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나의 이야기

왜 산에 오르는가.

부뜰이(윤종국) 2011. 11. 12. 01:13


                                   1.2 산에 왜 오르는가?


                            내려올 것을 힘들게 왜 올라가나?

      1924년 최초의 에베레스트 등정을 앞두고 엔드류 어빙과 함께

     정상600미터 아래에서 실종된 조지 말로리는 에베레스트원정을떠나 전,

필라델피아의 한 강연에서 어느 부인의 '당신은 왜 위험하고 힘들며 죽을 지도 모르는 산에 갑니가?'라는 질문에 '산이 그곳에 있으니 오른다.(Because it is there.)'라는 불멸의 명언을 남겼다.(그후 75년만인 1999년 에베레스트 정상부근에서 그의 시신이 발견됨)

당시 말로리는 갑작스런 부인의 까다로운 질문에 당황스럽고 귀찮은 상황을 벗어 나고자 아무생각없이 재치로 받아 넘긴 답변이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 위대한 산악인이 남기고 떠난 짧은 한마디는 등산의 본질을 가장 함축성있게 설명한 명언이라고 할 수 있다.

산이 있고,

내가 그 산을 오른다.

이것은 자연 더 나아가 우주의 존재와 이곳에 있는 인간의 활동을

설명한 것이다.

왜? 라는 질문을 끝없이 파고 들면 결국에는 우주와 인간의 존재에 대한

의문으로 귀결된다.

아직 아무도 이러한 의문을 풀지는 못했지만 인간은 그속에서 다양한 삶을 영위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왜. 산에 올라가나?" 라는 질문은 '우주와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인 셈이고, 이에 대한 해답으로 '자연(우주)이 있고, 그곳에서 인간이 생활하고 있다.

라는 말이기에 조지 말로리의 대답은 명언이며,

진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산에 다니는 우리는 "내려 올 것을 힘들게 왜 올라가냐?'라는 질문을 곧 잘 받곤한다.

이런 질문에는 말로리의 명언과 비슷하게 "죽을것을 왜 살고 있냐?"라고 반문하면 어떨까? 등산의 본질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은 등산은 곧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으로만 생각한다.

무거운 배낭을 매고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가노라면 숨은 차오르고 다리의 근육통도 심하게 느끼게 된다. 이런 고통을 '사서 고생'한다는 식으로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곰곰히 이 고통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면 별것이 아니다. 아무리 등산이 고통스럽다고 해도 신체의 손상이 오는 것도 아니고, 재산의 손실을 자져다 주는 것도 아니다. 다만 견딜 수 있는 한도까지 참으면 되는 것이다.

육체적 고통이 따르는 다른 운동이나 취미활동을 생각해 보면 축구, 농구, 테니스, 조깅 등, 얼마든지 있다. 이러한 운동들의 신체적 고통이나 운동의 강도를 등산과 비교하면 결코 약하지 않다.

그러나 "당신은 힘들게 테니스를 왜하냐?"라고 묻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건강에 좋기 때문에 운동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운동하며 즐거워하고 건강해 지려는 이유는 앞 장의 '등산과 알피니즘 - 자연과 등산'에서 말했듯이, 우리의 유전 정보속에는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고 능력을 향상시켜 후손에게 훌륭한 신체적능력을 물려 줘라'라는 유전신호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런면에서 볼때 등산은 다른 어떤 운동보다도 장점이 많은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등산은 무엇이 좋은가?

등산은 운동으로서의 장점을 살펴보아도 다른 운동에 비해 좋은 점이 많다. 첫째 유산소운동으로 경쟁없이 자신의 페이스에 알맞게 조절해 가며 서서히 부하를 높여 나가므로 인간생활에 필요한 운동으로서 가장 알맞은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아울러 산이라는 대상이 주는 맑은 공기와 물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은 운동의 효과를 더욱 높여 주며, 도시속에서의 운동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서적인 효과를 함께 얻을 수 있다.

또한 숲이라는 환경은 도시생활에 찌든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많은 것은 제공해 준다.

식물이 만들어낸 오염안된 산소와 음이온이 가득한 공기, 그리고 휘튼치드와 같은 갖가지 물질이 우리에게 유익함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울창한 숲이나 산에가면 그곳에 있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상쾌함을 느끼는 것이다.

일주일에 1번만이라도 오염된 도시를 벗어나 산에 가면 오염된 신체를 조금이라도 정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지구는 커다란 자석이며 지표상에는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자기장이 흐르고 있으며, 우리의 신체는 이 자기장에 생체리듬을 맞추고 적당한

생리작용을 하고 있다.

그러나 도시에 생활하는 우리는 수많은 전자파공해속에 적당한 전자파의 흐름과 균형이 깨지고 있어 최근 그 위험성이 크게 대두되고 있다.

또한 겹겹이 둘러친 콘크리트 구조물은 지표상에 흐르는 자기장을 차단하고 있으며, 고층건물이나 고층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은 더욱 더 지표

자기장과 차단되어 생활해야만 한다.

실제로 고층에 오랫동안 지내다 보면 머리가 아프거나 무기력해지는

증상이 발생한다.
우리는 막연하지만 땅의 기운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먼 조상들 때부터 지내온 환경, 즉 땅과 가까이 지내야 한다.

이것이 우리신체가 원하고 머물러야 하는 곳이다.

등산은 차단된 땅의 기운을 강하게 받는 좋은 기회이다.

야영을 하면 더욱 좋다. 아파트에 거주하는 필자는 매 주말 등산을 하고 있지만 간혹 휴일에 부족한 수면을 취하기 위해 해가 중천에 뜨도록

늦잠을 자곤 한다.

그러나 산에서 야영을 하면 아무리 늦잠을 자려고 해도 아침이 오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땅과 가까이 수면을 취했기 때문에 충분한 휴식이 되었다는

신체반응일 것이다.

납, 카드늄, 수은 등 중금속은 대부분 발암물질이며 신체에 과다하게 축적되면 각종 원인 모를 질병에 시달리게 된다.

한경이 오염되어 감에 따라 우리의 몸은 이러한 중금속이나 유해물질에

점차 오염되어 가고 있다.

우리의 몸은 원래 유해물질이 들어오면 신진대사 작용을 통해 자동으로 배출시킨다고 한다. 그러나 중금속은 쉽게 배출되지 않아 지속적으로 쌓여

가지만, 등산중에 흘리는 진땀을 통해 이러한 중금속이나 유해물질이

신체밖으로 배출된다고 한다.
암이나 당뇨병, 그밖의 불치병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이 등산을 통해 완치하거나 호전시키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그동안 온갖 현대의학의 치료법을 모두 사용한 후 마지막으로 산을 선택하여 건강을 되찾은 것이다.

등산이 건강에 좋은 것은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물고기는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우리도 산과 자연을 떠나 도시에서 살면 문제를 일으키게 되어 있다.

우리가 지내야할 환경은 도시가 아니라 먼 조상들때부터 지내온 산과 자연인 것이다. 그

래서 물고기가 물을 찾아 퍼덕이듯이 우리는 산을 찾는 것이다.


무상(無賞)의 행위

등산이 신체적인 건강만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최초로 오른 8,000m인 안나푸르나(8,091m) 초등에 참여한 리오넬 테레이는 '무상의 정복자'라는 저서에서 등산은 '무상(無賞)의 행위'라고 하였다. 현대산업사회에 만연된 경제논리, 보상의 논리속에서 인간의 끊임없이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하지만, 한편으로 정신이 피폐해져가고 있다.

이익이 없고 반대급부가 없는 행위는 무의미한 것으로 취급하고, 효율적인것 같지만 모순과 불합리로 가득한 경제.사회 구조속에서 순수한 인간성의 상실이 심해지고 있다.
등산은 그 행위의 특성상 많은 시간과 재화 그리고 노력을 쏟아야 한다.

그러한 행위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일부 등산가는 생계나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기도 하지만) In-put 과 Out-put (투입과 산출)으로 저울질 한다면 매우 미련한 짓이며, 비생산적인 행위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원래 비생산적인 놀이에 관심이 많다.

그것을 우리는 취미활동이라고 한다.

우리는 지금 복잡하게 얽힌 산업사회의 노예가 되어 과중한 일에 시달리고 있다. 원래 인간은 삶을 영위하기 위해 지금처럼 많은 시간을 일에 빼앗기지 안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어느 학자가 동물들이 살기위해 투자하는 노동의 시간을 연구해 보았더니, 인간이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사자는 하루에 1시간정도만 사냥을 하고 남는 시간은 자유롭게 보내고, 대부분의 다른 동물도 하루중 몇시간만 일을 하며 삶을 유지한다고 한다. 인간만이 8시간이상(출퇴근시간과 가사노동시간을 합하면 더 늘어난다)의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먼 원시시대에는 지금처럼 많이 일을 하지 않았고, 동물들이 자연의 풍요속에서 유유자적하며 살고 있듯이 인간도 자연의 풍요와 여유를 즐기며 유유자적하며 살았을 것이다.

지금도 도시생활을 하는 사람보다 전원생활이나 농사일을 하는 사람이 더 많은 시간적 여유를 가지는 것을 보아도 도시산업사회가 얼마나 심각하게 인간성을 상실하게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우리 인간은 일만 하며 살 수 없다.

여유시간에 충분한 휴식을 취하며, 각자 자신이 원하는 놀이에 몰두하며 풍요로운 삶을 영위해야 할 것이다. 풍요로운 삶이 경제적인 가치추구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생각은 편협한 인생관일지 모른다.

많은 부를 쌓고, 그것을 바탕으로 안락한 삶을 원한다거나, 지위에 집착하여 일생을 그것만 쫓아다닌다는 것은 불행한 삶일 것이다.

결국 부와 욕심은 세상에 남겨 놓고 자신은 땅에 묻히는 것이며, 과도하게 이런것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다른 사람이나 자연을 괴롭히게 된다.
일주일동안 일만 하다가 주말이면 낮잠자고 휴식하고... 그렇게 일생을 보낼 것인가? 일 말고 자신이 순수한 열정으로 몰두할 수 있는 취미활동, 이것이 바로 무상의 행위인 것이다.

각박한 생존경쟁의 틀에서 일탈하여 감성의 자유, 시간의 자유, 공간의 자유를 마음껏 즐기기는 것이 진정한 삶의 풍요일 것이다.
등산은 사람이 즐기는 무상의 행위가운데, 제일 상급일 것이다.

우리의 고향인 자연속으로 가장 깊숙이 들어가 적응하며, 오묘한 변화를 즐긴다.

그속에는 꿈이 있고, 준비가 있고, 철학이 있고, 우정이 있고, 열정이 있고, 사색이 있고, 쾌감이 있고, 좌절이 있고, 고통이 있고, 극복이 있고, 휴식이 있고, 회상이 있다.

우리가 원하는 또다른 순수한 인생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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