>덕고개)

부뜰이(윤종국) 2023. 8. 3. 00:55

만뢰지맥

부뜰이와 천왕봉이 걸어온 만뢰지맥

지맥길 25.2(접속0.3/이탈)km/11시간27분

 

산행일=2022년7월30일

산행지=만뢰지맥 1구간(천안시/진천군)

산행경로=엽돈재=>만뢰지맥 분기점=>355.3봉=>365.6봉=>

411.9봉=>435.3봉=>싸리재 고개=>385.0봉=>싸리재=>479.1봉=>

돌목이 고개=>445.4봉=>472.5봉=>521.9봉=>만뢰산(612.2m)왕복=>

489.7봉=>425.1봉=>482,7봉=>504.7봉=>배성고개=>429.5봉(왕복)=>

질고개=>322.3봉=>장고개=>장교현(長稿峴:21번 국도)=>덕유산

(德裕山:415.6m)=>지장골 고개=>환희산(歡喜山:402.6m)

왕복=>385.5봉=>덕고개

거리 및 소요시간=25.2(접속0.3)km/11시간27분

 

기나긴 장마가 끝나고 불볕더위가 시작되고 때 마춰 휴가가 시작되엇다.

덥다고 집에만 있는 다는 것도 쉬운일이 아니라 야간산행을 길게해서 한구간만 하기로하고

토욜 3시에 인천을 출발해서 약 19km지점인 장교현에 들러서 막걸리한통과

물 1리터 냉동한 맥주 한캔을 풀숲에 보관해두고 들머리인 금북정맥 엽돈재에 도착하니 6시쯤되엇다.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쉬다가 보니 7시가 넘고 날이 어둑어둑 해진다.

간단하게 라면과 밥으로 저녁을먹고 쉬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오토바이 폭주족이 괭음을내며 쉴새 없이 오르내리니 잠을 잘 수가 없다.

저러다 말겠지하고 누워 있다보니 언제 조용해졌는지 잠이 들엇는데

이번에는 자동차 폭주족이 괭음을내며 오르내린다.

환장할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급기야는 경찰백차 두대가 올라와서 단속을하고 12시가 다 돼서 상황이 종료된다.

이제 잠을 자기는 글러 버렸다.

새벽 2시에 산행을 시작하기로한 계획을 앞당겨서 간단하게 떡과 커피로

요기를하고 1시가 안된 시간에 산행을 시작한다.

 

 

만뢰지맥((萬籟枝脈)은 금북정맥의 서운산에서 남쪽으로 5km 떨어진

엽돈재(34번 국도) 남쪽 200m지점에서 분기하여남서진 하면서 만뢰산(612.2m)/일부지형도엔

만근산으로 표기. 덕유산(德裕山:415.6m). 환희산(歡喜山:402.2m)=>취령산(鷲嶺山/목령산:229.1m)을

일구고 취령산(목령산)에서 방향을 바꿔 서남진하며 다시 상봉산(193.4m).국사봉(國師峰:172.0m)을

일구고 경부고속도로를 건넌후 마지막으로 응봉산을 들어 올린후 청주시를 바라보며

미호천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9.5km의 산줄기를 말한다.

 

지나는 산들은 만뢰산(萬籟산:612.2m). 덕유산(德裕山.412m).

환희산(歡喜山. 402.2m). 취령산(鷲嶺山.목령산). 상봉산(196m).국사봉(國師峰.171m).

응봉산(175.4m) 등이 있다.만뢰지맥의 동쪽으로 흐르는 물은 백곡천이나 성암천이 되어 미호천으로 흘러들고

서쪽물은 병천천(46.75km)이 되어 충남의 천안시 북면 병천을 거쳐 충북의 오창과 옥산면을 거쳐

청원군 강내면에서 미호천(89.20km)에합류되어 서남진하여 연기군 동면 합강에서

금강(397.79km에 합류하여 공주로 흘러간다.

 

 

 

만뢰지맥에 설치되여 있는 산패중 훼손 되거나 고도표기가 현대지도와 맞지 않아 교체하거나

보충할 산패는 모두 5장 정확한 위치에 자리잡을 수 있기를 바란다.

 

34번 국도가 넘어가는 금북정맥 업돈재 18시가 안된시간에 도착한다.

추남 천안시 병천면 방향

 

이쪽은 충북 진천군 백곡면 방향

 

백곡 방향으로 넓은 공터에 주차를한다.

 

진천에는 어딜가나 고갯마루마다 생거진천(生居鎭川)이란 표지석이 있고.

용인에는 사거용인(死居龍仁)이란 말이 있다.

그 유래를보면 살아서는 진천에 거주하고

죽어서는 용인에 묻히라는 뜻으로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라는 말이 생겼는데.

이 말에 걸맞는 전설이 있다.

옛날 충청도 진천 어느 산골에 허생원이 살았는데.

딸을 잘 키워서 경기도 용인으로 시집을보냈다.

딸이 시집을 와 보니 시부모님이 밤잠을 이루지 못 하고 소곤소곤 말을 하는데

가만히 들어보니 새 애기가 들어와 기쁘지만 또한 먹을 것이 부족하여 걱정을하는 대화였다.

허부인은 시집이 가난하기 이를 데 없다는 걸 알고.

이전 말에 대복은 제천(大福在天)이요 소복은 재근(小福在勤)이라고 하였으니

나 하나가 부지런하면 가난을 면할 수 있지 않겠냐는 각오로 살았다.

새댁이 시 부모님께 말하였다.

저는 남정네처럼 씩씩하고 부지런 하다고 동네에 소문이 났는데.

이제 시집을 왔으니 여기서도 부지런히 일을하여 살림을 일구고자 합니다.

과연 그날부터 허부인은 부지런히 일을하여 재산이 늘었고 부부 금슬도 좋았다.

이제 남부럽지 않게 살게 되었고 떡두꺼비 같은 아들도 낳았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남편이 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더니 그만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 후 시부모님 마져 연달아 돌아가셨다.

과부 신세가 된 허씨부인은 마음도 달랠겸 친정에 가려고 소복을 한 채로 친정인 진천 땅으로 걸어갔다.

험난한 산길을 올라가다 보니 고갯마루 직전에 도착하였다.

그때 맞은 편에서 한 선비가 올라오고 있었다.

진천의 유생( 儒生)인데.

지금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다가 고갯마루에 당도하여 쉬고 있노라니 소복을 입은 여인 하나가 올라오고 있었다.

이 산 마루에 누가 있어서 저 여인을 붙들고 이야기를한들 알랴.

이런 생각을 하는데.

어디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건너편 소나무 아래에 자기처럼 쉬고 있는 노인이 있었다.

유생은 당장에라도 죽는 쉬늉을하며 눈에 티끌이 들어가 한발 짝도 움직일 수가 없다고 하였다.

허씨 부인은 아무리 남녀가 유별해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선비의 눈을 비집고 입으로 후우 하고 불었다.

유생은 바로 눈앞에 아리따운 여인과 입을 맞춘 듯 숨결을 빨아드리는 일을 성사 하였으니 천만 다행 이었다.

유생은 진심을 담아 고맙다고 말하였다.

허씨 부인은 눈이 나았으니 어서 가십시오. 라고 하고 길을 떠났다.

 

진천에 사는 친정아버지는 홀로 된 딸이 걱정이 되고 그리워서 하루는 열일을 제쳐놓고

용인 딸네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거의 고갰마루에 다다랐을 때 별 해괴한 광경을 보게 되었다.

아무도 없는 산중이라고 저 남녀가 저 무슨 입맞춤인가.

더구나 여자는 소복을하고 외간 남자와 못된 짓을 해.

쌍놈 쌍년 같으니. 도대체 저 여인의 쌍판을 좀 보자며 친정 아버지는 소나무 밑에서

쉬고 있다가 다가오는 여인을 보고 그만 기겁을하고 후다닥 내려갔다.

그런 줄도 모르고 허씨 부인은 한참 후에 친정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청천벽력 같은 아버지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아버지는 불문곡직하고 소리를 질렸다.

너는 출가외인 이거늘 어찌 내집에 발을 들여놓는단 말이냐 당장 돌아 가거라.

허씨 부인은 영문도 모른체 용인집으로 돌아가다 그만 길에서 쓰러졌다.

마음씨 고운 어떤 집에서 얼마 동안 머물다가 다시 집으로 향하였다.

그 때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간 유생은 그만 과거에 낙방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그 고갯마루에 당도할 때쯤 그 소복 여인을 다시 만났다.

과거에 낙방한 유생과 친정에서 문전박대를 당한 허씨 부인은 이렇게 가슴 아픈 환경에서 만났다.

유생은 진정으로 위로하였다.

속으로는 가슴이 터질 듯이 기쁘면서도.

허씨 부인은 의지할 곳이 없고 억울하고 폭폭한 심정에 유생의 품에 안겼다.

용인의 아들은 시댁 삼촌에게 맡기고 진천에 사는 유생에게 다시 시집을 갔다.

과거는 다 잊었다.

시댁과 친정도 잊었다.

오직 새 남편 유생만을 섬기며 열심히 부지런히 살았다.

아들도 낳았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환갑을 맞이할 즈음 그만 남편이 세상을 뜨고 말았다.

무슨 팔자가 두번씩이나 과부가 된단 말인가.

 

용인에 사는 큰 아들은 보모 없이 작은 할아버지 집에서 살래설래 컸고 

그때마다 나를 낳은 엄마는 어디에 있는지 궁금했다.

이제 장성하여 재산도 모으고 혼인도 하고 보니 마음이 더욱 간절하였다.

나도 한번 남과 같이 부모를 모시고 살고 싶다.

부모님 환갑잔치도 해드리고 싶다.

어머니가 살아만 계신다면 어이 못 찻으랴.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드디여 어머니가 계신 곳을 알아냈다.

그냥 찻아갈 수 없으니 송아지라도 끌고 가야겠다.

허씨 부인은 어떤 장정이 송아지를 끌고 와서 뵙자고 하니까 웬일인가 하고 나와 보았다.

찻아온 사람을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시도 잊지 못한 어린 아들 이었다.

아들이 말했다.

이제 떨어지지 말고 용인으로 가서 같이 살자고.

그 때 무슨 소리요.

진천에도 아들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내 어머니 입니다.

듣고 보니 진천에 아들 말도 맞는 말이다.

용인의 아들도 진천에 아들도 어머니도 난처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관가에 소장(訴狀)을 냈다.

소장을 받아본 고을 원님도 어떻게 판결을 해야 할지 뾰족한 생각이 나지 않아

저녁도 못 들고 골몰하고 누워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어린 손자가 할아버지 무슨 근심이 있으시냐고 물었다.

원님이 소장 이야기를 하니까 손자가 간단하게 말해버렸다.

말은 들은 할아버지 원님은 벌떡 일어나며 무릅을 탁 쳤다.

이튼날 관가에서 두 아들을 불러놓고 판결을 하였다.

용인에 있는 맏아들과 진천에 있는 다음 아들이 어머니를 모시려는 것은

지극한 효심이라 세상에 귀감이 되도다.

그런데 어머니는 한 분이니 두군데 살 수는 없구나.

몸을 쪼갤 수도 없는 것.

그래서 내가 판결이 힘이 드는구나 그래도 판결을 하겠다.

너희 어머니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진천에 살도록하고 죽은 후에는 용인에서 모시도록 하여라.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이렇게 판결이 끝났다.

이렇게 해서 생거진천 사거용인 이란 말이 생겼지만 현 시대에 용인 입장에서 보면 좋은 말이 아니라

용인에서는 쓰지 않기 때문에 생소한 말로 들리고 진천에는 가는 곳마다 생거진천 이란 말을 흔히 볼 수 있다.

 

새벽 1시 생거진천 표지석에서 첫 인증을 남기고 산행을시작한다.

 

들머리 풀숲에는 이슬이 옷이 졌을 정도로 내렸다.

 

만뢰지맥 분기점에 올라서니 0.28km가 찍혔고 9분이 소요되엇다.

 

인증을 남기고 금북정맥은 우측으로 진행되고 만뢰지맥은 좌측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사진 한쪽이 히뿌엿게 찍히는 건 뭔 영문인지 모르겠다.

 

분기점에 서 있는 이정목 진행방향으로

만뢰산이 약 10km라고 표기되여 있다.

 

진행방향으로 백두사랑 산악회에서 설치한 산패도 있고 분기점산패 두개가 더 있다.

 

분기점에서 6분여 내려가면 대천고개에 내려선다.

좌우로 길이 히미하다.

 

대천고개에서 20여분 올라서 355.3봉을 만난다.

 

인증을 남기고 지맥길을 이여간다.

 

길이 좋아 어렵지 않게 365.6봉에 올라서고

 

인증을 남기고 내려간다.

 

삼각점 봉인 412.4봉에 닿고 보니 기존 산패는 귀퉁이가 깨진 것을 누군가 수리해서 걸어 놓았다.

 

기존 것은 회수하고 새로운 것으로 설치했다.

 

삼각점은 판독을 할 수 없고

 

인증을 남기고 우측으로 꺽어 내려간다.

 

435.3봉에 올라서면 지형도엔 싸리재고개로 표기되여 있고

지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지는데.

좌측으로 길이 더 좋다.

 

인증을 남기고 우측으로 내려간다.

 

435.3봉에서 20분이 안돼서 392.7봉에 올라서니

싸리산이란 코팅지가 걸려있다.

 

인증을 남기고 조금 내려가면 싸리재를 지나고

 

좌우로 재의 흔적이 뚜렸한 싸리재

지금 까지는 큰 오르내림 없이 쉽게쉽게 왔다.

 

급 오름으로 땀을 한바가지는 쏟구서야 올라서 479.1봉을 만난다.

반바지님은 멧돌봉이란 코팅지를 걸어 두엇다.

 

배냥 내리고 인증을 남기고 물 한 모금 마시며 쉬엇다가 간다.

 

삼각점은 전혀 알아 볼 수가 없고

 

갈림길에 닿으니 우측으로 개죽산 3100m라 되여 있고

작성단맥이란 산패가 걸려있다.

 

봉항3리 마을회관 갈림길도 지나고

 

길은 여전히 좋고 야간임에도 바람한점이 없으니 땀이 비오듯 흐른다.

그래도 이만하면 걸을만하다.

 

안부에 내려서니

 

돌목이고개

 

길만 좋은게 아니라 좌우로 갈림길을 수시로 만난다.

 

사진 한쪽이 뿌였게 찍히는 현상은 도무지 알수가 없고

445.4봉은 산패없이 지난다.

 

472.5봉에 올라서면

 

똑같은 산패가 마주보며 두개가 걸려있다.

 

인증을 남기고 우측으로 내려 간다.

 

만뢰지맥의 주산인 만뢰산은 좌측으로 벗어나 있고 

갈림길에 닿으니 이정목에는 만뢰산이 0.57km라고 되여 있다.

이정목에다 배냥을 걸어두고 만뢰산을 다녀온다.

 

그리고 521.0m산패가 소나무에 높게 걸려있다.

 

인증을 남기고 만뢰산을 다녀온다.

 

만뢰산 정상에 도착하니 만뢰산이라 불리게된 유래가 적힌 안내판이 있고

 

정상석이 있다.

이제 날이 밝아지기 시작하지만 조망을 담기에는 좀 부족하여 인증만 남긴다.

 

천왕봉이 부터 인증을 남기고 

 

나도 한장 남긴다.

 

삼각점은 귀하디 귀한 1등 삼각점이다.

 

진천 11이란 표기가 선명하게 보인다.

 

425.1봉에도 두개의 산패가 걸려있고

 

아직 6시반 밖에 안되었는데.

해가 뜨면서 30도는 되는 듯 벌써부터 푹푹 찌기 시작한다.

 

맨발님의 응원으로 힘을 얻고

 

길이 좋고 오르내림이 심히지 않으니 그나마 걸을만 하다.

 

사진에서 보면 아직도 깨스 같은게 있는 듯 하다.

 

삼각점은 진천 458을 확인 했는데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삼각점 봉인 504,7봉에 올라서니 있어야 될 산패가 않보여서

낙엽을 뒤져서 거의 묻혀 있는 것을 찻았다.

 

물티슈로 닥아서 새로 설치하고

 

인증을 남긴다.

 

삼각점은 글씨는 있지만 알아 볼수가 없고

 

멱수 갈림길을 지나고

 

잡풀이 무성한 임도에 내려서니 지형도엔 배성고개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틀어서

 

우측 숲으로 들어간다.

 

마루금에서 좌측으로 50m정도 벗어나 있는 431,7봉

빼곡한 잡목 숲이고 누구하나 다녀간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마루금으로는 길이 않보이고

 

우측으로 내려서니 임도를 만나는데

아마도 배성고개에서 우측으로 돌아간 길인거 같다.

앞에 송전탑에서 좌측으로 들어간다.

 

초입에는 길이 없는거 같아도 들어가면 괸찮은 길을 만난다.

 

322.3봉에 닿으니 아직 9시도 안되었는데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당일 산행을 하는 사람들은 이제 산행을 시작할 시간인데.

 

더 더워지기 전에 조금 이라도 빨리 가자고 하는데.

내 걸음이 그렇게 되질 못한다.

 

그래도 숲속이 괜찮았지 21번 국도가 넘어가는

장교현에 내려서니 길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얼굴이 따끔 거린다.

충남 천안방향

 

높은 절개지를 올라갈 수 없어서 충북 진천방향으로 조금 내려간다.

 

우리가 내려온 절개지 칡 넝쿨이 장난이 아니다.

 

 

한국종합철관 회사가 보이고 좌측에 무슨 공장안으로 들어간다.

 

일요일 이라 아무도 보는이가 없어서 정문으로 들어가서 앞에 보이는 숲으로 가파르게 올라간다.

 

마루금에 올라서 시원한 맥주와 빵으로 간식을 먹고 

덕유산에 올라서니 장교현에서 1시간쯤 걸린거 같다.

그래도 새벽에 일찍 시작한 덕분에 아직 열시 반 밖에 안된 시간이다.

이제 5km정도 남았으니 가다쉬기를 반복한다.

요즘 날씨가 얼마나 더운지 온열질환(열사병)으로 하루에도 몇 명씩 죽는다고 한다.

 

벌목지가 나오고 진짜 바람한점 없고 이글 거리며 피여 오르는 아지랭이가 보인다.

 

깊은 안부에 내려서니 지장골고개 이고

 

서낭당 흔적도 보이고 누군가 머물며 도을 닦은 흔적이 보이는데.

한쪽에는 쓰레기가 수북히 쌓여있다.

자기 쓰레기도 처리 못하고 쳐 버리는 사람이 깨닿음을 얻었을까 모르겠다.

 

지저분한 지장골고개

 

환희산이 0.5km라는 이정목을 만나고

자측으로 덕곡산이 1km라고 되여 있다.

지맥길은 환희산 방향으로 진행된다.

 

환희산 오름은 급경사로 한참을 치고 올라간다.

 

좌측으로 0.2km벗어나 있다는 환희산 이정목에다 배냥을 걸어두고 다녀온다.

 

환희산 정상에는 정상석만 덩그러니 있을 뿐 조망 같은건 없다.

 

삼각점은 진천 25로 2등 삼각점이 있다.

 

내리쬐는 열기가 어찌나 뜨거운지 서둘러 인증을 남기고 갈림길로 돌아간다.

 

오늘 구간에 마지막봉인 385,5봉에 닿고

 

인증을 남기는데.

천왕봉이 얼굴이 벌것게 달아 올랏다.

 

385.5봉에서 내려가면 엄청나게 규모가 큰 양계장을 만난다.

내려서서 마당으로 지나가는데.

쬐그맏고 비쩍마른 강아지가 따아오며 엄청나게 짓어댄다.

 

숲으로 올라서며 돌아본 초 대형 양계장

 

잡목이 어수선한 무명봉하나 넘으니 여기는 초대형 퇴비 공장 안으로 떨어진다.

 

야적되여 있는 퇴비들

 

마루금으로는 올라서기가 거시기하여 정문으로 나간다.

덕고개까지 300m정도 되는거 같다.

여기도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이라고는 한사람도 보지 못했다.

 

 

한구비 돌아가면 덕고개 이다.

 

2차선 도로가 넘어가는 덕고개에서 만뢰지맥 1구간을 종료한다.

다음 들머리는 우측에 임도로 들어가면 되겠다.

 

단풍나무 밑을 살펴보면 덕고개 산패가 걸려있다.

 

여기는 2구간 날머리인 몽단이고개에서 우측으로 약 300m지점 주차를하고 보니

아무래도 장기주차 하기엔 좀 부담이 된다.

 

다시 고속도로을 건너서 고속도로 옆 임도에 천왕봉이 차를 주차해두고 인천으로 올라간다.

 

 

소요경비

이동거리=348km(왕복)

유류비=32.480원(연비15km/디젤 1.400원)

톨비=갈때 6.400원/올때 없음

하산식=콩국수x2/20,000원

등=10.000원

합계=68.8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